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Mar 05. 2022

천국에서도 대마초는 합법인지

(22.03.05) 미니언즈,정지돈,사우스파크

  오늘은 온도가 10도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지구가 태양과 좀더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아침도 먹지 않고 외출 준비를 했다. 헐크 버스터 같은 구스다운을 벗고, 쌈 채소처럼 가벼운 점퍼를 입었다. 나는 겨울이 싫다. 플로리다에 있는 루이스와 통화를 할 때마다 나는 말하곤 한다. 그곳이 그립다. 부럽다. 플로리다에는 겨울이 없다.


  그 시절, 우리는 스키를 타러 10시간을 노스캐롤라이나까지 승합차를 번갈아 가며 몰고 간 적이 있었다. 장 피에르가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을 때였다. 나는 옆자리에서 노트북으로 사우스 파크를 틀어놓고 보고 있었는데, 오바마가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입으로 똥을 싸는 오리’가 나오자 정신없이 웃었고 그것을 듣고 있던 장 피에르도 같이 웃다가 핸들을 살짝 놓쳤다. 승합차는 한밤의 고속도로 위를 피겨 스케이팅하듯이 에스 커브를 유려하게 몇 번이나 그렸고, 거의 쿼드러플 살코 직전이었다. 뒷좌석에서 잠든 루이스는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고대 마야의 조상들과 접신이라도 한 듯이(루이스의 부모님은 페루에서 오셨다.) 연신 홀리 쉣, 홀리 쉣을 외쳤다. 나는 ‘오마갓’을 해야 하는지, ‘왓더퍽’을 해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존이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루이스가 ‘퍽’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므로 ‘오마굿니스’로 절충했다.(‘홀리 쉣’은 그냥 싫었다. 성스러운 똥?)

  스키를 2박 3일 동안 실컷 타고 다시 10시간을 운전해서 내려올 때, 우리는 존이 만든 찬송가 모음 CD를 들으면서 내려왔다. 사우스 파크 같은 더러운 똥 같은 똥이나 보고 있으니까 그런 사고가 난 거야. 유가릿? 존이 십자가를 룸미러에 걸어 넣고 스티어링 휠을 잡으며 말했다. 존의 입에서는 대마초 냄새가 났는데, 나는 천국에서도 대마초가 합법인지 궁금했다.


  하릅은 늘 그렇듯이 나보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릅은 아침잠이 없는 고양이다. 빈백에 누워 슈퍼배드인지 미니언즈인지를 보고 있었다. 내가 헛갈릴 수밖에 없는 게 거의 일주일간, 슈퍼배드 1,2,3와 미니언즈를 돌려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봤던 거를 왜 또 보고, 또 보고 그러고 있는 거야? 내가 물었다. 하릅은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7월 중에 개봉 예정인 미니언즈 2에 꼭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고 했다. 저런 조증에 걸린 미치광이 노랑이들을 좋아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근데, despicable이 무슨 뜻이야? 하릅이 물었다.(슈퍼배드의 원제가 ‘Despicable Me’다.) 내가 ‘비열한’이라고 설명하자, 하릅이 의아한 듯이 말했다. 비열하다고? 누가 비열하다는 거야? ‘그루’는 비열하지 않아. 그루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하릅은 그루밍을 하면서 말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하긴 ‘그루’는 스윗하지. 그루뿐만 아니라 미니언즈도 ‘비열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너무 심하게 긍정적이고 즐거울 뿐이지, 나쁘거나 사악하진 않다. 대마초를 하고 난 후의 존도 그랬던 거 같다.  

  하릅과 나는 옆 동네의 한옥 카페에 가기로 했다. 하릅은 산책은 싫어하지만 카페는 좋아하는 자이언트 랙돌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따라나섰다. 한옥 카페에 가면 자기는 쌍화차를 꼭 먹어볼 거라고 들떠 있어서, 한옥 카페는 한옥을 개조한 카페일 뿐이며 레트로한 다방이 아니라고 설명하려다가 말았다. 가는 길에 나는 중고서점에 들러서 정지돈의 산문집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을 샀다. 책 뒤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계획은 모두 망상에 불과하지 않은가. 산책은 이럴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나는 `15년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 그의 단편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를 말 그대로 싸우듯이 읽었는데 나의 문해력을 비관하게 만드는 슬픈 단편집이었다. 나를 더 침통하고 비루하게 만든 것은 그의 인용 노트에 기술된 작가와 서적들이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이다.(이 정도면 스트리머 ‘대도서관’은 닉네임을 정지돈에게 반납해야만 한다.)

  어머니가 잠시 우리 집으로 놀러 오셨을 때, 나는 적적해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정지돈의 단편집을 건네드렸는데 어머니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완독 하시고 난 후, 요즘 소설은 다 이러니? 하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아니요. 누구나 다 이렇게 할 수는 없죠. 나는 당연한 듯 말했다. 어머니는 항상 나는 너를 가끔 이해하지 못하겠다. 라고 말하시곤 했는데, ‘내가 싸우듯이’를 다 읽으시고는, 네가 왜 그러는 줄 알 것 같다. 조금은. 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문학이 내 삶에서 이룬 소소한 성과 중의 하나이다. 다음은 내가 정지돈의 소설 ‘눈먼 부엉이’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나는 가끔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 말이나 하고 싶지만 아무 말이나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아래의 작품들을 언급했습니다.


슈퍼배드(Despicable Me) 1,2,3 (피에르 꼬팽, 크리스 리노드)

미니언즈(Minions) 1 (피에르 꼬팽, 카일 볼다)

사우스 파크(South Park) 시리즈 (트레이 파커, 맷 스톤)

내가 싸우듯이 (정지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정지돈)

이전 03화 살찐 고양이의 사랑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