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회색숨결 04화

3장. 그림자들

by 진영솔

무감정 구역 B-13, 지하 구역 입구.

녹슨 철문이 기계음과 함께 열렸다.

이안은 윤아린을 데리고 좁은 계단을 내려갔다.
바닥에는 흐릿하게 남아 있는 낡은 벽화가 보였다.

"우리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오래 전 누군가가 남긴 문구.
지금은 그 문구조차 범죄로 간주된다.


지하 깊숙한 곳.
어둠 속에서 미약한 빛이 새어 나왔다.

비밀 감정 복원 모임.

이안이 오랜 시간 은밀히 유지해온 작은 공간이었다.

이곳에선 감정을 표현해도, 기억해도 되는 유일한 곳이었다.

방 안에는 이미 몇 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1) 유진 — 전직 감정 연구자, 40대 초반, 냉철하고 분석적인 인물
2) 민호 — 불법 예술가, 30대 중반, 감정 해방파 성향
3) 소연 — 과거 상담사 동료, 30대, 이안의 유일한 동등한 파트너


문이 열리자, 모두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유진이 먼저 말했다.

“...늦었군, 이안. 경찰단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윤아린을 앞으로 이끌었다.

“새로 온 사람이다. 억제제를 끊었다.”

방 안의 공기가 일순간 팽팽해졌다.

민호가 비웃듯 말했다.

“또 하나의 시한폭탄이군.”

그러자 소연이 조용히 걸어나왔다.
윤아린을 살피며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여긴 안전해요.”


이안은 그들을 둘러보며 짧게 말했다.

“곧 경찰단이 감지망을 넓힐 겁니다.
도시 위쪽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유진이 무거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린 선택해야 해. 숨을지, 움직일지.”

이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움직인다. 그리고... 진실을 찾아야 해.”

그 순간, 윤아린이 나지막이 물었다.

“진실...이요?”

이안은 눈을 들었다.

그의 눈빛 속에는 처음으로 미약한 감정의 빛이 스쳤다.

“감정 억제제가 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왜... 일부는 면역인지를.”

방 안은 조용해졌다.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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