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 이미지의 추구
우리 지역의 교육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고등학교 사회 선생인 나에게 대학에서 음악과 미술의 교점에 대한 강의를 부탁해 온 것이다. 어리둥절한 일이지만 선뜻 수락하고 말았다. 아마도 초등교사가 될 그들에게 내심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방면에 전문가도 아닌 나에게 이런 강의 요청을 한 것에 대해 그 이유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강의를 들을 사람들이 앞으로 틀림없이 선생이 될 것이라는 점과 내가 선생이라는 공통점이 큰 부분을 차지했을 터이고 그동안 이런저런 음악 미술에 대한 글들을 휘갈겨 댄 탓에 이런 부탁을 받았을 것이다. 황송하게도 부탁을 해 오신 분은 바이올린 전공을 하고 미국에서 음악 철학 공부를 한 음대 교수인데 스스로 미술은 문외한이라는 겸손한 분이셨다. 외부 강사를 찾던 중 누군가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교수라는 직업은 그 특성상 인접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을 도리로 여긴다. 하물며 음악과 미술은 너무나 먼 거리에 있는 학문 분야이고 특히 예술이라는 독특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배타성은 인정하고도 남음이 있다. 어쨌거나 음악과 미술에 대해 잡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1. 음악이란?
베토벤 7번 교향곡 2악장
음악이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의 음과 소음을 소재로 하여 박자(Rhythm)· 선율(Melody) · 화성(Harmony) · 음색(Timbre)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사상과 철학적 이미지를 담아내는 예술이다.
서양에서는 음악을 ‘Music’이라고 표기하는데 뮤직은 원래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스어 무시케(musikē)는 무사(musa ; 뮤즈)들이 관장하는 기예(技藝)라는 뜻이다. 무사(複數로는 무사이)는 그리스 신화의 주신(主神) 제우스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에게 낳게 한 9명의 여신으로, 시신(詩神), 또는 시의 여신으로 번역되며, 각기 서사시 · 서정시 · 비극 · 희극 · 무용 · 역사 · 천문 등을 맡아보았다. 따라서 그리스에서의 무시케는 아주 넓은 의미를 지녔고, 특히 역사나 천문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무시케가 시간이나 운동과 깊은 관계를 지닌 인간 활동 의총체를 나타내기 때문이며, 역사나 천문도 그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이클 부블레 투 러브 섬바디.
한편 라틴어의 무지카(musica)도 독특한 의미를 가진 말이다. 본래 무지카란 태양과 달 그리고 행성들과 같은 천체의 이동에 있어서의 조화를 음악의 한 형태로 여기는 고대의 철학적 개념이었다. 피타코라스는 태양과 달 그리고 행성들은 모두 그것들마다의 궤도 공전에 기초하는 고유의 소리(궤도 공명)을 발하며, 지구에서의 삶의 질은 물리적으로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천체 소리의 대의를 반영한다고 했다. 또, 플라톤은 천문학과 음악을 감각과 인지의 "쌍둥이" 학문으로 묘사했다. 즉, 천문학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음악은 귀로 듣는데, 이 둘은 모두 수학적 비례에 대한 지식을 요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고대의 음악이란 우주적 이미지의 표상이었다.
중세에 이르러서는 음악은 기초학과로서의 7자 유과 가운데 수(數)에 관계되는 네 번째 과목이 되었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일반적 의미로서의 음악(뮤직)이 소리를 소재로 하는 예술활동으로서 파악되기에 이른 것은 근세 이후의 일이다.
동양에서도 처음부터 음악이라는 말이 쓰인 것은 아니다. 중국 및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악(樂)’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여 왔다. 이 말은 원래 악기와 이를 거는 걸게(架)를 나타내는 상형문자(象形文字)였다. 그리고 중국의 고대나 한국에서의 ‘악’은 고대 그리스의 무시케(musikē)와 비슷한 의미로서 도덕이나 윤리와 밀접한 불가분의 관계를 지녀 이를 예악(禮樂)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개항 이후 1880년대에 선교사들이 들여온 서양음악을 아악(雅樂) 등 재래의 음악과 구분해서 양악이라 불렀는데 일반인이 오늘날과 같은 상식적인 의미로 Music(음악)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전후의 일이다.
카라바지오의 그림들(Wikipedia 제공)
2. 미술이란?
미(美)를 재현 또는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여러 재주(術), 또는 기예(技藝)를 뜻하는 프랑스어 보자르(beauxarts)를 번역한 말로서, 영어의 파인 아트(finearts)도 같은 뜻이다. 유럽에서는 광의로 번역하여, 시각적·청각적 혹은 말로 나타낸 형상이나 상징에 의한 모든 미적 표현, 즉 건축 · 조각 · 회화 및 여러 시각적 · 조형적 · 도시적(圖示的:그래픽)인 예술(공간 예술), 시 · 산문 · 극(劇) 등 여러 형태의 문학(언어예술), 무용·음악(시간 예술)까지 포함되나 특히 프랑스의 경우, 아카데미의 제도화와 더불어 ‘미술 아카데미’의 구성 대상인 조각과 회화가 주체가 되고 있다. 건축은 실용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하여 제외되었다.
3. 음악과 미술
19세기 말 영국 출신의 수필가 월터 페이터는 “모든 예술이 음악의 상태를 열망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말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가 18세기에서 19세기를 살다 간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내용을 인용하여 페이터가 좀 더 쉽게 풀어쓴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음악에 대한 견해는 사실 음악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진실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지닌 여러 추상적 성질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음악에서는 유독 음악에서만은 예술가가 다른 여러 목적을 위해 흔히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하지 않고서도 청중들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건축가는 어느 정도 실용적인 목적을 같은 건축물로 스스로를 표현해야 한다. 시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일상에서 오가는 대화에도 쓰인다. 그리고 화가는 대개 가시적 세계를 재현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한다. 그러나 오직 작곡가만은 자신의 의식에 따라 일상의 표현방법이 아닌 것을 통해 자유롭게 예술작품을 창작한다.
전무후무 밴드 퀸, 보헤미안 랩소디
누군가를 즐겁게 하고자 하는 의욕 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 모든 예술가는 기쁨을 주고 싶은 욕구와 의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일반적으로 예술을 정의한다면, 예술은 곧 마음을 기쁘게 하는 형식을 창조하려는 어떤 시도이다. 우리의 미감(美感)을 만족시켜주는 것은 예술의 형식이다. 즉, 감각과 지각이 교차하는 순간, 그 형식 관계에서 통일과 조화를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미적인 감각은 만족할 수 있게 된다.
4. 이미지의 추구
쇼팬하우어의 음악에 대한 견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악은 아주 특별한 도구를 사용하는 예술이다. 그에 의하면 음악은 굳이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음악 자체가 풍부한 언어이며, 최고의 주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복해서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개념은 추상적이고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음악은 대상의 내밀한 핵심을 전달한다. 즉, 분명하지 않지만 매 우분 명하고, 흐릿하지만 더욱 또렷해지는 역설이 이해되는 것이 바로 음악적 이미지라는 것이다.
이미지라는 말에는 이미 객체화되고 가시적인 대상물을 의미한다. 하지 만음악이란 가시화할 수 없고 객체화할 수 없는 독특한 예술영역인 탓에 오히려 더 많은 사상과 이념, 그리 고의지가 개입되는 것이다. 물론 미술 또한 이러한 이미지의 개입은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의 오감으로 파악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즉각적 대응이나 요구가 가능하다.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Caspar David Friedrich의 그림들(직접 촬영한 그림)
따라서 이미지는 음악이나 미술이 추구하는 동일한 세계이기는 하나 인식 가능한 범위와 조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여 그 통섭에 대한 요구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모든 종교적 제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과 미술이다. 이것은 음악과 미술을 통해 그 종교적 제의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종교적 이미지와 같이 오감의 자극을 통한 이미지의 형성을 기도하는 예는 무수히 많다. 국가, 민족, 동맹, 연합, 미신, 광신 등의 모든 상황에서 이러한 이미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어쩌면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고대로부터 음악과 미술은 이 이미지가 필요한 어떤 특정한 힘에게 늘 봉사해왔다. 그것이 어떤 가치와 방향을 가지는가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여 예술적 이미지는 독창적으로 출발하지만 철저하게 이해타산에 의해 이용되는 운명이 되기도 한다.
불레이크 With or Without You,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한 밴드 U2의 노래를 리메이크 한 음악
5. 예술교육, 그리고 이미지의 혼란
음악을 배우고 미술을 배우며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감성을 일깨워 왔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음악이며 어떤 미술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다. 제공되는 것을 이용하고 또 그것을 모방했을 뿐이다. 제공되는 것 이외의 예술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껏 배우고 익힌 예술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실 이런 지점에 도달하기도 만만한 것은 아니다. 오래된 관행과 그 관행만큼이나 오래되고 두터운 자신의 틀을 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예술적 감흥을 누군가에게 가르쳐야 한다면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난해해진다. 그런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예술적 경험이 어떻게 단련되어 왔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단지 기술과 태도를 교육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예술의 본령, 즉 인간의 오감으로 충족되어 구현되는 거대한 이미지 혹은 그 이상을 예술이라고 가정한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이미지를 깊이 있게 탐색하고 고민해 보아야 한다.
강요되거나 혹은 편협한 이미지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이미지조차도 희미하여 혼선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대 전제 아래 서 있다면 이 혼돈은 충분히 감수하여야 하는 당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