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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껏 Oct 10. 2024

"적고 싶은 칭찬은 전부 칭찬카드에 적어도 돼."

아이의 말(9)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칭찬카드에 대해 

"다녀왔습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돌아보면 곧장 주방 앞으로 와서 바닥에 앉은 다음, 가방에 있는 짐을 모두 풀어놓는다. 그날 친구들과 만든 종이 접기부터 활동했던 여러 도구들을 죄다 꺼내어서는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풀어놓는다. 바쁘게 저녁을 준비하다가도 그 시간만큼은 아이의 하루 회상에 귀 기울인다. 하루는 반으로 접힌 A4 용지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뭐야?"

 "응. 칭찬 카드야. 여기 보면 나를 칭찬해 준 친구 이름과 사인이 되어 있고, 선생님도 칭찬을 적어 줬어. 엄마 아빠는 여기 아래칸에 적으면 돼."


 아이의 말대로 친구 세 명의 이름과 사인이 있는 표 아래 가족들의 칭찬을 적는 칸이 그려져 있었다. 옆쪽에 길쭉하게 비워진 여백 칸에는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가 적혀 있었다. 딱 한 줄 정도 적을 수 있는 크기라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음... 무슨 칭찬을 적지? 엄마는 우리 딸 칭찬할 게 너무 많은데 이 카드에는 하나밖에 적을 수 없어서 아쉽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엄마가 만든 밥을 맛있게 골고루 먹어요.'라고 적었다. 이렇게 제출하면 되겠다, 나름 엄마의 숙제를 해냈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내 말을 받아쳤다. 


 "더 적고 싶으면 더 적어도 돼."

 "그러면 칸이 넘어가서 옆쪽으로 글씨가 삐져나올 텐데 괜찮아?"

 "응, 괜찮아!"


 속으로 흠칫 놀랐다. 평소 아이는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에 정해진 선을 넘어가는 일을 불편해했는데, 이때만큼은 흔쾌히 허락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칭찬이 넘쳐난다면 그까짓 선을 넘는 것쯤이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이가 허락했으니 나도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 뒀던, 틈틈이 아이에게 전해 줬던 칭찬들을 번호를 붙여가며 나열했다. 


- 엄마가 요리할 때 잘 도와줘요.

- 놀고 난 뒤에 뒷정리를 잘해요.

- 가족들과 빨래를 함께 개어요. 

- 엄마에게 힘이 되는 예쁜 응원의 말을 자주 해줘요.

.

.

.


 어느덧 칭찬카드의 경계는 사라지고 여기저기 여백들은 내 손글씨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이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으나, 칭찬카드 이야기는 숙제를 제출하는 일주일 후까지 계속되었다. 매일 아침, 아이는 카드를 들고 와서 질문을 한다. 


 "엄마, 칭찬카드에 더 적을 게 있으면 마음대로 적어도 돼."


 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나에게 적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결국 "나를 칭찬해 주세요."라는 진심을 말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속는 척하며 아이 말에 답했다. 


 "정말? 가득 채워도 돼? 적을 게 너무 많긴 하지만 매일 하나씩만 적어 볼게."

 "좋아!"


  이렇게 매일 아이에게 하려던 칭찬을 글로 적어보면서, 문득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칭찬카드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른들 역시 "날 칭찬해 줘", "칭찬받고 싶어"라는 말은 멋쩍어 차마 하지는 못하고, 그저 마음속 여백이 많은 칭찬카드만 만지작거리며 지내고 있지 않나. 그것이 짜증으로, 화로, 불안으로, 걱정과 우울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칭찬카드에 적고 싶은 칭찬을 적어도 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칭찬카드 숙제는 끝이 났지만 앞으로 나는 아이의 마음속 칭찬카드를 가득 채워나가려 한다. 언젠가 아이가 "엄마! 칭찬 좀 그만해. 이젠 칭찬 쓸 자리도 없어."라고 할 때까지. 그리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품고 있을 칭찬카드에 칭찬 한 줄씩이라도 덧붙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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