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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Apr 11. 2021

추억의 씨름 - Epilogue

씨름의 인기를 되살릴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2019년 11월 30일부터 2020년 2월 22일까지 매주 토요일 밤 KBS 2 TV에서 방영되었던 '태백에서 금강까지 - 씨름의 희열'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은 인기를 모았었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태백급, 금강급에 속하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리그, 토너먼트 형태로 최강자를 가리는 포맷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이 씨름이 이렇게 재미있는 경기였는지 몰랐다는 반응을 많이 드러냈다. 이런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역발상이었다. 그동안 씨름은 1980년대, 1990년대 민속씨름 중흥기 시절에도 늘 백두급과 한라급 선수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강호동, 황대웅, 김정필, 백승일, 이태현 등 스타급 선수들이 포진해있던 백두급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나마 민속씨름 원년 첫 천하장사에 등극했던 이만기가 당시에는 한라급이었고 이후에도 손상주, 이승삼, 이기수, 강순태, 강광훈 등과 같은 한라급 선수들이 천하장사 대회에서 이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어서 그나마 주목받을 수 있었다. 


이에 비하면 금강급, 태백급 선수들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씨름의 다양한 기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체급이 바로 금강급과 태백급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왜소한 체형의 선수들이 대부분 금강급과 태백급에 포진되어 있었는데 '씨름의 희열'에 등장하는 금강급과 태백급 선수들을 보면 마치 보디빌더를 연상하는 몸짱 몸매는 기본이거니와 이승호, 임태혁, 최정만 등과 같은 선수들은 훈남급 외모를 보유하여 많은 여성팬들까지 끌어 모으게 된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사용하는 포맷인 오디션 형태를 적용하여 출연하는 각 선수들에 대한 상세한 스토리 텔링을 제공하여 보는 흥미를 더 배가시킨다. 오디션 프로그램 단골 MC 김성주, 예능에서 걸쭉한 입담을 과시하는 붐, 민속씨름의 황제 이만기를 공동 MC로 내세워 재미와 전문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다.


'씨름의 희열'에 등장하는 태백, 금강급 선수들이 선사하는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면서 과거 민속씨름의 중흥기를 접했던 이들에게는 짜릿한 향수를 그리고 씨름을 몰랐던 이들에게는 그동안 몰랐던 씨름의 매력을 아낌없이 전파할 수 있었다. 제목 그대로 씨름을 보면서 짜릿한 희열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예선을 겨우 통과한 소위 '언더독'으로 취급되던 선수들이 예선 1위로 통과한 선수들을 누르는 이변까지 속출하면서 프로그램의 흥미는 더욱 증폭되었다.


방영 내내 많은 화제를 불러 모으고 스튜디오를 가득 메운 방청객들과 시청자들에게 승부의 짜릿한 묘미를 선사했던 '씨름의 희열'은 태극 장사를 가리는 최종 선발전을 창원 실내체육관 (프로농구 LG 세이커스의 홈구장)에서 개최하였다. 입장 티켓은 녹화 전에 이미 매진되어 체육관을 가득 메운 팬들 앞에서 펼쳐지는 태극 장사 선발전은 1980년대 민속씨름 중흥기를 연상시킬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2020년 2월부터 급속도로 확산된 코로나 19로 인해 체육관에는 관중들이 입장할 수 없었다. 정말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이었다. 물론 무관중 상태에서도 짜릿한 승부는 변함없이 펼쳐졌지만 관중들이 가득 메운 경기장에서 더 짜릿한 명승부가 펼쳐졌을 거라는 아쉬움은 진하게 남았다.


코로나로 인해 체육관에 관중을 수용하는 것조차 힘들어진 요즘, 오히려 '씨름의 희열' 같은 프로그램을 시즌제로 활성화한다면 지속적으로 씨름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1980년대와 1990년대 민속씨름 중흥기를 이끌었던 추억의 스타들도 틈틈이 소환하는 이벤트를 만들어낸다면 다양한 세대에 걸쳐 씨름을 접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씨름 대회를 무조건 체육관에서 진행하는 발상을 전환하여 날씨가 따뜻한 5월에서 8월 사이에는 야외에서 이벤트 형태로 대회를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상황을 감안하여 제한된 인원을 수용한 서울 한강 시민공원 특설무대, 부산 광안리 특설무대, 여수 엑스포 공원 특설무대 등 전국 다양한 명소에 특설무대를 마련하여 씨름 이벤트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물론 랜선 무대 마련도 필수이다.


유년시절 초등학교 운동장 철봉이 있던 곳에는 어김없이 모래밭이 있었고 땅에 박힌 타이어로 경계선이 그어진 모래밭에서 동료들과 어울려 씨름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길 때마다 이만기의 포효를 따라 하던 그 모래밭은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씨름을 연결시켜 준 공간이었다. 


다양한 일상 공간에서 씨름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어야 씨름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형성될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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