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J의 분노는 오뉴월의 서리급
고백 다음 날부터 사무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나는 주임님이 오시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했고, 주임님도 더 이상 예전처럼 사무실에 들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서로를 피하는 이 숨바꼭질이 얼마나 오래 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인가 대리님과 수다를 떨다가 문득 대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주임님이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요새 사무실 들어올 때마다 많이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요."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실패가 있을까.
나의 애정이 오히려
그 사람의 일상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어서 대리님께 퇴근 후 커피 한잔을 제안했다. 평소처럼 수다를 떨면서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리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 달랐다.
"사실... 주임님이 언니가 보낸 메시지를 저한테 다 보여줬어요."
순간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솔직했던 순간, 가장 용기 있었다고 생각한 그 고백이 제3자에게 그대로 공개되었다니. 대리님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언니가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셨더라고요. 저도 주임님한테 '관심 없으면 왜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냐'고 물어봤어요. 정말 언니한테 관심없냐고. 근데… 정말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솔직히 고백을 받았을 때는, 자기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기쁘긴 했대요 근데 언니를 이성적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이젠 정말 언니가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창피함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 내 진심이, 내 용기가, 내 설렘이 이렇게 가볍게 다뤄질 줄은 몰랐다. 그동안 쌓아온 두 달간의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차 안에서 눈물이 터졌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친한 교회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울음을 터뜨렸다. 교회에 도착해서도 의자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
이건 거절당한 것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다. 내 감정이, 내 진심이 이렇게밖에 취급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였다. 이런 사람을 좋아했다는 것이, 그의 수준을 알아보지 못한 내 눈이 원망스러웠다. 그날 밤, 분노에 싸여 휴대폰으로 채용 사이트를 뒤적였다. 더 이상 이 공간에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이면 다시 그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이직을 결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건 도망이 아니었다. 내 가치를 지키기 위한,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었다. 내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진심을 계속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건 나답지 못한 모습이었고, 그런 자신을 지켜볼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왜 하필 이 사람이었을까. 왜 이런 사람에게 끌렸을까.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함부로 할 권리를 주었을까.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자리에 앉아, 변함없는 목소리로 "전표 확인하세요"라고 말하던 그 사람. 그의 단조로운 일상이 나에겐 왜 그리 특별해 보였을까.
어쩌면 안정이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잘리고, 퇴직금을 날리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흔들리던 그때. 그의 메마른 감성도, 무뚝뚝한 대답도 오히려 신뢰감으로 다가왔다. 흔들리는 나를 잡아줄 것 같은 안정감.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내가 본 건 진짜 그가 아닌, 내가 원하는 모습을 투영한 거울이었을 뿐이다. 흔들리는 시기를 견디며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나는 그를 필요 이상으로 의미화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제 와 돌아보니 그때의 나는 누군가의 호의를 호감으로 착각할만큼. 일상적인 대화를 특별한 의미로 애틋하게 여길만큼 한껏 연약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도저히 그걸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때처럼 강하고, 자신만만한 나라는 갑옷을 입고 그야말로 발연기 중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계획에 없던 결심이
오히려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
그날 밤, 나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