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참된 애정, 그리고 마음의 거울
요즘 나를 돌아볼 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지 물어보면, 나는 '기쁨'이라고 말할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내 안에 기쁨이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이것도 마치 갱년기처럼 마흔 살에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증상인지는 잘은 모르겠다. 아마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경우에 일어나는 증상이라 위로 삼아 생각해 본다. 최근 딸아이의 웃음소리가 더 잦아졌다. 아마 나에게 그 웃음소리마저 없었다면 하루에 웃을 일이 단 1분이라도 있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가끔 거짓 웃음과 헛웃음을 짓는 날은 많다. 특히 회사에서 그렇다. 윗사람들이 말할 때 대부분 거짓 웃음이 나오고, 비슷한 또는 아랫사람이 말할 때는 보통 헛웃음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위/아래로 나누는 것을 싫어하는데, 아직 이 점을 마땅히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해 부득이 이렇게 쓴다.)
최근 며칠은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제로 연달아 발생한 것이다. 그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설득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럴 때 두려운 것은 나 스스로가 점점 교만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틀려야 반성도 하게 되고, 겸손 해 지기도 한다. 그런데 결국 내가 맞았고, 상대방이 틀리는 상황으로 인해 일이 점점 꼬이게 되면 마음에 불만이 생기고, 동료들과 불화가 발생한다. 이번 주에도 이러한 사례가 한 두건 정도 있었다. 갈등이라는 것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이 되나, 가능하면 피하고 정말 싶은 일이다. 그나마 이 번 주 내 안에 기쁨이 있었던 때는 아마도 각자 다른 생각을 하나의 생각으로 모아 '결정'이란 것을 하게 된 순간이 아닌가 싶다. 그 결정을 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다행히 갈등 없이 합의를 이끌어 냈을 때 짧은 시간이었지만 뭔가 해냈다는 충만함이 있었다.
며칠 전 가족들과 외식을 했다. 그날도 지칠 때로 지쳐버린 하루였다. 저녁 8시 30분이 되어서 일이 끝났고, 그 날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미팅이 있어서 일도 많이 밀려 있었다. 밖에서 바람도 쐴 겸 외식을 했는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니 나에게도 그런 좋은 기운이 전해 지는 것 같았다. '나도 어릴 때는 저렇게 순박하고 행복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된 것일까?'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인생의 수많은 풍파 때문일까도 생각해 보았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라는 영화를 보면 어떤 한 젊은 남성이 어릴 때의 왜곡된 기억으로 말을 잃고 웃음을 잃은 채로 살아간다. 그러나 나중에 그 왜곡된 기억 밑에 행복했던 추억이 있음을 알게 되고, 행복을 되찾게 된다. 아마 내 삶에도 수많은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뇌 회로 중 어딘가가 막혀서 그러한 즐거운 기억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 생각해 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가 쓴 글들 역시 심각하고 우울한 글의 비중이 높은 것 같다. 좋은 글을 쓰려면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데, 항상 어지러운 마음 상태다 보니 호수처럼 투명한 글이 아닌 장마로 얼룩진 개천과 같은 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하던 중 최근 이중섭 화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쓰여 있는 글귀가 마음에 들어 소개해 본다.
"예술은 무한의 애정표현이오.
참된 애정으로 차고 넘쳐야
비로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오.
마음의 거울이 맑아져야
비로소 우주의 모든 것이
바르게 마음에 비치는 것이오
다른 사람은 무엇을 사랑해도 좋소.
힘껏 사랑하고 한 없이 사랑하면 되오."
- 이중섭 (1916.4.10 - 1956.9.6)
마음에 기쁨이 없는 것은 아마도 근본적으로 내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스치는 사람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들에 참된 애정을 표현한다면 나의 마음에도 말랐던 기쁨의 샘이 다시 발현하지 않을까 한다. 그럼 지금보다도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