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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 없던 멈춤

더 완벽해지려던 휴식

by 먼지잼
이상하다.
분명 모든 걸 계획대로 하고 있는데
왜 이럴까.


아침 6시 기상. 스트레칭 30분. 산책 1시간. 명상 10분. 점심 후엔 구직 사이트 체크. 오후엔 자기계발 2시간. 저녁엔 독서 1시간. 취침 전 하루 돌아보기 15분.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번아웃을 이겨내기 위한 나만의 솔루션이었다. 이렇게 하면 분명 좋아질 거라고, 그동안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고, 실행하면 되는 거였다. 여태껏 그렇게 해왔고, 그래서 성공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시간표대로 움직이는데도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계획을 완벽하게 실천할수록 마음은 더 지쳐갔다. 매일 밤 다이어리에 하루를 기록했다. 날씨, 수면 시간, 운동량, 독서량까지 꼼꼼하게 적었다. 마치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처럼, 나의 모든 상태를 글로 옮겼다. 하지만 펜으로 아무리 많은 말을 써내려가도, 일기장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공허한 하루하루가 정갈한 글씨체로 쌓여갈 뿐이었다.


답을 찾지 못하는 게 괴로웠다.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게 괴로웠다. 쉬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쉼조차 하나의 프로젝트로 만들어버렸다. 카페에서 책을 읽을 때도 '이 시간에 최대한의 힐링을 얻어내야 해'라는 강박이 따라다녔다. 고양이와 놀 때도 '이게 정말 생산적인 휴식일까?'라는 의심이 끊이질 않았다.

쉼이라는 단어 앞에 '효율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휴식의 목적과 기대효과를 정리하고, 시간대별 컨디션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번아웃을 치료하기 위한 완벽한 휴식 프로세스. 그것이 나의 새로운 미션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어제의 휴식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체크했다. 체크리스트의 모든 항목을 완벽하게 수행했는데도, 아침은 여전히 무겁게 찾아왔다.


가장 아이러니했던 건, 이런 생각들이 번아웃의 징후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는 거였다. 알면서도 계속 반복하는 자신을 보며 더욱 자책했고, 그 자책은 다시 새로운 계획으로 이어졌다. 악순환이란 걸 알면서도, 이 패턴을 깨뜨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MBTI 검사를 다시 받아봤다. 세 번이나. 매번 결과는 ENTJ였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리더십? 추진력? 그런 게 있었다면 이렇게 무기력하진 않을 텐데. 예전에는 '감정적이다'라는 말이 최악의 피드백이었다. 그런 내가 이제는 감정의 포로가 되어있었다. 눈물도 나지 않는데 울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이런 내가 낯설고 두려웠다.


일주일째 같은 자리다. 시간은 흐르는데 나만 멈춰있다. 앞으로 나아가려 발버둥 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버둥거릴수록 더 깊이 잠기는 기분이다. "이쯤이면 충분히 쉬었잖아?"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하지 않아?" "더는 안 되겠다, 이번 주부턴 정말 시작해야지." 매일 아침 다짐하고, 매일 저녁 좌절한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또다시 같은 다짐을 반복한다.


자기계발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난 실패가 아닌 멈춤을 두려워했다.
잠시라도 멈추면
영영 다시 시작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쉼 없이 달려왔고,
그 달리기가 습관이 되었다.
이제 와서 멈추라니,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달리기를 멈추면 난 누구지?
달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멈춰 있는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끝나지 않는 자기와의 전쟁. 이길 수 없는 상대와의 싸움이 계속된다. 이 싸움의 결말이 무엇일지,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지금의 나에겐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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