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만나면 왜 자꾸 짜증이 날까.
어느새 다 익은 고기가 식어버릴까 봐 현수는 애가 탔다. 화장실에 가려면 진작 다녀오지 왜 하필 고기가 다 익기 직전에야 가는 걸까. 게다가 10분이 넘도록 깜깜무소식인 건 또 뭐고.
엄마에게는 무심코 고른 척 굴었지만 현수 혼자였다면 단연코 오지 못했을 식당이었다. 방목해 키운 흑돼지와 전복, 버섯, 인삼을 곁들여 먹는 이 식당은 여느 흑돼지식당보다 두 배쯤 비쌌다. 모처럼 여행 온 엄마를 위해 숙소며 식당이며 모두 최고급으로 고른 희수였다. 그런데 엄마는 이제 다 식어버린 고기를 먹게 될 참이다. 조바심과 동시에 짜증이 치밀었다.
짜증이 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자줏빛 누빔모자라니. 현수의 취향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다. 심지어 커플모자다. 조금 전 식당에 들어올 때 종업원이 모자 두 개를 차례로 훑는 시선을 엄마는 정녕 못 느낀 걸까? 당장이라도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엄마가 실망할까 봐 현수는 차마 싫은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엄마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데 선수였다. 오늘도 그랬다. 이제는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현주 얘기를 왜 자꾸만 꺼낼까. 현주가 시집을 가든 말든, 임신을 하든 말든, 그게 현수와 무슨 상관이냔 말이다.
사실 그건 엄마의 특기였다. 현수 앞에 목표물을 하나 툭 던져주고 따라잡아보라고 은근히 압박하는 거. 어린 시절의 목표물은 성적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대학, 그 후에는 번듯한 직장이었다.
현수는 엄마 친구들이 모두 인정하는 착한 딸이자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은 엄마가 현수에게 주입한 가장 큰 목표물이었다. 그것은 다른 목표물의 달성을 부추기는 지렛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현수가 제법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 지금의 직장에 입사하기까지 엄마 공이 컸던 건 사실이다.
엄마가 번듯한 직장 다음으로 제시한 목표물은 ‘결혼’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현수가 만난 남자들 중 엄마의 요구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사람은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 현수는 엄마가 은근히 바라는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존재하더라도 과연 자신을 좋아할까 의심이 들었다. 현수는 자신이 엄마 생각만큼 예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고 느꼈다.
“네가 어디가 어때서.”
화장실에서 돌아온 엄마가 다짜고짜 현수를 나무랐다. 조금 전까지 현수 머릿속에서 떠돌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무슨 소리야? 어서 고기부터 먹어. 식고 있어.”
“고기가 중요해? 네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데.”
“왜 이래? 알아듣게 말해.”
엄마가 헛기침을 두어 번하더니 짐짓 딴청을 피우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누가 당장 결혼하라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만나보다가 괜찮으면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정 안 맞으면 헤어질 수도 있고......”
“엄마는 참, 그런 거 필요 없다니까!”
결국 또 신경질이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와버렸다. 엄마 말이 다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렇게 좋은 거면 엄마가 해.”
“엄마더러 결혼을 하라고?”
“그래. 연애든 결혼이든.”
“얘가 농담도 잘하네.”
꽤 날카로운 현수의 말을 엄마가 농담이라고 여긴 건 다행이지만 사실은 농담이 아니었다. 어쩌다 튀어나온 말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마음으로 바라던 일이었다.
“농담이라니? 왜 난 되고 엄마는 안 돼?”
“넌 아직 젊고 예쁘잖아. 나는 나이도 들었고 주름도 많은데 누가 좋아해주겠니.”
“누가 좋아해주면 연애할 생각은 있고?”
“얘는.”
순간 발그레 물든 엄마 얼굴을 보면서, 현수는 엄마가 일생에 걸쳐 제대로 된 연애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는 맞선으로 만나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1년이 채 못 되어 남편과 이별한 엄마는 지난 38년 동안 현수의 엄마이면서 동시에 아빠 노릇을 했다. 엄마가 평생에 걸쳐 느꼈을 빈자리를 깨달을 때마다 현수는 가슴이 먹먹했다.
이제 와 그 빈자리를 알아버린 것도 문제였다. 빈자리가 내내 빈자리로 존재해온 이유가 순전히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 엄마가 견뎠을 외로움과 책임감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현수가 갚아야 할 빚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엄마 옆에 누군가가 있어준다면 어떨까? 같이 밥 먹고 여행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관계가 엄마에게도 있다면? 엄마도 일생에 한번은 가슴 떨리는 사랑을 해봐야하지 않을까?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현수도 원하는 일을 시작하기가 조금은 더 편할 텐데.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현수는 스스로가 너무 이기적인 사람처럼 느껴져 마주 앉은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왜 이렇게 못 먹어?”
현수가 잘 익은 고기 세 점을 엄마 접시 위로 옮기며 물었다.
“못 먹긴.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
엄마가 보란듯이 상추 한 장을 집어 손바닥에 올렸다. 그 위에 양파 절임을 잔뜩 얹고 새끼손가락만한 고기 조각을 겨우 하나 얹더니 입에 넣고 공들여 씹었다.
현수는 엄마가 다 삼키는 걸 확인하고서 물었다.
“내일 가보고 싶은 데 있어? 제주는 처음이잖아.”
“그래. 너무 맛있네. 딸이 사주는 고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가보고 싶은 데 없냐니까.”
엄마가 잠시 딴 데 두었던 정신을 되찾은 듯 흠칫하며 말했다.
“어디 일부러 안가도 돼. 너랑 여행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데 뭐.”
“말 타러 갈래?”
“응? 뭐?”
“말 말야. 말.”
“아서라, 날도 추운데 뼈라도 다치면 어쩌려고.”
“수족관은? 가 본 적 있어?”
“수, 무슨 관?”
“수족관. 물고기들 볼 수 있는 데.”
“아, 너는? 가 보고 싶은데 없어?”
엄마의 질문에 바로 떠오르는 데가 하나 있긴 했다. 제주여행을 계획하며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 얼마 전 애월에 새로 오픈한 P카페였다.
회사 근처 단골카페의 빵 맛이 달라진 이유가 제빵사의 퇴사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현수는 검색 끝에 그녀의 SNS 계정을 찾았다. 그녀는 퇴사 후 제주에 카페를 오픈한 모양이었다. 아담하지만 개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예쁜 카페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빵 사진을 볼 때마다 현수의 머릿속에서는 그곳의 냄새와 온도와 잔잔한 소음까지도 생생하게 그려졌다. 직접 보지 않아도 본 것처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현수가 꿈꿔온 그림이기도 했으니까.
사실 엄마와의 여행지로 제주를 고른 데는 그런 이유도 조금은 있었다. 함께 P카페를 찾아가 고소한 빵과 커피를 사이에 두고 고백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마음 깊이 간직해온 꿈에 이제는 도전해보고 싶다고. 엄마가 원하는 회사원으로 10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내가 원하는 일도 해보고 싶다고.
막상 공항에서 엄마를 만나니 애써 쌓아올린 용기가 절반쯤 녹아버렸다. 고2 때, 대학에 가는 대신 빵 공부를 하겠다고 처음으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노발대발하던 엄마 반응이 떠올랐다. 일단 좋은 대학에 합격한 후에 원하는 대로 살라던 엄마는 현수가 대학생이 되자 말을 바꿨다. 빵 같은 건 마음먹으면 언제든 만들 수 있으니 일단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부터 하란 거였다.
그 뒤로 엄마는 빵집 근처에는 얼씬도 않았다. 현수 모녀는 생일에도 케이크 대신 시루떡에 초를 꽂았다. 엄마는 시루떡의 팥이 나쁜 귀신을 쫓기 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현수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건 현수에게 꿈 얘기를 꺼낼 빌미조차 주지 않겠다는 엄마의 의지였다.
제주로 넘어 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머지 절반의 용기도 스르르 녹아버렸다. 예전만큼 꼿꼿하게 걷지 못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던 엄마가 휴대폰 하나를 붙들고 전전긍긍하는 걸 보며,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던 엄마가 예전의 절반도 안 되는 양을 먹고도 속이 부대낀다는 듯 불편해하는 걸 보며 그렇게 됐다.
엄마에게는 현수가 전보다 더 많이 필요해보였다. 앞으로는 더 많이 필요해질 거였다. 현수의 시간과 관심, 그리고 돈도. 병원에 갈 일이 늘 테고 큰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지금 매달 주는 용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돈이 들 거였다. 직장을 그만두는 건 당장의 수입이 사라지는 일이었다. 빵집을 여는 건 당장 돈이 드는 일이었다. 빵집에서 버는 돈이 지금의 월급을 역전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역전하더라도 그 시기가 언제일지 까마득했다.
현수 자신에게는 꿈 그 이상이 될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자 P카페에 가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엄마를 앞에 앉혀두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버리면 그보다 곤란할 일이 없을 테니까.
“나도 없어.”
눈가에 막 차오르려는 눈물을 의식하며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안 먹을 거면 숙소 들어갈까?”
“그러자.”
엄마가 가방을 챙기는 틈에 현수는 얼른 눈물을 훔쳤다.
대리운전 기사가 운전석에 앉고 현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뒷좌석에 앉은 엄마는 또 휴대폰에 정신을 쏟고 있었다. 엄마가 저렇게 휴대폰을 많이 쓰는 사람이었나.
어쨌든 다행이었다. 엄마의 관심이 다른 데로 향한 덕에 현수는 울컥한 감정을 숨기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