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결핍된 것을 남에게서 찾는다더니, 나는 그의 메마른 감성에서 위로를 찾고 있었을까.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똑같은 자리에 앉아, 변함없는 목소리로 "전표 확인하세요"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메마른 일상을 살면서도 묵묵히 버티는 걸 보면, 분명 그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하늘이 예쁘다고 해도 "그냥 하늘이네"라고 말하는 그의 무심함은, 어쩌면 삶에 치여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조차 잃어버린 걸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주제넘게도 그의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고 싶어졌다. 퇴근길의 노을 사진을 보내고, 아침에 본 예쁜 꽃 이야기를 하고, 점심시간에 들은 음악을 추천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의 무뚝뚝함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그의 고단한 삶을 멋대로 이상화했다.
예민하게 굴 때면 오히려
그의 힘든 삶을 쓰다듬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의 구원자라도 된다는 듯이.
어쩌면 그건 다 나를 위한 변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라고 소문난 그가, 나한테만은 달랐으니까. 오예스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의 그 수줍은 웃음이 자꾸 떠올랐다. 매일 아침 딱딱하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내 전표를 꼼꼼히 확인해 주던 모습, 실수가 있으면 부드럽게 잡아주던 말투, 그리고 사소한 것도 잊지 않고 챙겨주는 작은 친절들이 쌓여갔다.
그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아침에 본 예쁜 꽃, 점심시간에 들은 좋은 노래, 퇴근길에 마주친 길고양이까지. 질문하면 답이 늘 "그냥"이었다. 그냥 예쁘고, 그냥 좋고, 그냥 귀엽다고.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처음엔 그의 무심함이 서운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그냥'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이유를 찾으려 애쓰던 내게, 그의 '그냥'은 쉼표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그냥 너무 불안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잘린 뒤, 스스로를 확신할 수 없었다. 퇴직금을 날린 후의 막막함까지 더해져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흔들고 있을 때, 주임님은 마치 계절이 바뀌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는 나무처럼 보였나 보다. 매일 봐도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 내가 실수를 해도 "괜찮아요,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죠"라고 말해주는 사람. 출근할 때마다 "오늘도 힘내세요"라고 건네는 짧은 인사가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 그의 모든 것이 나에겐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였을까, 그에게 통화를 하자고 했던 그 순간, 남아있던 자존감마저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가 일상적으로 건네던 인사들, 무심코 보냈던 카톡들이 전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어쩌면 그건 내가 불안한 시기에 안정을 찾으려 스스로 만들어낸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마주치는 그의 인사는 여전히 변함없이 "오늘도 힘내세요"다. 다만 그 말이 내 마음을 더 이상 흔들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 내가 느꼈던 그 떨림이,
정말로 모두 착각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