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들 seondeul Aug 30. 2022

그저 다음 그림을 향해

여름의 일기

https://brunch.co.kr/@chocowasun/97

https://brunch.co.kr/@chocowasun/100

https://brunch.co.kr/@chocowasun/102

https://brunch.co.kr/@chocowasun/105





그저 다음 그림을 향해

시골 오솔길 끝에 있는 화실의 문을 봄이 들어올 수 있게 열었다, 더위에 닫았다가 다시 열기까지의 기록이다. 날씨에 취한 5월, 아팠던 6월, 꽃과 함께한 7월, 부지런했던 8월. 자주 쓰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모으니 꽤 많았다. 왕성한 여름의 기운을 받아 많이 읽고 또 많이 기록했구나. 한 번에 100은 못 해도, 1씩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가을이 되길. 사랑하는 계절이 온다. 어쩐지 우울한 봄을 이제는 의연하게 보내는 어른이 되었고, 짜증없이 여름도 수월하게 넘겼다. 남은 한 해의 시간들을 의미 있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이번 일기들에서 좋았던 말
계단 틈에 가득 핀 제비꽃
행복은 이처럼 정신없이
실망과 박수갈채
그저 다음 그림을 향해
소나기와 햇살이 공존하는 날
여름도 좋군
어려움에 빠져야 한다





2022.4.19.화 /19

나름 알찬 오전과 오후 시간을 보내는 중. 일기를 묶어 업로드했더니 대부분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보인다.

나의 원동력이 되는 것; 날씨, 요가, 규칙적인 생활, 책, 커피와 저녁식사, 깊은 잠, 좋아하는 가수, 등산과 그림, 고양이, 친구 등등이 있겠다.

올해가 끝날쯤엔 또 뭐가 추가되려나.





2022.4.21.목 /20

날씨 때문에 행복감이 가득한 요 며칠! 어제는 아까운 계절을 만끽하려 야외 수업을 했다. 책상을 밖에 꺼내 두고 보이는 풍경들을 그리기. 긴치마가 바람에 날리고 종이들을 눌러놔야 했지만 좋았다. 그림을 그리러 온 친구들도 까마귀처럼 소리 지르거나 수줍게 기뻐하였다.


오늘도 역시 밖으로 낑차 책상을 빼두고 기꺼이 야외 수업을 기다리는 중. 일 년에 몇 안 되는 춥지도 덥지도 비, 눈도 없는 이런 날들을 즐겨본다. 항아리 가득 담아둔 아로니아 가지와 함께!






2022.4.22.금 /21

오늘 등산 중 본 것들

바람이 쓰다듬은 자리에 새로 난 연둣빛 잎들이 납작 눕힌 고양이의 귀 같다.

계단 틈에 가득 핀 제비꽃.

야생의 안개꽃 파도.

공룡 뿔을 닮은 소나무 열매.

조구만 까만 나비.






2022.4.23.화 /22

나는 만약 혼자 지내고 직업이 없다면 일찍 죽었을 것 같다... 낮에 시간이 비어서 누워있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밥벌이를 하는 것.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 가족과 친구, 사랑을 주고받을 사람이 있다는 것. 취미가 있는 것. 모두 다행이다.






2022.5.4.수 /23

운동 다녀오는 길에 행운의 새, 후투티를 보았다. 오늘을 앞뒤로 문을 열어둔 화실 안으로 제비가 들어왔다. 세 마리가 근처에서 빙빙 돌더니 한 마리가 들어와 천장을 둘러봤다. 금방 나갔지만 너무 놀라서 들고 있던 수건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참새 세 마리가 문 앞 길에서 오순도순 오랜 시간 머물렀다. 건너편 울타리에는 왕 큰 까치까지! 옹심이의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이렇게 5월이다. 커피를 부어 마음을 깨워본다. 돗자리 피고 맥주 먹다 하릴없이 수다도 떨고, 낮잠 자야 하는, 그런 날씨다. 하지만 난 깜깜한 밤까지 일해야지! 돈 벌자.






2022.5.12.목 /24

아카시아꽃으로 산이 희게 뒤덮인 요즘. 머리 서기를 이틀 연속 성공한 믿기지 않는 날이다. 내가...? 세상에! 6월이 다가오면서 올해의 목표들을 생각하며 내심 초초했는데, 이렇게 또 도달한다. 꾸준히 연습하여 선생님의 도움 없이도 홀로 거꾸로 서 있기를! 참나, 새해의 결심이 혼자 거꾸로 서기라니. 새삼 웃기면서도 멋진 소원이다. 이뤄나갈 것이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덥지 않은 햇살, 평온한 일터, 맛있는 식사와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 자기 전 조용히 누워 책을 읽는 시간, 깊은 잠 후의 요가나 등산까지. 모든 것이 적당히, 좋은 일상이다.






2022.5.24.화 /26

더워서 선풍기를 꺼냈다. 읽은 책들을 정리하다가 고수 꽃을 책상에 꽂아두고 쓰는 일기. 새로운 시리즈의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나에게 칭찬 많이 해줘야지. 운동을 배우며, 칭찬의 힘을 느낀다. 그림 그리러 오는 어른들도 하나같이 (이제는 믿지 않을 정도로) 칭찬 메들리 속에서 행복하다 했는데, 사실은 그걸 내가 무척 바라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셀프 칭찬을 게을리하지 말 것! 그리고 조금 구려도 그냥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자. 하나의 아사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그저 다음 그림을 향해 그려나가기.






2022.6.1.수 /27

일하는 휴일. 오전에 투표를 하고 시내에 다녀왔다. 그림이 예쁜 동화책을 잔뜩 사서 돌아온 하루. 요 며칠 급성 위염 때문에 너무 고생 중이다. 올해 들어 위염이 잦은 게, 나이 듦을 실감하게 한다. 정말 소식, 건강식, 지키는데 내 몸아, 왜 이러니! 갖은 병원 한 바퀴 돌고 나가떨어졌다. 한약을 길게 먹어보기로 하고 상처뿐인 카드를 들고 복귀. 나아진다면야! 잘 돌봐보자. 아프니 기운도 없고, 밥도 못 먹고, 짜증 나고... 건강이 최고다. 일기장 한 페이지 전의 내가 전생 같다. 평온하게 요가하고 밥 먹는 일상이 다시 돌아오길. 회복에 힘쓸 뿐이다.






2022.6.7.화 /28

휴일을 잘 보내고 다시 돌아온 일상. 매일 엽떡만 먹을 수 없듯이, 다시 어찌 보면 지지부진하고 슴슴한 하루로 돌아왔다.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있다 믿고 꾸준히 하는 것이 모든 일의 정도. 건강 관리도, 하던 모든 것도, 잘해나가길 바란다. 내 인생아, 힘을 내...






2022.6.17.금 /30

순조롭게 여름으로 넘어가는 중인 계절. 이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건강이 많이 회복되는 중이고, 그를 위해 애쓰고 있다. 특히 자극적인 음식이나 생야채를 신경 써서 줄이는 중. 제일 좋아하는 오이와 파프리카, 샐러리를 양껏 먹을 수 없어 슬프다. 아삭한 식감을 아껴먹는 중.


며칠 전에 보기만 하고 군침을 흘리던 앞집의 장미가 집 안으로 성큼 왔다. 가을을 위해 미니장미를 가지치기하던 중, 수레째로 가져가라 하셔서 때 아닌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림 그리던 친구가 김장 담그는 모습 같다 할 정도로 데크가 빨간 장미로 가득! 온갖 꽂을 수 있는 통은 다 나와서 여기저기 물에 담가 두고,  몇 개는 묶어 이곳저곳 선물하였다.


행복은 이처럼 정신없이 들이닥치기도 하는군! 약간 기빨렸지만 덕분에 요 며칠 즐겁다. 오랜만에 캔디를 정주행하고 여운에 잠겨있었는데, 비록 하얗고 푸른 캔디스 화이트 장미는 아니지만 마음이 달래 졌다. 이 허함을 해리포터로 채우는 중! 돌려 돌려 돌려 막아! 오늘도 주어진 수업을 잘 해내고, 일주일을 잘 마무리해야지.






2022.6.23.목 /31

단비가 내리는 여름의 초입. 바싹바싹 흙먼지가 났었는데 조금이나마 해갈되길 바란다. 어두컴컴하고 축축함에도 창밖에서 비를 맞으며 신나게 흔들리는 접시꽃을 보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 덥고 습하고 에어컨 틀고 하니 몸의 염증들이 난리 법석이다. 오랜만에 귀가 아파 약을 챙겨 먹는 중이다. 나는 아마 죽어도 썩지 않을 것이다.






2022.6.29.수 /32

곧 한 해가 완전히 반으로 접힌다. 올 상반기에는 무얼 했지. 망설이다 흘려보낸 것들만 기억난다. 이래서, 저래서, 또 이럴까 봐 놓친 것들. 머뭇대지 말고 뛰어들 것!

조여드는 이 마음이 좋은 방향이라 여겨본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할 것. 스스로에게 실망과 박수갈채를 번갈아 끼얹는 중이다. 그저 하는 수밖에!






2022.7.13.수 /35

비가 시원하게 오는 오후. 덕분에 백이십 년 만에 긴팔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문을 앞뒤로 열고 스피커로 크게 들으려고 아껴뒀던 음악을 틀었다. 오전을 함께하는 요가. 졸리고 가기 귀찮아서 갈까 말까 마음속으로 난리를 피워도 가면 나의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못해도 되는 것이 있어 기쁘다. 배움엔 끝이 없는 거니까. 그림을 그리며 느꼈던 마음들이 상호 보완된다. 덥거나 비가 와서 등산을 가지 못 한 한주였지만, 덕분에 요가를 통해 몸의 변화에 대해 알아갈 수 있어 기뻤다.


지난 주말엔 서울 일러스트 페어에 다녀왔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여기에서 본 1년 치 사람보다 많았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 굿즈 잘 만드는 사람, 마케팅도 장사도 잘하는 사람, 좋아해서 보러 온 사람 등등. 새벽 시장에 떨궈진 장기 백수의 마음 같았다. 좋은 영향을 받고! 또 나의 할 일을 하러, 빗소리 속으로...






2022.7.19.화 /36

소나기와 햇살이 공존하는 날. 비가 많이 와서 넘어진 꽃들을 과감히 잘라 데려다 두었다. 기개가 보이는 나리꽃, 소박하고 작은 해바라기, 수수한 도라지꽃, 한결같은 메리골드, 하늘하늘한 원추리. 화려한 애들을 잔뜩 골라 꽂아두니 마음이 왕 같다.


미래를 꿈꾸고 지나온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름이다. 늘 그렇듯, 해오던 것을 잘하고, 놓치지 않게 노력하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너무나 식상한 말들이구나 허허. 일상도 그러하다.






2022.7.21.목 /37

21을 7로 나눠 3으로 딱 떨어지는 예쁜 모양의 날짜다. 상큼한 노래들을 틀어두고 창밖의 진한 초록을 배경으로 빗금 그어지는 부슬비를 구경한다. 모든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감사해지는 오후. 많이 힘들다 ㅋ. 힘내라.






2022.7.26.화 /38

본격적인 더위다. 마당의 무성한 잡초처럼, 할 일들도 밀려들고 있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해 처리하는 게 장하다. 학교를 다니며 이런 걸 배운 것 같다. 커피 한 잔, 좋아하는 노래, 내 공간, 시원한 에어컨 바람. 꽃도 꽂아두고 팔이 나리꽃 가루로 얼룩덜룩해지고, 청소를 하고, 연락 돌리고 할 일 착착 해내기. 음, 일주일의 시작이 좋다.






2022.7.27.수 /39

어제는 늦은 밤, 창문을 활짝 연 방에서 아쉬탕가를 하였다. 혼자 하는 게 낯설었지만 하다 보니 홀로 뱉는 호흡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되지 않던 동작들도 갑자기(심지어 오랜만인데!) 되어서 신기했다. 정강이에 이마다 턱이 자연스레 닿았다. 저녁이고 또 습해서인 탓도 있을 테다. 마치고 하는 사바사나까지 아주 귀한 시간이었다. 종종 해보기로 결심.

오늘 환경 다큐에서 본 도인 같은 요리 연구가가 말하길, 독립적인 인간이 되려면 홀로 명상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했다. 그런 시간들을 귀하게 여기고 만들어 채워나가야지. 벌써 하루의 일과가 끝나가는 시간이다. 꽂아둔 참나리 꽃의 그림자가 서로 엉겨 붙어 아름답다.






2022.8.5.금 /40

일주일의 마지막. 8월을 지나며 매미 소리와 임윤찬의 음악 아래 일기를 쓴다. 바쁘지만 또 뿌듯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기쁜 또 하나의 소식은 여름을 무사히 건강하게 보내고 있다. 좋아하는 책을 무한으로 돌려막기 중인데, 그럴 여력이 남아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이번 주는 내내 열심히 요가를 다녀왔다. 그 보답인지 애쓰던 아사나 중 하나가 선물처럼 찾아왔다. 완벽하지 않아도 다음 단계를 향해 가는 과정 속에 행복을 느낀다. 평생 종이인형으로 산 내가 몸을 움직이며 많은 걸 배우고 또 정화한다. 오늘 밤까지 정신없이 바쁠 예정인데 무사히 잘 해내고, 주말도 즐겁게 보내봐야지. 여름도 좋군!






2022.8.11.목 /memo

최근 좋아하는 것들을 정주행 하며 느낀 점. 어려움에 빠져야 한다. 좋아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달려가는 편인데, 대부분 극복하는 장면들이다. 무언가를 멋지게 해결해나가려면 그런 상황에 처해야, 해결이라도 할 수 있다.






2022.8.16.화 /42

시간이 비어 한가로운 오후. 할 일을 끝낸 시원한 마음으로 일기를 쓴다.


까지 쓰고 지금은 목요일 오후. 전혀 한가롭지 않았군.

백 년 만에 놀러 갈 계획들이 생겨서 설레는 마음이다. 그로 인해 들뜨고 평소에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가라앉히는 요가 시간이었다. 설레는 마음과 여행지를 상상하는 일이 엇결처럼 다가온다. 신나고 흥이 나는 이 기분이 일상의 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 중이다. 잘 녹아들어 상호보완될 수 있게 노력해나가야지. 바다 수영하고 또 비행기 탈 날들을 손꼽아 기다리며! 열일 합시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 여기라는 바로 이 지점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