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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Jul 09. 2021

할머니, 이쪽으로 엉금엉금 기어 오세요.

아이는 '모름으로써 아는' 존재



어릴 때, 나는 엄마가 장애가 있는지 몰랐다. 무릎을 붙이지 않고 걷는 걸음을 '팔자걸음'이라 부른다기에, 그럼 엄마는 팔자걸음을 걷는 사람인가보다 했다.     



얼마나 무지했는지 바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학교 앞 교통지도를 맡을 녹색 어머니를 모집한다고 말씀하시기에, 집에 와서 이랬다.      



"엄마는 녹색 어머니 왜 안 해?"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그냥 서서 깃발만 이렇게, 이렇게 움직이면 되는데 왜 못해?"     



나는 보이지 않는 깃발을 들고 위아래로 휘저어 보였다. 엄마가 무거운 짐은 못 들고 걷는 건 알았다. 손잡이가 없으면 계단을 못 올라가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깃발을 들고 서 있는 건 엄마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아마비'라는 말을 모를 때였다. 엄마의 왼쪽 발바닥에 늘 동전만 한 굳은살이 박히는 이유. 그건 한쪽 발이 틀어져, 걸을 때 발바닥의 굳은살 부분만 땅바닥에 닿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서고, 제대로 걷기 위해 남보다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어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생은 고생인 줄 몰랐다.      



"내가 거기 서 있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니?"     


"어떻게 생각하긴. 녹색 어머니 하는 줄 알지."     


"다리가 이런데?"     


"가만히 서 있는데 누가 알아?"     



당돌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엄마는 나를 꾸짖지 않았다. 헛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약한 모습 감추며 평생 살았더니, 자식부터 나를 보통 사람으로 보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는 어릴 때 열병을 앓았다. 열은 내렸지만, 한쪽 다리에 마비가 왔다. 모두 그녀가 걷지 못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성한 다리의 힘으로 한쪽 다리를 끌며 기어이 걸었다. 출석 일수보다 결석 일수가 더 많았지만, 꼬박꼬박 학교도 다녔다. 비가 오는 날과 눈이 오는 날도, 친구들이 소풍 가버린 날도 엄마에겐 쉬는 날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고 했다.      



십 대 시절에 서울로 올라온 엄마는 공장에서 일하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공부해 미용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자기 이름의 한 글자를 딴 상호를 지어 미용실을 차렸다. 다리는 평생의 콤플렉스였지만, 그녀가 일어서는 데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IMF로 아빠의 사업이 망했을 때도, 그녀는 아무에게 손 벌리지 않고 끈질긴 가난을 견뎠다.      



그리고 이제는 칠순에 가까운 나이가 됐다. 평생 아픈 다리를 끌고 다니다 보니 성한 다리도 많이 약해졌다. 이제는 누군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혼자 오래 걷지 못하고, 손잡이가 있어도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겨워졌다. 집에서는 휠체어를 사용하게 됐다.


     

아이의 눈에 비친 할머니도 휠체어에 앉아있거나, 바닥에 앉아있는 모습, 둘 중의 하나였다. 손녀 집에 놀러 와서도 현관 입구에 자리 잡아 한참을 눌러앉아 있는 할머니. 어느 날, 그런 할머니에게 다섯 살의 손녀가 말했다.     



“할머니, 힘들어요?”     


“응?”     


“할머니 빨리 이쪽으로 엉금엉금 기어 오세요.”


     

아이는 기어 다니는 게 할머니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서서 걷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했다. 팔자걸음이 엄마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나와 다를 바 없었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과거의 내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뭐라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웃기만 하는 엄마의 모습도 그날의 엄마와 닮아 있었다.      



엄마는 해님이의 말대로 엉금엉금 기어가지 못했다. 깃털처럼 가벼운 아이의 제안과 달리, 어른의 마음이란 무거운 거였다. 체면도 생각해야 하고, 이목도 생각해야 하며, 자존심에도 허락을 받아야 하니까. 엄마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대신, 내게 이런 질문을 툭 던졌다.      



"나중에 해님이가 할머니 다리가 왜 그래? 그러면 어쩌지?“     



엄마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었던 고민이었다. 나는 그걸 알았다.      



"내가 그렇게 물은 적 있어?"     


"없지. 착해서."     



정말이었다. 엄마가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얇은 것을 분명히 봤지만, 나는 그것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수많은 상념이 깃든 다리였지만, 나에게 그냥 '엄마 다리'였으니까.     



"착해서가 아니라, 난 그냥 몰랐고, 궁금하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내가 엄마에게 녹색 어머니까지 하라고 했잖아.“     



왜 부모는 자신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순간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걸까. 남처럼 예쁘지 않다고, 남처럼 건강하지 않다고. 남처럼 부자가 아니라고, “엄마는 왜 그래?”라는 질문과 맞닥뜨린다. 가혹한 일이다. 가장 사랑해서 낳은 자식에게 어떤 식으로든 판단되어야 하는 순간이.      



”엄마, 나중에 해님이가 엄마 머리는 왜 꼬불꼬불해? 라고 물어보면 어떡해?“  

   

”파마해서 그렇다고 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그것 봐. 걱정할 일 아니잖아. 엄마 다리도 똑같아.“     



나도 두렵긴 마찬가지다. “너희 엄마 머리가 이상해.”라는 친구의 말 한 마디를 듣고 돌아온 해님이가 "엄마 머리는 왜 그래?"라고 묻게 될 살 떨리는 그날이. 철이 없어서, 뭘 몰라서 하는 말일 텐데도, 그 질문이 마음을 할퀼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아이는 애당초 부모를 나쁘게 생각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소아마비인 엄마에게 녹색 어머니 봉사를 종용했던 나만 봐도, 할머니에게 기어서 오라고 시키는 손녀만 봐도 그렇다.      



손화신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라는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몰라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한 사람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편견 없이 볼 수 있다면 우리 사이는 꽤 달라졌을 거다.


이것이 좋거나 나쁘다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생각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주입된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게 아이의 생각이 더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모름으로써 아는’ 존재. 편견에 찌들지 않은 자연의 상태에서 아이는 부모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먹여주고 입혀주며 따뜻하게 품어주는 이가 이상한 사람일 리 없으니까. 아이는 기본적으로 부모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며, 그들에게 ‘슈퍼 파워’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그랬고, 내 아이가 그랬다.



다행이지 않은가. 우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편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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