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경 일지 12
괜히 그랬어. 도움이 되길 바라서 꺼낸 이야기였는데 그 이후로 균열이 생긴 것 같아. 결국 이렇게 마음에 큰 구멍만 남았네. 다시는 함부로 마음을 쏟아붓지 마. 쓸데없는 오지랖은 그만. 다 부질없어.
-수영 강습 겨우 두 번 했는데. 수영장에 다시 들어가긴 글렀어. 이 몸 상태가 회복되려면 이번 달은.... 수강료만 날렸네. 9월엔 물이 차가워서 못 할 거야.
-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네. 비문증이 더 심해졌어. 뭐가 이렇게 많이 날아다니지? 이제는 책도 맘껏 못 읽게 되는 걸까? 무슨 낙으로 살지?
- 50대의 노화란 이런 거구나. 기력이 이렇게 약해질 수도 있다니. 내가 마음먹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겠구나.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거였어. 늙는다는 게 이제 실감이 나네
- 열심히 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고집을 부렸구나. 내가 이렇게도 많이 잘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네. 3년 치 못 잔 잠을 다 잔 거 같아. 잠을 줄이며 일하지는 말자. 제발.
-이제 여행 가기 더 어렵겠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어떻게 예약을 해.
-사람에 대한 기대, 관계를 가꾸고자 하는 열망이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날마다 사랑할 준비를 한다. 내 앞에 마주 앉아 있는 사람,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사람이 그 순간은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 여기며 온 마음을 기울이기로 한다.
-추워서 못하고, 돈 없어서 못하고, 수영복이 없어 못하고, 물이 걱정돼서 못하고, 수영장이 멀어 못하고..... 그러다 겨우 큰맘 먹고 시작한 수영을 혹시라도 감기에 걸려 강의에 지장을 줄까 봐 못하고 있다.
예전 같지 않게 자꾸 몸을 사리게 된다. 감기쯤이야 일상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 거라 자신하던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현재를 온통 근심 걱정으로 채우는 일은 하지 않겠다. 문제를 피해 갈 궁리만 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보려 한다.
- 노화의 증상으로 이미 퇴화되거나 망가진 것들의 목록을 적으라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서글퍼질 때가 많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그동안 애쓴 내 몸을 치하하기로 한다.(몸에게 진짜 잘 보여야 한다.)
- 의지와 열정이 예전 같지 않다. 수시로 의기소침해지는 나를 무기력하게 바라볼 때가 많아졌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가슴이 뛰다가도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치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시작을 시작해야 한다. 나를 이끌어주는 훌륭한 선배들이 지켜보고 계시니까.
- 낮잠 한 번 자지 않고 새벽 한두 시까지 일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절감하는 순간이 있다. 이제는 잠깐이라도 쪽잠을 자야 버틸 수 있다. 그래서 즐기기로 했다. 달콤한 낮잠이라 부르며 이왕 자는 거 10분이라도 편하게 누워서.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도 주춤한다. 양가 부모님들의 건강 상태가 진짜 예전 같지 않아서다. 혹시나 멀리 가 있을 때 병원이라도 급히 모시고 가야 하면 어쩌나,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실까 전전긍긍. 한없이 우울해지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감사'라는 단어를 부여잡는다. 두려움이 엄습하면 밝고 낭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드린다. 지금을 놓치면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