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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May 25. 2020

네조론할때는곡갈여고했는대

 학생이라는 신분이 주는 혜택과 변명거리와 이별하는 대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나는 내가 졸업식에 그다지 의의를 두지 않는 의연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학사모를 쓰고 졸업가운을 입고 목에 커다란 리본 스카프를 매고서 조금 슬프고 많이 설레는 마음으로 가족과 친구의 축하를 받으며 사진을 찍고 학교와 인사를 나눴다. 이제 조금 더 책임감 있는 성인이 되어야 할 터였다.


 내가 넘어온 산보다 더 큰 산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엄청나게 큰일을 해냈다는 기분에 사로잡혀 집에 돌아온 나에게 아빠는 뒤늦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할머니가 주신 졸업 선물이라고 했다. 봉투에 얼마의 돈이 들어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봉투에 쓰인 할머니의 편지는 기억한다. '지원이미안하다 네조론할때는 곡갈여고했는대 못가서미안하다' 할머니의 편지는 삐뚤게 세로로 쓰여있었다. 나는 돋보기안경을 쓴 채 꾹꾹 글씨 하나하나를 써 내려갔을 몸집이 작은 할머니를 떠올리며 한참을 울었다. 눈물이 그렇게나 많이 났던 이유는 삐뚠 글씨 때문이기도, 맞춤법에 맞지 않는 글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졸업식에서 할머니의 부재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할머니가 느꼈을 미안함이 아프고 죄스러웠다. 나는 그 봉투를 내가 졸업한 해에 썼던 다이어리에 반으로 접어 붙여놓았다. 매해가 끝날 무렵 그 해 쓴 다이어리를 상자에 담을 때면 가끔 그때의 다이어리를 펼쳐 편지를 읽는다. 편지를 볼 때마다 나는 울게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대학교에 입학하며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기숙사의 높은 경쟁률을 뚫지 못한 나에게 아빠는 할머니 집에서 통학하기를 권유했지만 나는 먼 거리를 이유로 그러지 못하겠다 말했다. 긴 통학 시간도 결정에 한몫하기는 했지만, 할머니와 산다면 무척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도 적지 않았다. 할머니의 집은 성남에 있는 모란시장 옆이었고 서울에 살면서 나는 동생과 함께 가끔 할머니 집에 갔다. 할머니 집에 갈 때면 등이 굽어 지팡이를 짚고 아주 천천히 걸어야 하는 할머니와 자주 장을 보았다. 할머니는 고기나 생선을 사서 진수성찬을 차려 주었다. 거하게 차려진 한 상을 다 먹고 나서도 우리는 부엌 어딘가에 놓여있던 빵과 냉장고의 과일과 야쿠르트까지 먹어야 했다. 하나라도 먹지 않으면 할머니는 우리가 할머니가 준 음식을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처럼 여겼다. 아빠는 우리가 할머니 집에 하루를 가더라도 할머니는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는 하루, 우리가 머무르는 하루, 그리고 우리가 왔다 간 다음 날의 하루까지 3일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빠의 바람만큼 할머니 집에 자주 가지는 못했다.


 동생과 나는 할머니의 하얀 피부와 작은 얼굴과 백발을 사랑했고 할머니가 여러 가지 색으로 뜬 카디건이나 양말을 아름답게 여겼다. 동생은 자주 할머니의 살결을 쓰다듬고 할머니의 다리를 주물렀다. 할머니는 동생이 할머니를 주물러 주는 것을 좋아했다. 뒤늦게 성당을 다니기 시작한 할머니는 작은 방 안의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돋보기안경을 쓰고 성경을 읽었다. 할머니는 종종 격양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볼 때면 다행스럽고 평온한 마음이 되었다. 동생과 나는 할머니에게 '사랑해'가 영어로 '아이 러브 유'라고 가르쳐드렸고 할머니는 매번 잊어버렸다. 할머니는 긴 머리가 치렁치렁하고 보기 싫다고 묶으라고 잔소리를 했고 올 때마다 예쁘다고 칭찬을 하기도 했다. 늦은 아침 할머니 집에 갔다가 이른 저녁에 집에 가려고 하면 할머니는 깜깜해져서 위험하니 자고 가라고 했지만, 다음에 자고 가겠다고 말하고서는 할머니 집에서 잔 적은 거의 없다. 집에 가려고 일어나면 할머니는 늘 전기장판 아래나 장롱 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주며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고 했다.


 할머니는 문맹이 흔했던 시대에 태어나 일찍 할아버지를 보내고 홀로 두 아들을 키웠다. 두 아들은 모두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에게 손녀의 대학과 졸업이 얼마나 중요했을지 알지 못한다. 뒤늦게 한글을 깨쳐 한 글자도 쓰기가 힘든 할머니의 편지를 받은 일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할머니를 그런 마음으로 사랑한 적이 없을 것이다.


 사랑은 기울어진 마음에서 시작한다. 때때로 그 기울어진 속성이 사랑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모든 관계를 떠올릴 때면 마음이 아프다. 할머니가 꾹꾹 눌러쓴 글씨를 보며 기울어질 용기를 잃고 또 얻는다.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의 사랑에게 최선을 다하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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