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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Apr 03. 2021

추억의 씨름 (13) - 예상 못한 왕좌 교체

상반기 대혼돈 이후 하반기에교통정리된1992년 모래판

1990년부터 확실하게 세대교체가 진행된 민속씨름은 1991년 확실한 독주체제를 굳힐 것으로 예상되었던 강호동이 연봉협상 문제로 주춤한 사이, 황대웅, 박광덕 등이 강력한 대항마로 급부상하였다. 강호동은 1991년 마지막 천하장사 대회에서 23대 천하장사에 등극하면서 가까스로 모래판의 맹주 자리를 수성했다.


1992년 1월 모래판에 또 다른 괴물신인이 등장한다. 154kg의 거구 박광덕보다 무려 2kg(?)이나 더 무거운 항공모함급 신인 김정필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민속씨름 무대에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은 김정필은 당시로선 역대 최다인 계약금 1억 5천만원, 연봉 3천만원에 조흥금고 씨름단과 입단 계약을 체결한다.


체격 (186cm, 156kg)으로 압도적인 위용을 과시한 김정필이 과연 이만기 이후 새로운 씨름황제로 등극한 강호동과의 맞대결에서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 비슷한 체형의 람바다 장사 박광덕과 힘대결에서 어떤 결과를 보일지 관심이 모아졌다.


1992년 새해 첫 공식 대회인 통일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앞두고 강호동, 황대웅, 임종구, 박광덕 등이 강력한 우승후보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당연한 결과가 나올 것 같이 보이지만 모래판에는 늘 변수가 도사린다. 스포츠의 의외성은 떼낼 수 없는 중독성을 지닌다.



1989년 천하장사 등극 이후 세대교체의 소용돌이 속에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김칠규(현대)가 통일 천하장사에 깜짝 등극한다. 결승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김정필과 무려 9판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이 3-2로 김정필을 눕히고 천하장사에 등극한다. 비록 번외 천하장사 대회이지만 매년 처음 스타트를 끊는 대회란 점에서 상징성이 있는 통일 천하장사 대회에서 김칠규는 1989년 17대 천하장사 대회와 마찬가지로 예상하지 못한 돌풍을 일으키며 모두를 놀라게 한다.


자신보다 무려 42kg이나 무거운 김정필을 상대로 특유의 스피드와 잔기술을 활용하여 항공모함을 좌초시킨 것이다. 42kg의 차이를 기술과 상대방의 중심을 역이용하는 작전으로 극복할 수 있는 씨름의 묘미가 두 장사의 승부에서 제대로 전달되었다.


1989년 23세의 신진급 선수였던 김칠규는 당시 백전노장 '인간 기중기' 이봉걸과 혈투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뒀는데, 3년이 지난 후 어느덧 26세 노장 선수 반열에 올라 기존 선수들을 위협하는 무서운 신예 김정필을 상대로 노련함을 바탕으로 그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


김칠규는 이후 60대, 61대, 62대 백두장사에 연거푸 등극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1992년 3월, 첫 공식 천하장사를 가리는 24대 천하장사 대회가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23대 천하장사에 등극한 강호동과 22대 천하장사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한 '람바다' 박광덕 간의 결승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첫 두 판은 강호동이 손쉽게 따내며 승부가 싱겁게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박광덕의 거센 반격이 시작되었다. 세번째 판과 네번째 판을 배지기와 돌림배지기로 연거푸 따내면서 승부는 마지막 다섯 번째 판에서 가려지게 되었다. 양 선수는 맞배지기로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다가 거의 동시에 모래판에 넘어졌으나 아슬아슬하게 박광덕이 먼저 모래판에 닿은 것으로 판정되면서 강호동은 23대에 이어 24대 천하장사를 연속으로 거머쥐게 된다.



천하장사 10회에 등극한 이만기 이후 처음으로 다섯 번 이상 천하장사에 등극한 선수로 이름을 올린 강호동이 모처럼 자신의 건재를 알리게 된다. 반면에 박광덕은 22대 천하장사, 미주 천하장사에 이어 24대 천하장사 대회에서 아쉽게 정상을 눈 앞에 두고 물러나는 불운을 겪는다. 충분히 천하장사에 오를 기량을 갖췄음에도 마지막 1%의 마무리가 늘 아쉬움을 남겼다.


기대를 모았던 거물 신인 김정필은 16강전에서 자신보다 59kg나 가벼운 한라급의 이기수(럭키금성)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다. 이기수는 데뷔하자마자 화려한 기술 씨름을 구사하며 한라급 정상을 다퉜는데 갈수록 자취를 감추는 다이내믹한 기술씨름의 진수를 보여주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심지어 김정필과의 대결에서 이기수는 밀어 치기로 들어오는 김정필의 중심을 역이용하는 절묘한 뒤집기로 기술씨름의 짜릿함을 선사했다.


1992년은 대한민국 대중문화에 획기적인 터닝 포인트가 일어난 년도로 기억된다. 그 중심에는 3인조 남성 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돌풍은 발라드와 트롯이 주류로 자리 잡았던 대한민국 가요계에 랩이 가미된 댄스음악을 새로운 주류로 자리 잡게 하는 촉매제가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 만큼이나 모래판에 데뷔 당시 기존 강호들을 연달아 눕히고 좀처럼 모래판에서 볼 수 없던 악동 같은 제스처로 모래판을 누비던 강호동도 큰 충격을 주었다. 데뷔한 지 1년 만에 모래판을 접수했던 그가 1992년 5월 느닷없이 모래판 은퇴를 선언한다.


1989년 조흥금고 씨름단에 입단하며 민속씨름에 입문한 지 불과 3년 여만에 강호동은 모래판을 스스로 떠나면서 팬들을 충격에 빠뜨린다. 데뷔 이후 1년 만에 최연소 천하장사에 등극하고 이만기 이후 최초로 천하장사 5회를 석권하며 차세대 씨름 제왕으로 자리매김하던 그는 이전에 볼 수 없던 괴성을 동반한 과격한 제스처와 매너로 팬들 사이에서 인기만큼이나 비호감도도 높았다.



당시 설문조사 기사를 보면 '혐오'라는 표현이 유달리 눈에 뜨인다. 요즘 같으면 비호감이라는 표현을 넣었을 텐데 이보다 한층 강도 높은 '혐오'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얼핏 보면 남들에게 엄청난 불쾌감을 전달한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강호동의 악동 이미지가 당시에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강호동의 은퇴는 충동적인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그는 영원히 모래판에 돌아오지 않았다. 정상 자리를 수성하는 것에 대한 극심한 부담감을 드러낸 강호동은 학업에 전념하여 이만기처럼 지도자의 길을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모래판을 떠난 강호동은 몇 년 후 새로운 길을 걷게 되고 제2의 인생 터닝 포인트를 찍게 된다.



갑작스러운 강호동의 은퇴 이후 모래판은 군웅할거 시대에 돌입하여 강호동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황대웅, 박광덕, 임종구, 남동하 등 기존 강호 외에 신예 김정필 등이 천하장사 타이틀을 두고 치열한 접전을 펼칠 것으로 전망되었다.


하지만 92년 모래판은 잊혀진 선수들의 화려한 복귀가 유달리 두드러졌는데, 강호동 은퇴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25대 천하장사 대회에서 한 때 차세대 천하장사 1순위로 꼽혔으나 점점 존재감이 희미해졌던 26세의 노장 임용제(조흥금고)가 결승에서 같은 소속팀의 김정필에게 3-1로 승리를 거두고 생애 첫 천하장사 자리에 등극한다.


만약 김정필이 다른 소속팀 선수였다면 승부의 향방은 당시 기량이 상승 중이던 김정필에게 유리하게 흘렀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당시에 소속팀 선배 또는 간판에 대한 예우를 무척이나 중시하던 정서를 감안할 때 김정필은 앞으로 더 많은 기회를 엿볼 수 있으니 소속팀 선배 임용제에게 양보를 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가장 긴장감이 높아야 할 결승전은 시작부터 맥이 풀린 채 펼쳐지고 말았다.


통일 천하장사에 등극한 김칠규에 이어 또 다른 26세 동갑내기 임용제가 데뷔 후 첫 천하장사에 오르면서 잊혀진 올드보이들의 귀환이 두드러졌다. 두 선수 모두 결승 상대는 공교롭게도 떠오르는 신예 김정필이었다.


통일 천하장사 대회와 25대 천하장사 대회 결승에서 고배를 마신 김정필은 하반기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9월에 열린 26회 천하장사 겸 67회 체급별 장사씨름 대회 마지막 날 천하장사 결승에서 김정필은 백두급 선수 중에 가장 현란한 기술씨름을 구사하는 지현무(현대)에게 3-0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천하장사 가마에 올라탄다.




민속씨름 데뷔 9개월 만에 천하장사에 등극한 김정필은 강호동이 보유했던 역대 최연소 천하장사 및 데뷔 후 최단기간 내 천하장사 등극 등의 기록을 경신한다. 천하장사 타이틀 마수걸이에 성공한 김정필은 이후 열린 번외 천하장사 대회인 백제문화재 천하장사와 미주 천하장사 대회 타이틀을 연거푸 거머쥐면서 이만기, 강호동의 뒤를 이어 모래판을 석권할 강력한 후보로 급부상한다.


모두가 기대했던 강호동과 김정필의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강호동의 아성에 신예 김정필이 어느 정도 위협이 될 것인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예기치 못한 강호동의 조기 은퇴는 씨름판의 인기 정체 현상을 더 가속화시켰다. 또한 김정필의 씨름 스타일이 아무래도 기술보다는 자신의 체구를 활용한 힘의 씨름으로 치중되는 경향이 있어 이만기로 대표되는 다이내믹한 씨름에 길들여진 팬들 입장에선 아쉬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강호동의 조기 은퇴, 김칠규, 임용제 등 잊혀진 노장 선수들의 부활, 하반기에 경쟁구도를 평정한 무서운 신예 김정필의 등장으로 인해 모래판의 새로운 권력교체가 이루어진 1992년의 모래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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