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을 수정하며

완경 일지 9

by 이화정

오사다 히로시의 시 [나무의 전기]를 읽다가 '늙는다는 건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문구에 밑줄을 그었다.


아름다움이 전부는 아니었다.
덧없음을 알고, 애처로움을
느끼고, 늙어감을 배웠다.
늙는다는 건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뜻한 것은 따뜻하다고 말해라.
하늘은 푸르다고 말해라.

-오사다 히로시 <세상은 아름답다고> '나무의 전기 ' 중에서


이글거리는 날들 뒤에 찾아온 비가 반가웠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누워있다가 긴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휴일의 낮잠도 사치라 여길 만큼 할 일이 쌓여 있었지만 마음은 안 따라주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는 며칠을 보냈다.

나이 듦을 의식할 때가 많아졌다. 눈에 보이는 증상들은 차치하고라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내가 쪼그라든 마음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요즘, 그 생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의식한다.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미 태어난 이상 바꿀 수 없는 것, 이미 주어진 환경, 이미 선택한 일. 그 사이에서 내 의지대로 해나갈 수 있는 일, 열심히 노력하면 그나마 바꿀 수 있는 것, 조금 더 애쓰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매진하며 살았다.

열심히 사는 사람, 이라는 말을 들어서 정말 그런 사람이 되려고 더 의지를 불태운 것도 같다.


장마가 끝났다는 표시인지 밤에도 더위는 가시질 않아 후덥지근한 공기에 운동하러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떤 날은 홈트 영상을 따라 해 보았다. 그래도 운동을 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걸을 때 생기는 에너지는 얻을 수 없었다. 다음 날은 더 더웠다. 운동을 포기했다. 열흘 전의 나는 의기충천했지만 지금은 한없이 의기소침한 상태로 웅크리고 있다.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지만 그중에 가장 어찌할 수 없는 게 인간관계다. 다른 사람이 내 맘 같지 않다는 말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각각 다른 상식의 기준이 있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고, 관계를 시작하고 맺는 모양도 제각각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는 나는 지난 7년 동안 정말 다양한 관계 속에서 배우고, 깨지고, 성장하고, 넘치는 애정을 받았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무엇보다 강해졌다. 쉽게 상처받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것, 생각해보면 중요하지 않은 것,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사실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고, 생각해보니 심각한 것이었고,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자꾸만 나를 짓누르는 돌덩이가 되어 결국은 나를 꼼짝없이 내리누르고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지금껏 읽은 좋은 책들이 가르쳐준 대로 나를 추스르고, 나를 존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힘을 내고, 스스로 비축해두었던 자존감으로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거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얻은 귀한 깨달음, 겸허히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사실은 이전과는 좀 다른 것이다.


'마음도 나이 든다. 마음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많아진다.'


어떤 일 하나의 여파가 그 일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알게 모르게 쌓여왔던 작은 파편들이 조금씩 덩어리 져 가고 있다가 결정적인 어떤 한 조각이 자리 잡는 순간 어떤 실체가 드러난다. 당혹스럽더라고 피하지 말고 마주해야 할 것이다.


생애주기 중 완경기는 여러모로 중요하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많은 시기다. 요즘 나는 많은 질문에 둘러싸여 혼란스럽지만 회피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무엇보다 내 의지의 한계점을 너무 높이 잡아 놓은 것은 아닐까 점검하며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 지나친 책임감을 내려놓기, 모든 걸 좋게 좋게-라는 환상을 깨기'를 연습 중이다.

신체적인 활동에 마음이 끼치는 영향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마음의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내일은 아무리 덥더라도 걸어야겠다. 글을 쓰다 말고 알람 설정을 해 두었다.


8월 1일 오후 8시. 비가 와도 걸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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