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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Apr 25. 2024

부귀험중구

서른한 걸음

[부귀험중구 - 부귀는 모험하는 가운데 구해진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 중인 [돈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뜬 문구에 내 시선이 콱 사로잡혔다.


'돈.. 그래. 돈 참 중요하지.'


어쩌면 지금 내가 벌이고 하고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부귀'에 대한 갈망이 조금은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순수하게 예술성에 기반해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처럼 다소 상업성을 지향하며 다른 이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상업성이라는 말이 살짝 느낌이 별로처럼 들릴 수는 있겠지만 사실 그렇게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본인이 상업성을 지향해도 주머니를 여는 쪽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니.


그런데 꼭 부귀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일 중 모험을 걸어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는 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일.

들어가고 싶은 회사의 면접을 통과하는 일.

대출을 활용해 집을 구매하는 일.


위에 언급한 것들 말고도 모험을 걸어야지만 구할 수 있는 게 넘쳐흐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던가. 그래서 난 행동의 힘을 믿는다.




[대학생 1학년 때]


"야! 군대 언제 갈 거야?"

"나? 음.. 안 가고 싶은데.."

"뭔 소리야. 늦게 가면 더 힘들어. 나랑 같이 지원해서 가자."


자신이 없었다. 분단국가면서 정상적인 20대 이상의 남자라면 당연히 가야 할 군대를 눈앞에 두고 자신이 없다니!! 이 무슨 얼토당토 안 한 말인가!


그런데 정말 무섭기도 하고 단체 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다.


"와~! 누군 자신 있어서 가는 줄 알아? 의무니까!! 당연히!! 가야지!! 다들 가기 싫어도 억지로 가는 거라고!!"


그렇구나. 그렇지. 특별한 재주도 없고. 등급도 정상이고. 가야지. 별 수 없잖아.


"같이 지원할 거지?"

"아니. 나 좀 미룰래."

"하.. 후회할 텐데. 알아서 해라."


당시 친척 중에 형제가 있었는데 두 분 다 병역특례업체에 취직해 군복무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저도 형들처럼 할 수 있어요?"

"뭐 간단해. 일단 정보처리산업기사나 기사를 따. 그리고 당연히 개발 경력을 쌓아야겠지?"

"에..?"

"에는 무슨. 최소한의 자격은 만들어야 지원이라도 해볼 거 아니야. 안 그래?"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부터 준비해서 해봐도 될까?


사실 좀 무서웠다. 이도저도 아니게 준비만 하다가 시간을 날려먹고 최악의 상황엔 결국 군대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럴 거면 차라리 눈 딱 감고 빨리 갔다 오는 게 더 현명한 거 아닐까?


하지만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의 크기가 그만큼 컸을까?


결국 내 이십 대의 대부분은 병역특례업체로 취업하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사용되었다. 이리저리 작은 회사라도 들어가 경력을 쌓았고 부족한 학점을 어떻게든 채워서 기사 시험을 볼 수 있게 준비해 자격증도 따고 매년 나오는 T.O에 이력서를 보냈다.


[탈락. 탈락. 탈락! 그만해! 탈락!]


매년 한 해가 지날수록 자신감은 사라졌다. 병역이 해결되지 않은 20대의 남자가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눈 딱 감고 하던 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우편물을 하나 건넸다.


"얘야.. 입영통지서가 나왔네.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내년 초면 가야 하는 거 같구나. 이렇게까지 미루다 갈 거였으면 진작에 갔으면 좋았을 걸.. 휴."


말이 목구멍에 걸린 듯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들어갈게요.."


개미 목소리만큼 작게 내뱉고 좁은 방안에 들어와 한참 동안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가야 하는구나. 아무리 해도 안될 사람은 안되나 봐.'


도저히 답이 보이질 않았다. 사실 군대를 안 가고 싶어 병역특례업체로의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여기저기 떠벌릴 만큼 당당하지도 못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이미 몇 년 전에 다들 전역했고 각자의 위치에서 학업 또는 취업을 통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오직 미련하게 시간을 보낸 나만 제자리였을 뿐이다. 그것도 불명예스러운 이유로.


[야 XXX 군대 가야 된대.]

[뭐? 아직 안 갔어?]

[에효 한심하지 뭐. 군대 가기 싫다고 저 생쇼를 하고 있으니.]

[쯧쯧.. 할 말이 없다 정말. 저게 뭐 하는 짓이냐.]


혼자만의 고민을 털어놓으려 하면 들려오는 조언을 가장한 질타. 굉장히 아팠다. 하지만 아픈 척을 할 수는 없었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 앞에서 내 고민은 하찮은 것 이하. 당연히 하지도 말아야 될 고민이었을 뿐이니까.


그래서 점점 친구도 피하게 되었나 보다. 듣기 싫은 말을 안 들을 방법은 안 만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띠리링-


"여보세요."

...

"네 맞는데요. 어디시죠?"

...

"네?! 정말요?"

...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입대하기까지 남은 기간 불과 5개월 전 면접을 보러 올 수 있냐는 업체 담당자의 목소리. 지금까지도 그의 목소리는 내게 천사의 목소리처럼 들렸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제대로 된 면접 기회조차 받기 힘들었는데 드디어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이 생겼다. 전화를 끊고 나자 턱이 덜덜 떨렸다. 막상 면접 기회는 얻었지만 자신감이 문제였다.


'그래도 해야지! 도망가지 말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원하던 삶의 방향은 잠시 수정을 해야 할 거야.'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헤어졌다. 회사를 벗어나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젠장! 젠장! 아는 것도 제대로 답을 못했어. 그러게 준비를 더 했어야 하는데.'


꼭 이렇다. 실전에서 실수하고 뒤늦게 후회하기. 그래도 꼭 합격하면 좋겠는데. 노예처럼 일해달라면 그렇게 해줄 수도 있는데!




"뭐야? 얘기 끝이에요? 그래서 뭐 어떻게 된 건데요?"


결과적으로 병역특례병으로 취업에 성공해서 2년 10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대체 복무 후 소집해제까지 무사히 완료했다.


"아니.. 지금 군대 가기 싫어서 징징거리던 아저씨의 과거 얘기나 듣자고 내가 글을 읽은 줄 알아요?"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징징거렸었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서 원하는 삶의 방향대로 살고 싶었다. 그 과정 속에서 운 좋게 삶이 살아졌고.


굳이 안 해도 될 과거사까지 끌어다가 이야기를 쓴 이유는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서랄까.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부정적인 시선이 따라온다. 해봐도 별 볼 일 없다느니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느니. 틀린 말도 있고 진심 어린 조언도 섞여 있음을 알고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글과 씨름하며 보내야 될 수도 있다. 결과는 쉬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과정 속에서 평정심을 잃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행동의 힘]을 믿는다. 아니 믿어보려고 한다. 내게 있어 행동이란 곧 종교와도 같은 신념이다.


과거의 내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면 현재 내 삶은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겠지?

지금의 내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내 삶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만약 미래의 모습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난 행복할까?


누구에게나 시간을 소모하고 노력하는 일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 결과가 예측되지 않는 일을 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난 [행동의 힘]을 믿는다.


해적왕을 꿈꾸며 바다를 누비는 원피스의 루피처럼,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일처럼 보여도 포기하지 않고 싶다.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해보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그렇게 나의 40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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