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10) 운동회 날 먹었던 짜장면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유치원 운동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어린이집에서도 운동회를 한 적이 있지만, 모두 9개 반 200명이 훌쩍 넘는 규모의 운동회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도 한 달 전부터 응원가를 배우고 선서문도 연습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운동회 준비(운동이 아닌 다른 요소들)를 하는 듯 보였다.
계주를 뛸 부모들의 신청을 받는다는 안내장에는 가볍게 '신청'에 표시했다. 잘 뛰든 못 뛰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운동회가 일주일 남았으니까 오늘 저녁부터는 달리기 연습을 해야겠어."
"그래 좋아!"
우리는 운동회를 계기 삼아 저녁을 먹고 난 후 집 앞 길에서 가족 달리기 시합을 했다. 실제 계주를 위한 연습이라기에는 장난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우리는 1등을 하자며 기운차게 외쳐댔다.
그렇게 운동회 하루 전날, 체력을 보충하자며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누워서 운동회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표현했다.
"우리 내일 운동회에게 재미있게 놀자. 그런데 엄마가 잘 못 달리면 어쩌지? 으~ 떨려!"
"괜찮아. 엄마가 못해도 화내지 않을게."
"우리 딸, 고마워."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짓는데, 아이가 한 마디를 덧붙인다.
"엄마, 엄마가 일등하든 꼴등하든 꼭 맛있는 거 먹자."
"그래."
대답을 하고 생각해 보니 아이의 말이 왠지 익숙했다. 어린 시절 '운동회 끝나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던 부모님의 말씀과 어찌 이리도 똑같은지. 아이는 뭘 알고 이 말을 꺼냈을까? 곱씹을수록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토요일 오전 시간, 운동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나는 부모의 체면을 버리고 목이 터져라 우리 팀인 '홍팀'을 응원했다. 그래서 계주는 어떻게 됐냐고? 선수 선발은 신청한 여러 엄마들 중 추첨을 통해 한 명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모든 추첨에서 그렇듯이 똑 떨어졌다. 다들 이 악물고 번개 같은 속도로 달리는 계주 경기를 보고 나니 내가 뽑히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기로 했지? 뭐 먹고 싶어?"
말을 건네자마자 아이는 "탕수육!"을 외쳤다. 중국음식점에 가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탕수육과 간짜장을 시켰다. 이 장면 역시 너무나도 익숙해 웃음이 흘렀다.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 내 앞에서 짜장면을 먹던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부모님 얼굴이 겹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