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귤예지 Oct 27. 2024

영이와 현수 (5)

모녀는 퇴실시각까지 5분이 채 남지 않은 때까지도 아직 숙소에 있었다.

“잘 좀 생각해봐. 어디다 뒀는지.”

“여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우, 그 말만 벌써 몇 번째야. 바로 몇 시간 전 일인데 왜 기억이 안 나!”

사라진 건 호텔 카드키였다. 현수가 식탁 위에 올려둔 게 감쪽같이 사라진 거다. 사라진 건 카드키 뿐은 아니었다. 현수가 혼자 비운 맥주캔과 허니버터칩 봉지도 함께 사라졌다. 일찍 일어난 엄마가 평소 습관대로 주방을 정돈한 결과였다.

카드키를 분실하면 5천원을 벌금으로 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엄마는 급기야 휴지통을 바닥에 쏟아 부었다. 오염된 내용물을 하나하나 다시 주워 담으며 확인했지만 카드키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체크아웃 후 렌터카로 돌아온 현수는 속이 견딜 수 없이 부글거렸다. 고작 5천원 때문이 아니었다. 카드키를 잃어버린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진짜 문제는 불과 몇 시간 전 일을 떠올리지 못하는 엄마의 기억력이었다. 티비에서만 보던 치매 같은 병이 엄마에게 올 수 있다는 상상으로 현수는 못 견디게 화가 났다. 

카드키 하나 잃어버린 걸로 잔뜩 주눅 든 엄마 모습에도 화가 났다. 모처럼 온 여행지에서 왜 자꾸 화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꾸 화가 났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에게 착한 딸이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할 수 있는 말도 괜히 톡톡 쏘아붙였고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엄마와의 커플모자도 가방 깊숙이 찔러 넣어버렸다.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마음이 불편한지 현수의 눈치만 살폈다. 여행기간 내내 붙들고 있던 휴대폰도 안 보고 현수의 얼굴만 쳐다봤다. 현수는 운전을 핑계 삼아 엄마의 시선을 피했지만 차가 막히는 구간에 들어서자 어색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여행의 마지막을 서먹한 분위기로 마무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비행기 탑승까지는 아직 5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어디든 목적지를 정해야 했다. 

어제 가려다 만 고등어구이집으로 방향을 틀지 고민할 때였다.


“엄마 가고 싶은 데 있어.”


먼저 정적을 깬 건 엄마였다.


“어디?”


현수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꾸했다.


“카페.”

“카페?”

현수가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딸이 고개 돌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현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응. 커피도 팔고 빵도 파는 그런 카페.”

“빵도 파는?”

“제주도에는 바닷가에 그런 카페가 많다며.”

“유튜브에서 그래?”

“그러더라. 아는 카페 없어?”

“......”

“이왕이면 새로 생긴 데로 가자. 깨끗해서 더 좋을 것 같아.”

“......”

“아는 데 없으면 뭐, 그냥......”


더 머뭇거리면 안 되겠다고 느낀 현수가 결심이 선 듯 대답했다.


“있어! 아는 데.”


현수가 성급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내비게이션에 P카페 주소를 넣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채였다. 

그래, 이왕 제주까지 왔으니 한번은 보고 가자. 그냥 가보기만 하는 건데 뭐.

P카페는 공항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었다. 원래 가려던 고등어구이집과도 멀지 않았다. 엄마의 반응을 보고 시원찮으면 바로 고등어구이집으로 가야겠다는 계산까지 마친 후 현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