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0 AM
이안은 자동으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작은 유리병.
투명한 회색 캡슐들이 줄지어 담겨 있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병을 열었다.
한 알을 손가락으로 굴리며, 익숙한 동작으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메마른 식도의 감각조차 무뎌져 있었다.
잠시 후, 머릿속이 차가운 안개처럼 맑아지기 시작했다.
감정의 잔향이 지워지고 있었다.
07:00 AM
도시의 거리.
사람들은 마스크보다 더 두꺼운 무표정으로 걸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없이 회색빛 콘크리트 위를 밟았다.
전광판에는 "정서 청결 유지"라는 붉은 문구가 흐르고 있었다.
이안은 상담소로 향했다.
그는 ‘공식 등록 심리상담사’였다.
감정을 없애는 시대에 감정 상담이라니.
모순적이었지만, 그 또한 시스템의 일부였다.
"감정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법을 교육"
그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09:00 AM
좁은 상담소.
벽 한쪽엔 ‘감정 감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감정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즉각 경고음이 울린다.
이안은 책상에 앉아 첫 번째 내담자를 기다렸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하루였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달랐다.
09:12 AM
문이 열렸다.
희미한 발소리.
들어선 여인은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안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위험 신호.
그녀는 자리 앞에 앉으며 속삭였다.
"…억제제를 끊었어요."
이안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그는 직감했다.
무언가,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억제제를 끊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떨렸다.
그러나 그 떨림조차도 생생한 감정의 증거였다.
이안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손끝으로 책상 아래 감정 감지기 리셋 버튼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기계는 작게 윙- 소리를 내며 초기화됐다.
“이름.”
그는 절제된 목소리로 물었다.
여성은 잠시 숨을 골랐다.
눈물을 훔치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윤아린.”
“…언제부터 끊었습니까.”
“3일 전.”
순간, 이안의 시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3일. 치명적인 기간이었다. 억제제 금단 증상이 본격적으로 폭주하는 시점.
그녀의 망막은 벌써 촉촉이 젖어 있었다.
입술은 파르르 떨렸고, 손끝은 주먹을 쥔 채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심호흡을 했다.
“왜 끊었죠.”
그제야 윤아린의 눈동자가 그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아서요.”
단 한 문장.
그 문장이 상담소의 공기를 바꿔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