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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Oct 29. 2020

내가 너 때문에 여태 살았지

34년 전 오늘, 엄마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몇 시간 후 맞닥뜨릴 사건이 엄마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두려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기대하면서.

긴 시간 진통 끝에 으앙, 울음소리가 들렸다. 몸속에서 묵직하게 느껴지던 아이는 밖으로 나오자 아주 작았다. 아이가 있던 자리는 아이가 나오고도 계속 아이의 자리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의 몸이 자랄수록 아이의 자리도 함께 자랐다. 아이가 없을 때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었는지 의아할 만큼 엄마의 마음에서 아이의 존재감은 나날이 커졌다.


내가 너 때문에 여태 살았지.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엄마를 힘들게 하던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아빠가 직장을 관두겠다며 철없이 굴던 때를 떠올릴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그 말이 나는 싫었다. 마치 내가 고달픈 삶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엄마의 발목을 잡은 것처럼 느껴져서다.

내가 네 살 무렵일 때 아빠랑 이혼을 하려고 법원까지 갔다가 내 생각에 되돌아왔다는 이야기도, 농담처럼 받아치긴 했지만 사실 싫었다. 당시 엄마 나이가 서른다섯. 젊디 젊은 엄마의 인생이 나 때문에 저당 잡혔다는 말 같아서.


엄마는 내가 취업을 했을 때, 좋은 옷을 사드렸을 때, 여행을 모시고 갔을 때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내게는 그런 말이 이제라도 이런 날이 와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처럼 들렸다.

엄마가 뒤늦게라도 저당 잡힌 인생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고 느낀다면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속으로 미안해하곤 했다.


엄마 덕분에 무탈하게 자란 나는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았다. 서른네 살의 나도 서른네 살의 엄마처럼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 나는 종종 우리 엄마와의 지난 시간을 곱씹어보는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습관처럼 하던 엄마의 그 말이다.

나 때문에 여태 살았다던 그 말.


과연 그 말은 불행하다는 의미였을까.


그 말의 의미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건 나도 엄마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회사일로 고된 하루를 보내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쪼르르 달려와 쌩긋 웃는 아이를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 때문에 오늘도 살지.'

탈출하고 싶은 일상을 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지친 하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있어서 살아갈 힘이 난다는 의미였다.

네가 있기에 살아야만 하고, 또 계속 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40번째 생일, 50번째 생일, 60번째 생일도 맞이하고 싶다. 이왕이면 80번째 생일과 90번째 생일까지도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고 내게는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전에는 없던 욕심이다. 불의의 사고가 없기를 바랐지만 혹 있어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반드시 오래 살고 싶어 졌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소풍과 체육대회에 엄마가 함께 있기를 바라고, 아이가 첫 생리를 할 때 축하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엄마이기를 바란다. 아이가 친구들과 다투고 온 날에 편들어주는 단 한 사람이 엄마이기를, 아이의 결혼식에서 아이보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아이의 아이를 돌봐줄 사람 또한 엄마이기를 바란다.

엄마가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나는 이제 아이의 삶에서 내가 없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아이 옆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나를 계속 살고 싶게 한다. 그래서 30년쯤 지나면 나도 우리 엄마처럼 아이에게 말할 것 같다.

내가 너 때문에, 아니 너 덕분에 여태 살았지.


그 옛날 엄마가 우리를 떠나 자유를 쟁취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엄마는 옷 만드는 일을 좋아했으니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옷, 좋은 신발, 유명한 미용실표 헤어스타일을 하고 세계 각지로 여행을 다니며 살았을지도.

상상 속 엄마의 삶이 맛깔나게 차려진 최고급 특선 코스요리라면, 엄마가 살아온 삶은 밑반찬은 별로여도 된장찌개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맛있는 5첩 반상 정도로 봐도 되지 않을까. 제대로 끓인 된장찌개 하나는 때때로 별 볼 일 없는 식당을 선택할 충분한 동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엄마의 삶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썩 괜찮았는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밥상 위에 놓인 된장찌개 하나가 엄마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는지도. 아이란 부모에게 그런 존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힘을 부어주는 존재. 팍팍한 가운데서도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


엄마가 생일선물로 용돈을 보내왔다. 내가 가진 것들 중에 엄마에게 받지 않은 것이 없다고 보아도 될 만큼 많은 걸 받았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나에게 줄 것이 남아있단다.

오늘도 나 때문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엄마에게 이제는 조금 덜 미안해하려고 한다.

엄마가 계속 나한테 주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 나한테 더 많이 주려고,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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