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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Apr 10. 2021

추억의 씨름 (14) - '소년 장사' 센세이션

17세 소년 장사 백승일, 1993년 모래판을집어삼키다

1992년 강호동의 갑작스러운 은퇴 이후 156kg의 항공모함 신인 김정필이 모래판의 주도권을 휘어잡았다. 김정필은 1992년 9월 26회 천하장사 대회 정상에 오른 이후 번외 대회인 백제 문화재 천하장사 대회, 미주 천하장사 대회, 천하 대장사 대회 등을 연거푸 휩쓸면서 '김정필 시대'를 열게 된다.


스모선수 체형을 연상시키는 김정필 (156kg), 박광덕 (154kg) 등이 모래판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씨름판의 다이내믹함보다는 묵직함이 더 돋보이는 시대가 왔다. 물론 이기수, 장준 등과 같은 기술씨름을 구사하는 한라급 선수들이 천하장사 대회에서 깜짝 이변을 일으켰지만 기본적인 체구의 한계를 넘어서기에는 버거웠다.


모래판에 다이내믹함이 점차 줄어들면서 씨름에 대한 관심도도 80년대의 전성기에 비해 많이 낮아지게 된다. 특히 이만기의 대를 이어 민속씨름의 새로운 판도의 중심으로 자리하던 강호동의 갑작스러운 은퇴 또한 씨름 보는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침체기의 늪으로 빠져들 것 같았던 모래판은 1993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토네이도급 센세이션을 맞이하며 모처럼 활력을 얻게 된다. 




1993년 첫 천하장사를 가리는 설날 천하장사 대회 결승은 모래판의 대표적인 항공모함 장사들인 김정필(156kg)과 박광덕(154kg)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둘이 합쳐 300kg가 넘는 거구들이 모래판을 가득 채운 가운데 두 선수의 승부는 다섯 번째 판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결국 김정필이 마지막 판을 밀어 치기로 따내면서 사상 초유의 5 연속 천하장사 등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한다. (번외 대회 포함) 반면에 박광덕은 천하장사 대회 결승에서만 세 번째로 2-3 패배를 당하면서 다시 한번 정상 눈앞에서 고배를 들어야 했다.


결승에 진출한 두 장사 외에 주목할 선수는 다름 아닌 3위에 오른 백승일(186cm, 135kg)이었다. 1992년 10월, 순천상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백승일은 6번째 프로씨름단으로 새롭게 창단한 청구 씨름단에 역대 신인 2위에 해당하는 1억 7천만 원을 받고 입단하게 된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파격적으로 프로씨름에 데뷔할 정도로 백승일은 큰 기대와 주목을 받았다. 



전국체전에서 아마 최강으로 군림하던 신봉민(울산대)과 김경수(인제대)를 제압하고 금메달을 따낼 만큼 백승일의 기량은 이미 민속씨름에서 충분히 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민속씨름 데뷔 첫 무대인 1993 설날 천하장사 대회에서 백승일은 파죽지세로 4강에 올랐고, 4강에서 민속씨름 최강자로 군림하는 김정필을 상대로 첫 판을 따내는 기염을 토한다. 아쉽게 역전패를 당했지만 첫 대회에서 백승일은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린다.


1993년 3월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개최된 27회 천하장사 대회에서 백승일의 돌풍이 어디까지 불지 관심을 모았지만 천하장사 32강 선발전에서 백승일은 한라급의 김은수(현대)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조기 탈락한다. 프로 데뷔 후 처음 치르는 공식 천하장사 대회에서 백승일은 프로 무대의 녹록지 않은 쓴맛을 느끼게 된다.


백승일, 박광덕 등 강호들이 초반에 탈락하는 이변 속에 치러진 27회 천하장사 대회에서 최강 김정필은 예상대로 무난히 결승에 진출했고, 결승에서 2년 만에 천하장사 대회 결승에 진출한 노장 임종구를 접전 끝에 3-1로 제압하고 1992년 26회 천하장사에 이어 2회 연속 천하장사에 등극한다. 번외 천하장사 대회를 포함하면 무려 6 연속 정상에 오르는 기록을 세운다. 이 기록은 이만기, 강호동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그러나 1993년 하반기부터 모래판에 지각변동이 거세게 불어닥친다. 7월 춘천에서 개최된 28회 천하장사 대회에서 17세 3개월의 '소년장사' 백승일이 결승에서 같은 소속팀의 김형찬을 3-1로 제압하고 역대 최연소 천하장사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한다. 백승일은 8강에서 황대웅(삼익가구), 4강에서 김칠규(현대)등 민속씨름 2세대 강호들을 연달아 제압하며 결승에 올라 결승에서 팀 선배 김형찬을 상대로 전광석화 같은 잡채기, 안다리걸기, 밀어 치기 등의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며 3-1 승리를 거둔다.


백승일은 역대 최연소 천하장사 등극뿐만 아니라 민속씨름 데뷔 5개월 만에 천하장사에 오르면서 새로운 기록을 추가한다. (종전 기록은 데뷔 9개월 만에 천하장사에 오른 김정필이 보유) 당시 언론에서도 백승일의 천하장사 등극을 대서특필 했는데, 당시 동아일보에서는 '홍안의 백승일, 천하를 들다'라는 헤드라인으로 아직 여드름 자국도 채 가시지 않은 10대 소년 장사의  정상 등극을 묘사했다.



반면 6 연속 천하장사에 등극하면서 (번외 대회 포함) 왕좌에 군림했던 김정필은 8강에서 당시 농아장사로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던 윤석찬(삼익가구)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조기 탈락한다. 백승일과 김정필이 맞붙었다면 모래판은 더 후끈 달아올랐을 것이다.


이제 언론의 관심은 백승일과 김정필의 맞대결로 쏠리게 된다. 양 선수의 맞대결은 8월 1일 경남 충무에서 열린 72회 체급별 장사씨름 대회 백두급 16강전에서 성사된다. 팽팽한 접전 끝에 김정필이 백승일을 1-0으로 제압했는데 김정필은 16강에서 힘을 소진한 탓인지 정작 8강에서 임종구에게 무너진다. 백두장사는 백두급임에도 불구하고 다이내믹한 기술씨름을 구사하는 지현무(현대)가 차지한다. 지현무는 68, 70대에 이어 세 번째로 백두장사 타이틀을 거머쥔다.



절치부심한 백승일은 10월 대구에서 열린 29회 천하장사 및 73회 체급별 장사씨름 대회 백두급 결승에서 김정필을 3-1로 제압하고 17세 5개월 만에 백두장사에 등극하여 종전에 강호동이 세운 최연소 백두장사 (17세 10개월) 기록마저 갈아치운다. 백승일의 기세는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데 29회 천하장사 결승전에서 이변의 주인공 강기승(현대)을 3-0으로 가볍게 제압하고 28회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천하장사 타이틀을 석권한다.


강기승은 8강에서 거함 김정필을 무너뜨리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결승까지 올랐으나 백승일의 다이내믹한 기술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이규황 아나운서와 이만기 해설위원도 백승일의 화려한 기술을 앞세운 속전속결 씨름에 연거푸 감탄사를 쏟아냈다. 약관 17세의 소년장사는 민속씨름에 데뷔한 지 불과 1년도 안된 사이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백승일은 11월에 펼쳐진 번외 대회인 연변 천하장사 씨름대회와 제2회 천하 대장사 결정전까지 연거푸 석권하면서 민속씨름 데뷔와 동시에 모래판을 접수하는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강호동의 은퇴 이후 모래판의 중심축은 체구를 앞세운 힘의 씨름으로 기울어지면서 모래판에 다이내믹함이 실종되었는데,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백승일이 등장하면서 모처럼 팬들은 다이내믹한 기술씨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1993년 모래판에 17세 소년장사의 돌풍이 이 정도로 거셀 줄은 아무도 예상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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