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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Jul 09. 2021

엄마가 이석증에 걸린 후, 나도 이석증에 걸렸다-1편

내가 아파도 엄마만큼 아픈 건 아닌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기우뚱했다.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것처럼 휘청휘청 부엌까지 걸어갔다. 따라 나온 아기는 배고픈지 바짓단에 계속 매달렸다. 아침을 차려야 했다. 어제 끓인 된장국의 상태를 보려고 두부를 하나 건져 먹었다. 두부는 원래 어떤 맛이었지? 냄새는 역하고 식감은 물컹해서 뱉을 수밖에 없었다. 상한 것도 아닌데 오늘의 두부는 어제의 두부와 달라져 있었고, 오늘의 세상은 어제의 세상과 달라져 있었다.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감당 못 할 술을 잔뜩 마셨을 때처럼, 보이는 모든 게 시소 타듯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구역질을 하다가 화장실로 뛰어가 노란 위액을 토했다. 아기가 화장실 밖에서 문을 두드렸지만, 대꾸도 못 했다. 맥없이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 남편이 말했다.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일어나자마자 좀 어지러웠는데, 토했더니 좀 나은 것 같아."     



바로 응급실에 가야 할 만큼의 위중함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계속 누워있어야 할 정도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도 아니라면, 이 정도는 엄살 아닐까. 남편을 안심시키고 회사로 보낸 건, 별거 아닐 거라 생각 때문이었다. 기저에는 '내가 아파도, 엄마만큼 아픈 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상한 우연이었다. 일주일 전에 어지럼증으로 119로 실려 간 건 엄마였다.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에서도 그녀는 연신 토를 했다. 병명은 이석증이었다. 처방 약을 먹으며 일주일을 보낸 후 증세는 많이 완화됐으나, 아직도 고개를 숙였다 들면 세상이 핑 도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어지럼증이 이번엔 내게 찾아온 거였다.     



잠에서 깨어나 내게 달려오는 아이의 모습이 비틀거리는 앵글 속에 들어왔다. 아이를 품 안에 안으며, 남편을 회사로 보낸 게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이 상태로 아이를 돌보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결국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제부터 좀 이상하다고 했잖아. 그런데 내가 좀 어지러워. 아까는 토도 했고..."     


 "너 체한 거 같아. 어제도 앉은자리에서 계속 하품하더니."   



나는 어지럽다고 했는데, 엄마는 왜 자꾸 체했다고 하는 걸까. 경험자인 엄마의 눈엔 내 어지러움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을까.



"엄마, 나 사실은 지금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혹시 괜찮으면, 엄마가 우리 집에 좀 와주면 안 돼?"      



완벽하게 낫지 않은 엄마에게 하는 부탁이라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낭떠러지 끝까지 내몰린 기분이라 엄마라도 붙잡아야 했다. 엄마도 알았을까. 정말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는 걸,      



엄마는 늘 다리가 성하면 못할 것이 없겠다고 자신하던 사람이었다. 아무리 높은 산이 있어도 펄펄 날아다닐 것 같다고. 하지만 이상했다. 나는 다리가 멀쩡해도 못하는 게 많았으니까. 하지만 엄마의 논리에 따르면,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 나는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게, 엄살이나 배부른 투정 같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육아의 고충조차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불편한 몸으로 누구의 도움 없이 두 딸을 건사한 사람에게 멀쩡한 몸으로 딸 하나 키우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힘들지도 않은 일을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24시간을 한 존재에게 오롯이 내어주는 건 천천히 자아를 잃어가는 것 같았지만, 그게 누군가에게 구조 요청을 할 만큼 시급한 일인지 몰랐다. 일이 바쁜 남편에게도, 몸이 불편한 엄마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육아를 홀로 감당했다.    


  

친정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집에 온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했다. 집에 빨리 돌아오려고 대학병원 대신 택한 동네 병원이었다. 의사는 손가락을 들고 오른쪽을 보라고 했다가 왼쪽을 보라고 했다. 그리고 왼쪽을 볼 때 눈이 흔들린다고 했다.     



"왼쪽을 볼 때 특히 어지럽지 않나요?"     



모르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핑 도는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네. 방금 좀 어지러웠네요."     


"원래 검사는 특수안경을 쓰고 받아야 해요. 그러니까 확실한 결과를 알고 싶으면, 대학병원으로 가서 검사받아요. 약을 줄게요."     


"그 약은 이석증에 먹는 약인가요?"     


"네, 이석증에 먹는 약이에요."      



의사에게서 '이석증'이라는 병명을 들으니 어쩐지 속 시원한 기분이었다. 아파도 왜 아픈지 모르고, 아프다고 엄살 할 수 없는 상태보다는 확실한 병명을 가진 '환자'가 되는 게 떳떳한 기분이 들었다.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걸음마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가 집안 곳곳을 활보하며 넘어지거나 사고를 칠까 봐, 엄마는 그런 아기를 잡거나, 번쩍 안아 들지 못해 쩔쩔매고 있을까 봐, 하지만, 염려와는 달리 엄마는 아기와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나 엄마에게 전염됐나 봐.”     


“이석증도 전염이 되나?”     


“요즘에 어지러운 사람이 많다고 의사가 그러더라. 어디서 보니까 귓밥이 들어가서 이석증이 된다던데?"    


"미세먼지가 많아져서 그런가."   

  

“글쎄.”      



엄마와 나는 어디에서도 증명되지 않은 근거 없는 얘기를 허허롭게 나눴다.    


 

약을 먹으니 메슥거림은 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대신 몸이 쳐지면서 졸음이 쏟아졌다.   


    

"너는 누워있으면 괜찮니?"    

  

"한쪽으로 누워있으면 조금 나은 것 같아."     


"너는 그래도 양호하네. 나는 누우면 천장이 팽팽 돌아. 너는 약하게 걸렸나 봐."


    

'약하게 걸린 것 같다.'는 말이 왜 그렇게 마음속에 덜그럭거렸을까. 약하게 걸린 것은 다행인 건데, 왜 그 말이 듣기에 불편한 걸까.   


  

"응, 그런가 보다."     



마지못해 인정하며 생각했다. 엄마는 늘 나보다 아프고 힘든 것으로는 승자라고.  






              

(2편으로 이어집니다.)



엄마가 이석증에 걸린 후, 나도 이석증에 걸렸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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