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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Mar 05. 2021

과거로 돌아가도 엄마가 될 거야?

엄마가 될까 말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개인주의로 똘똘 뭉친, 받은 만큼 줘야 하고 준 만큼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과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라는 존재는 한없이 베풀고 조건 없이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겪은 엄마는 그랬다.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다. 설거지 거리를 며칠씩 쌓아두기도 하는 내가 젖병을 매일같이 씻고 삶고 밥을 챙기고 기저귀를 갈며 살 수 있을까.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참고 버티는 것이 가능할까. 엄마의 자격요건에 나는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았다. 엄마란 자고로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드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엄마는 그랬다.


무엇보다 엄마로 살아도 행복할까 두려웠다. 과거에 나를 행복하게 하던 것들은 좋아하는 일, 남들의 인정,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낯선 곳으로의 여행, 오락실에서 노래 한 곡, 해 잘 드는 카페에 앉아 하염없이 책장 넘기며 보내는 오후였다. 엄마가 되는 순간 많은 것들로부터 멀어질 것이 예상되었다. 경험해보지 않은 막연한 행복을 위해 이미 손에 쥔 무수한 행복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엄마를 공유한 네 살 어린 동생도 과거의 나처럼 엄마로 사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저울질 한 모양이다. 미혼인 그녀가 얼마 전 '아이를 낳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다고.

동생의 생각에 영향을 가하려는 꼰대처럼 보일까 봐 잠자코 듣기만 했지만, 동생의 최측근인 엄마 중 한사람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다. 내심 동생이 한 번쯤 물어주었으면 싶었다.


"언니는 행복해?"


변해버린 몸, 예전 같지 않은 수입, 친구 한번 만나려면 큰맘을 먹어야 할 정도로 쪼들리는 시간, 늘 바쁜 일과, 그리고 끊이지 않는 걱정들. 엄마가 된 후의 삶은 엄마가 되기 전에 마음먹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내려놓도록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 행복해."


동생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또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과거로 돌아가면 다시 엄마가 될 거야?"

일단 엄마가 되고 나면 엄마가 되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변해버린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마찬가지. 그래도 굳이 선택을 하자면,

"응. 무조건!"

기억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똑같은 선택을 반복해야겠지. 다시 우리 아이와 만나려면.


아이를 낳고 힘들어진 이유는 요목조목 말할 수 있지만, 행복해진 이유는 말하기가 어렵다. 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닿을락 말락 하는 거리에서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볼 때의 기분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 첫 등원을 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이 작은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나랑 말동무도 해주고 고민상담도 해오겠지 상상하는 기분은 다른 경험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행복이다.

행복은 설명하기 어려운 탓에 나도 동생도 결혼 전부터 출산과 육아의 고충은 익히 알면서도 거기에 따르는 보상까지는 뚜렷하게 알 수 없었다.


임신 전 막연히 그리던 미래의 아이는 나와 살 한번 닿아본 적 없이 내게 책임과 의무만을 부여하는 존재였지만, 현실의 아이는 숨 쉬는 것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 행복에 취해 나는 아깝다거나 억울하다는 생각 따위 할 틈 없이 기꺼이 온 마음과 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있고부터 내 행복의 근원은 아이가 되었다. 일과 인정, 사람들, 여행, 책과 맛있는 음식도 여전히 내게 행복을 주지만, 아이가 건강히 내 옆에 있어줄 때 나머지 조건들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도 다시 엄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내게 있어버린 아이의 자리는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내내 빈자리로 남을 걸 알기 때문이다. 존재가 그 자체로 행복이 되듯이 부재는 곧 불행이 될 테니까.

우리 가족이 오래오래, 우리 아이가 스물, 마흔, 예순이 될 때까지 서로의 부재가 주는 불행을 알지 못한 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이다.


만약 동생이 반대로 '아이를 낳겠다' 선언했다면 나는 '그래, 잘 생각했다' 하고 반겼을까?

그렇지는 않다. 내가 엄마가 되어 느끼는 행복은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아는 행복일 뿐, 결혼과 출산과 육아가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른 삶에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해서 알 수 없는 다른 종류의 행복이 있을 것이다.

다만 동생에게는 나 이래 봬도 잘 살고 있다고, 엄마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결국 각자가 선택한 삶이 가장 행복한 길이라고 믿으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정말로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내게는 그것이 이제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 되었고.

산을 오르며 지난 갈림길에서 선택하지 않은 길에 무슨 꽃이 얼마나 예쁘게 피었는지를 상상하며 걷는 건 시간낭비다. 내가 선택한 이 길 위의 바람과 향기와 풍경을 흠뻑 누리며 오늘도 행복하게 하루를 향해 걸어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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