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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un 22. 2020

여름 손님

 0교시라는 것이 존재하던 고등학교 시절 졸음에 못 이겨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을 보며 선생님은 종종 "잠 오는 사람은 뒤에 서서 공부해라."라고 했다. 우리는 자주 졸리지 않아도 뒤로 나가길 자처했다. 사물함에 책을 올려놓고서 서서 공부하면서까지 졸음을 이겨내는 우등생이 된 기분으로 마음껏 딴짓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물함 앞에 서서 나는 옆에 함께 서 있는 친구와 자주 쪽지를 주고받았다. 쪽지 교환은 선생님이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 재빠르게 이루어져야 했다. 내용은 대부분 쓸데없었다. 점심시간에 나랑 같이 산책을 하러 가자든지, 교문 밖의 가파른 길을 한참 내려가야 갈 수 있는 문방구에 가서 맥주 사탕을 사 먹자든지, 오늘 급식 메뉴가 별로인데 매점에 가서 스파게티 컵라면을 사 먹자든지, 오늘은 어떤 CD를 가져왔냐 든지, CD를 좀 빌릴 수 있냐 든지, 이번 주말에는 우리 집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같이 보자든지 하는 내용이었다. 쪽지를 주고받다 보면 50분의 수업 시간이 금방 갔다. 


 그렇게 쪽지를 주고받던 우리는 자라나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이 되었다. 열일곱의 나이를 생각하면, 딱 그때의 나이만큼을 더 먹은 셈이다. 열일곱이라는 나이만큼의 햇수가 지나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쪽지로 나누던 대화만큼이나 시답잖은 이야기로 온종일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서울과 제주, 부산으로 흩어져 사는 우리들은 1년에 고작 두세 번 정도 만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여름마다 제주도에서 다 함께 모이는 일이 의도치 않게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그 시간은 내가 한 해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이다.


 여름의 제주도에서 우리는 수영을 하고 석양을 보고 해가 지면 방파제에 앉아 맥주와 소주를 마신다. 이동할 때면 뒷좌석이 없는 코란도를 타야 하기에 두 명은 트렁크에 앉아야 한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그 자리에 앉는다. 창문도 없는 트렁크에 앉아서 어디론가 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여행에 유쾌함을 안겨준다. 트렁크에 앉아 손잡이를 잡고 해안가를 달려 해녀의 집에 성게 보말죽과 한치 물회, 소라회를 먹으러 간다. 저녁의 술안주로는 닭똥집 튀김과 피자 같은 사뭇 제주와 상관없는 음식을 먹는다. 어느덧 제주라는 장소보다는 우리가 함께 모여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졌기에 메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비가 자주 오는 여름의 제주에서 우리는 종종 바다 수영을 포기해야 했다. 한 날은 비 오는 동쪽 해변에서 어떻게든 수영을 해보려다 포기하고 산방산에 온천을 하러 가다 남쪽에 닿았을 무렵 맑아진 하늘 아래서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만났다. 수영복을 입은 채로 해안도로에 서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는 여전히 그 사진을 자주 찾아본다. 그날의 안주는 유명한 김밥과 각자의 취향대로 고른 컵라면이었다. 우리는 그 김밥을 더 많이 사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어느 날은 선흘리의 귀여운 쌀국수집에서 쌀국수와 반미를 먹고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멋진 카페에 갔다. 카페에서는 커다란 통유리 창문으로 탁 트인 초록색의 들판을 내다볼 수 있었고, 우리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동안 갑자기 세차게 소나기가 3분 정도 쏟아졌다. 쏴 쏴 하며 쏟아지던 소나기 안에서 무방비 상태로 평온하게 놓여있었던 시간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런 소나기 같은 일은 살면서 아주 가끔 온다. 얕고 따뜻한 함덕 바다에서 친구들과 나는 밤 수영에 대한 로망을 마침내 실현하기도 했는데, 한 친구는 날카로운 돌에 허벅지가 긁혀 다음날 메디폼을 붙인 채로 무리해서 낮 수영을 해야만 했다. 들어가도 들어가도 깊어지지 않는 함덕 바다에서 멀어져 가는 나를 보며 친구는 더는 안된다고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아주 많이 웃었다.


 웃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다툼도 잦았다. 평대리 해수욕장의 포장마차에서 제육볶음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다 친구와 울면서 다툰 적도 있다. 우리는 삶에 지쳐있었고 우리 중에서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취해서 뛰어다니다 모래밭에 누워 깔깔 웃었다. 여행 일정을 잡다가 생긴 불협화음으로 사랑하는 함덕의 단골 술집에서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섭섭함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곧 화해했고 사장님은 친구를 테마로 한 음악을 크게 틀어주었다. 함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췄다. 나는 우리가 여전히 별것 아닌 일에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우리에게는 재미난 일이 많이 남아있고, 우리 모두 그 사실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매해 만나는 일이 그 전 해보다 항상 더 기다려진다. 나이를 먹는 만큼 매번 우리는 새로운 기쁨과 슬픔을 마주한다. 


 제주에서 책방을 하는 멋진 나의 친구는 우리가 만날 때마다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온다. 만남이 끝나고 나면 그녀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필름 카메라로 찍은 감각적이고 재미난 사진들을 보내온다. 해변에 수건을 깔고 앉아 다리를 들고 선크림을 바르고 있거나, 비 오는 바닷가를 달리고 있거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크게 입을 벌리고 웃고 있는 찰나와 같은 순간들. 사진을 SNS에 올리며 친구는 이렇게 썼다. '여름 손님'.


 올해는 조금 일찍, 7월의 여름 손님이 될 예정이다. 그녀가 언제까지 제주에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될 수 있는 만큼 오랫동안 그녀의 여름 손님이 되고 싶다. 바다 수영과 노상 맥주와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와 의도치 않게 마주할 사랑스러운 장면을 생각하며 우리는 벌써 들떠있다. 여름은 뜨겁고 우리의 대화 속에는 열일곱 살 때 나누었던 쪽지만큼의 볼품없는 열기가 여전히 남아있으니까. 한동안 남아 나의 삶을 지탱해 줄 여름 이야기를 기다리며.


 "여름 손님, 혼저옵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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