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이라는 말을 자랑스러워하기로 했다.

완경일지 13

by 이화정

메리 루플이 1998년 4월에 썼다는 울음 일기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의 슬픔이 실감 나지 않았다. 얼마나 슬픈 달이었길래 하루에 몇 번 울었는지를 기록했을까, c(cried) 자 표기를 신기하게 들여다보기만 했다. 책을 읽은 지 1년 반이 지나 다시 펼쳐보는데, 어느 화요일에 표기된 ccccc라는 글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다섯 번이나 눈물이 났던 이유는 '우울증이 아니었다. 폐경 (menopause)이었다.' (33)

이 글을 읽거나 폐경에 관해 쓴 어떤 다른 글을 읽는대도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폐경에 반응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그건 우리의 몸에 달려 있다. 또한 자기가 자기 몸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해도 (요가를 많이 하면 힘이 생긴다고 하는 것처럼), 실제로는 그럴 수 없다.

- 메리 루플 <나의 사유 재산> 35

완경일지를 쓰게 된 계기는 몸의 변화를 실감하고 부터다. 어떻게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몸이 아플 수가 있을까, 당혹스러움과 함께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폐경기, 갱년기 증상들에 대해 온통 무겁고 부정적이기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이제 생리대를 안 사도 되네? 와, 생리 때문에 귀찮을 일이 없어졌어!' 하며 한바탕 웃었어도 씁쓸함만 남았다. 서로 자기 증상이 더 심하다며 경쟁적으로 이야기하던 선배들이 여자로서의 삶은 이제 끝났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 솔직히 나랑은 상관없다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곧 내게도 닥칠 줄도 모르고 말이다.

생의 전환기에 자신의 서사를 꿰어보며 현재 나는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으며,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로 기록되길 바라는지 돌아보는 일은 중요하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38년여 매달 속옷에 혈흔이 묻으면 생리대를 챙기고, 평소보다 화장실을 자주 가서 혹시나 티가 나진 않는지 살피며 살았다. 자다가 이불에 묻히면 투덜투덜 손빨래를 한 후 세탁기를 돌리는 일은 얼마나 많았나. 기분 나쁘게 아랫배가 묵직해지고, 몸이 좋지 않은 날이면 어그적거리며 걸어야 할 만큼 컨디션이 나빠지곤 했다. 생리대 종류는 왜 그렇게 많은지 마트에서 더 저렴한 걸 골라 쓰다가 염증이 생겨 고생하던 날도 많았다. 유해 성분에 대한 기사가 터질 때마다 유기농 마크, 천연성분 표시를 꼼꼼하게 살피느라 시간을 허비한 적은 또 어떻고. 면 생리대를 시도했다가 두 손 들고 포기하기도 했고, 재작년인가는 생리컵을 사려고 인터넷을 뒤지다 결국 접고 말았다. 이제 얼마나 더 하겠어, 하며.


딸과 함께 수영을 다닌 지 두어 달. 생리통이 심한 딸은 저번 주 내내 수영장을 가지 못했다. 어느 지역에선가 여성 회원들은 생리 기간 회비를 감면해준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어 너도 가서 요구해보라고 딸에게 말하자 '그게 과연 먹히겠어?' 하는 표정으로 대답도 안 하는 딸을 보며 착잡했다. 그래, 엄마도 선뜻 말을 못 꺼낼 듯싶다.

딸을 두고 수영장에 가면서 신나게 소리쳤다.

"앗싸~ 엄마는 이제 자유야!"

아이들 어릴 적 둘이나 수영 강습 시키는 게 부담 돼 나는 같이 배울 생각도 못했다. 그때도 계산기 두드리며 생리하면 일주일이나 빠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부담되는 건 마찬가지. 이제는 아깝게 빠질 일이 없으니 이게 웬 횡재인가 싶기도 하다. 생리를 멈춘 덕분에 수영을 흔쾌히 시작한다, 뭐 이런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써놓고 보니 멈춤의 긍정적 면이 돋보이는 것 같다. 폐경은 끝이고, 닫히는 것만은 아니니라 시작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문을 열 기회인가 싶기도 하다.


메리 루플은 당신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썼다. '먼저 당신은 멈춰야(pause)한다. 기백을 발휘하려면 일단 멈춰야 하듯이. 그저 심호흡만 하려는 것이라 해도' 라고 말하는 그의 말들은 단단하고 당찬 여인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멈춤의 부정적인 말을 정면 돌파하듯 메리 루플은 '그럼에도 당신은 자유롭다'라고 말한다. 심지어 1년이든 20년이든 남아 있는 시간에 감사를 느낀다는 구절도 인상적이었다.


폐경 후 여성들을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인 양 취급하지만 작가처럼 자신의 서사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책에 늘 매혹된다. 사회가 은근슬쩍 주변부로 밀어내는 존재들 속에 나 또한 예외가 아닐 터. 이런 책을 읽으며 나의 희미해지는 존재감을 책의 언어로 선명하게 재정비하게 된다.

이 책에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메리 루플도 40대까지만 해도 자신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무지하면서도 그 무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다며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편견과 무지를 겸허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을 존경하게 된다. 폐경이라는 말을 버리다시피 하고 완경이라는 말을 선택한 내게 매리 루플의 정면 돌파형 글과 옮긴이의 통찰력 넘치는 글은 서늘한 자각과 더불어 좁고 편협한 시선을 넓힐 기회를 주었다.

초고 때부터 <멈춤>에 등장하는 'menopause’의 번역어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폐경閉經’이라는 말에 내포된 부정적 어감 때문에 '완경完經'이라는 단어로 대체하자는 의견이 현재는 상당수이고, 실제로 적잖은 맥락에서 완경이라는 단어가 쓰인다. 출판사의 편집자도 이 용어를 선택해보자는 제안을 해주었다. 그전부터 나는 이에 대해 오래 생각하며 텍스트의 안쪽과 바깥쪽을 고려해본 참이었다. 먼저, 텍스트 내적인 맥락에서 이 특정 에세이는 '메노포즈'가 가진 부정적인 의미, 즉 멈춤이라는 근원에서부터 글이 떠오르기 때문에 그 어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부정적인 단어가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글의 흐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또, 글을 벗어나서도 ‘완경'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맥락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단어에는 완료의 의미가 주어져 있고, 이는 난포를 한 달에 하나씩 사용하는 월경이 여성에게 부여된 과업이며 이를 완료한 것을 축하하자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번식의 일이 이제는 완성되었으니 당신은 다음 단계로 가도 됩니다, 하는 태도가 있다. 하지만 정말로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여성에게 월경이란 꼬박꼬박 찾아오는 귀찮은 손님이자 찾아오지 않으면 소식이 궁금하고 급기야는 불안해지는 친구와 같다. 임신과 모성에 관한 많은 신화와 달리, 월경도 폐경도 실제로는 그토록 아름답고 축복된 일이 아니며 많은 여성들에게 그것은 그저 태어났기에 겪어야 하는 신체의 변화일 뿐이다. 더욱이 임신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들에게는 번식을 위한 월경의 의미가 특별히 엄숙하지도 않고, 닫힌다는 의미보다 완료된다는 의미가 더 긍정적일 것도 없다. '앞으로 임신을 하지 않겠다는 몸의 선언'의 의미로 완경이라는 용어를 쓴다면, 처음부터 임신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월경, 임신, 출산, 폐경. 이러한 신체 작용은 생물학적 여성의 특성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사건들 자체가 여성성을, 여성의 삶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여성의 삶은 번식 가능성과 반드시 결부되지 않는다. 번식의 끝이 완성의 의미를 주지 않는다. 하나의 문이 닫히고 그 너머의 문이 다시 열리듯이, 삶은 한 사람 안에서 오래오래 이어진다.

-옮긴이 박현주 (소설가, 전문번역가, 에세이스트)

폐閉, 멈춤- 여성성의 종결, 임신 가능성의 종결로 치부하려는 남성 중심의 사고에 반대한다. 멈춤이 가져다준 홀가분함들- 생리대를 더 이상 사지 않아도 되고, 생리 때문에 수영장을 못 가는 일 따위는 없고, 혹시나 생리혈이 샜을까 자꾸만 뒷모습을 거울에 비춰봐야 하는 번거로움을 벗어던진 걸 기념하고 싶다. 농담 반 진담 반, 샛째가 생길까 피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지긋지긋한 생리통에 시달리지 않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멈추고 나서 생긴 증상들이 노화와 퇴화의 과정에서 생기는 불편감과 통증뿐이라고 여긴 시선을 거두고, 멈춘 뒤 다시 정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부지런히 찾아보려고 한다.


폐경이라는 말도, 완경이라는 말도 내 삶의 길고 긴 월경의 역사를 정의 내릴 수 없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성 경험과 경이로우면서도 고통스러웠던 두 번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찾아야 할 이름이 무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폐경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메리 루플의 말을 믿어보겠다.

행복한 노년은 맨발로 다가오며, 그와 함께 우아함과 상냥한 말들을 가지고 온다. 음울한 청춘은 절대 알 수 없었던 방식으로.

-메리 루플 <나의 사유 재산> 35

나는 폐경이라는 말이 자랑스럽다. 그동안 생리하느라, 차곡차곡 월경의 역사를 쌓느라 고생하고 수고한 내가 기특하다. 멈추고 난 뒤 충분히 숨을 고르며 여기저기 아픈 몸을 살뜰히 돌봤다. 아직 완完이라는 말을 쓰기에 나에게는 열린 문들이 너무나 많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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