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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의 틈

콘텍스트로 생각의 틈을 여는 법

피카소 큐비즘은 맥락적 사고덕분

글쓰기가 본업인 아닌 탓에서 매주 '생각의 틈'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로 글을 작성하는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관련 자료를 탐색하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통찰력을 파악하거나, 때로는 가장 신랄한 비평가인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러는 도중 갑자기 핵심 키워드가 떠오르면 잊어버릴까 봐 얼른 카톡에 기록하기를 반복합니다.

생각의 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버릇이 생겼습니다. 자다가도 꿈속에서 다음 글의 구조가 그려지고, 꿈속에 나온 멋진 문장을 잊어버릴까 봐 일어나서 즉시 메모합니다. 예술가나 작가들에게 익숙한 경험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선형적 인식활동의 본질입니다. 체계화되기 전의 생각들은 여러 맥락이 혼재된 상태입니다. 개별 정보들은 서로 간격이 크고 연결되지 않아서,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창작의 과제가 됩니다. 떠오른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런 식으로 풀어가면 좋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글을 써가다 보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기를 반복합니다. 머릿속으로 충분히 그럴듯한 생각의 스토리가 현실 밖으로 나오게 되면 왜 전혀 다른 방향이 되거나 엉망이 되는 것일까?


생각의 스토리가 현실 밖으로 나오게 되면 왜 의도했던 것과
다른 방향이 되거나 왜곡되는 것일까?


생각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맥락 context 차이입니다. 머릿속에는 다양한 맥락 간의 상호작용과 재구성 과정을 통해 복잡한 의미가 형성되어 있는 반면, 글과 말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복잡한 맥락이 제거되면서 단순화됩니다. 따라서 생각을 표현할 때는 내가 가진 복잡한 맥락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풀어낼 것인가가 핵심이 됩니다.

그렇다면 위대한 예술가들은 생각의 복잡성을 어떻게 해결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서양미술사에서 400년간 지속된 선형적 인식을 탈피한 사람이 피카소입니다. 당시 19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함께 사진이 발명되면서, 현실을 재현하는 역할은 사진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

기존 미술은 단순한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 방식과 창의적 해석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기존 방식인 선원근법으로는 사실 묘사는 사진에 비해서 월등하게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변화를 계기로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고자 하는 예술가 탐색 과정에서 피카소의 입체주의(cubism)와 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입체주의 탄생과정을 보면 無에서 有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입체주의(Cubism) 이전까지 서양 미술에서 사물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소실점을 기준으로 하는 원근법이 대세였습니다. 피카소는 이러한 전통적인 회화 방식의 틀을 깨고, 대상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재구성하는 비선형적 인식 방식을 예술적으로 구현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선원근법에서 출발한 것으로 여기에 피카소만의 깊은 통찰력이 더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창작은 有가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창조적 과정은 존재하는 맥락들과의 깊은 상호작용과 재해석을 통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독특한 사고의 비결인 맥락적 연결이었습니다.

존재하는 맥락들과 깊은 상호작용과 재해석으로 생각의 틈을 열다


피카소_큐비즘.JPG 피카소와 큐비즘 (출처: 전시회 포스트 캡처)

맥락 Context적 사고를 통한 생각의 틈 열기

제가 만나는 기업들 대부분 초기 스타트업입니다. 이들은 아직 비즈니스 모델이 정립되지 않는 등 높은 불확실성을 가진 비선형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기존에 없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예술가와 흡사하지만,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맥락적 사고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특히 시장에 대한 CEO들의 생각을 들으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시장은 결코 한 단어나 숫자로 설명될 수 없는 복잡한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시장규모가 000억 원이고 성장률이 몇 %라는 수치는 실제 현실이 아닌 대략적인 추세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는 인공지능 시장이 가진 다양한 맥락을 단순 수치로 환원한 것일 뿐, 시장이 지닌 수많은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스타트업 CEO들은 이러한 시장의 복잡성을 간과한 채 통계 수치만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단편적인 시장 해석을 스타트업계와 전문가들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상황은 비선형적 단계인데 생각하고 분석은 여전히 선형적입니다. 이럴 때마다 제가 강조하는 점은 '시장분석이 아니라 시장해석'입니다. 시장분석의 한계는 객관적 통계라는 환상에 갇혀, 기존 시장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통계자료는 최소 2-3년의 시차를 두고 작성되므로, 현재 진행 중인 혁신적 아이디어들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타인이 만든 자료에 의존하다 보면 독자적 판단력을 잃게 됩니다.

반면 시장해석은 기존 통계를 기반으로 하되, 자신만의 관점으로 맥락을 재구성하는 과정입니다. 마치 피카소가 현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듯이 말입니다. 주체적 판단 없이 남이 정의한 시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스타트업의 자세인지는 여러분이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맥락 context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맥락은 고객이 처한 상황, 장소, 목적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현장에서만 포착할 수 있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자료 검색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는 기존의 시장분석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요구하며, '나'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처럼 대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바라보려는 시도입니다. 저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문장에서 발견했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보이는 시작하는 지점(변곡점)이 느껴진다면 맥락을 찾은 것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시장은 분석이 아닌 해석이다(1)

시장은 분석이 아닌 해석이다(2)

메타인지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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