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8) 아이가 떠올리는 자신의 미래
여느 때처럼 저녁식사를 마치고 목욕을 한 다음,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아이와 함께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종이 접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말을 건넨다.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착한 아이를 낳을 거야."
이렇게 앞뒤 맥락 없이 툭 튀어나오는 말을 들을 때는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잠시 멍해진다. 그러면 나는 "오, 그래?"라고 대답을 하며 잠시 시간을 버는 동시에 생각이 복잡해진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지? 유치원이나 어떤 방송에서 저출산에 대한 우려 섞인 말들을 들은 걸까? 아이를 낳을 그 미래는 얼마나 긴 시간 후인지 알고는 있을까? 자라는 동안 아이를 안 낳겠다, 결혼을 안 하겠다란 말이 더 먼저 나오지 않을까? 만약 아이의 말한 미래가 실현된다 해도 그냥 아이를 낳으면 되지 왜 굳이 '착한 아이'라고 표현했을까?
나는 아이의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마음에 질문을 이어갔다.
"착한 아이는 어떤 모습인데?"
"응, 유치원 가라고 할 때 징징대지 않고 잘 가는 아이야. 밥 먹고 나서 양치도 잘하고, 엄마가 시키는 심부름도 잘하는 아이."
아, 딸아이가 생각하는 착한 아이는 '자신이 엄마에게 되고 싶은 아이'의 모습이었구나. 말을 듣고 보니 아이가 너무 기특해 보였다. 자기 앞가림은 언제쯤 잘할까, 걱정이 앞서는 꼬맹이인 줄 알았더니 속으로는 매 순간 엄마한테 어떻게 하면 좋은 딸이 될 수 있을까 염려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했다. 내가 은연중에 아이에게 그런 압박을 느끼게 한 건 아닌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근데 말이야. 착한 아이 나쁜 아이란 것은 애초에 없어. 그냥 모든 아이는 그 자체로 소중해."
"아, 그래?"
나는 평소에도 아이에게 '착하다'라는 표현을 즐겨 쓰지 않는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착하다'라는 칭찬이 자칫 이 아이를 평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넌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야.", "엄마한테는 네가 제일 소중해."처럼 '소중하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나는 '소중하다'라는 단어에서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며칠이 지나 아이와 빨래를 개고 있는데 아이가 또 말을 한다.
"엄마가 나를 잘 돌봐 주니까 난 이다음에 착한 아이를 낳을 거야."
지난번과 같은 말인데 이번에는 문장 앞에 이유가 붙었다. 코끝이 찡해 왔다. 말을 한 아이는 정작 아무 생각 없었겠지만, 나는 이 말에서 세대의 연결을 느꼈다. 엄마의 사랑을 이어받아 자신도 다음 세대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말이다.
아이가 나의 부족한 사랑을 진심으로 느껴줘서 고맙다. 아래에서 위로 흘러간 이 크나큰 사랑은 어디로 전달하지? 아참, 나의 부모님이 있었지. 내 아이가 나를 '착한 딸'이 되고 싶게 만든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착한 아이를 낳을 거야."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착한 아이를 낳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