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부부 싸움

3

by 고성프리맨

그렇게 멈춰 있던 것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흘러 퇴근 시간이 되었다. 오늘 하루 동안 들었던 일들이 전부 꿈처럼 느껴진다. 희망퇴직부터 이직 제안까지 거짓말처럼 모든 게 갑자기 생겨났다.


‘어떤 선택을 해야 현명하게 사는 걸까?’


어쩌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난 흘러가는 대로만 살면 되는 건 아닐까. 이제 40대 초반이고 한참 일해야 할 땐데 벌써부터 먹고사는 게 쉽지 않다. 갓 태어난 아이도 키워야 하고 앞으로 들어간 돈은 생각만으로도 어지럽다. 애써 들어갈 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싶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나마 다행인 건 회사의 우울한 분위기 때문에 오늘따라 야근하는 사람은 없는 거 같다. 늘 야근하며 자리를 지키던 팀장도 오늘은 힘이 없어 보인다.


‘거봐. 그렇게 으스대더니. 너도 별 수 없구나.’


회사 입장에서는 조금 더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부품 중 하나일 뿐 아닌가. 한편으로는 그런 그가 안 돼 보이기도 하다. 특별히 엄청난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닌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건 사실이니. 그래도 풀 죽어 있는 모습이 조금은 고소하다.


‘내가 지금 저놈 걱정할 때냐고. 휴.’


오늘은 왠지 바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다. 육아에 지쳐 예민해진 아내에게 회사 얘기까지 꺼내면 어떤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낼지 벌써부터 무섭다.


‘어차피 조금 늦게 들어간다고 큰일이 날 건 아니니 밥이나 먹자.’


오늘 만큼은 회사를 벗어난 곳에서 밥을 먹고 싶다. 뭘 먹을까 한참 고민해 봤는데 아무래도 혼자 먹기에 좋은 곳이 많이 떠오르진 않는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결국 햄버거나 먹기로 했다. 눈치 볼 것도 없고 그냥 잠시 멍 때리며 먹을 수 있겠지. 오랜만에 정시 퇴근을 하니 기분이 좀 이상하다. 최근 들어 야근을 안 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괜히 상이라도 받은 기분이다. 누가 남으라고 시킨 건 아니었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괜히 눈치가 보여 남을 때가 많았던 거 같다. 문득 션이 얘기했던 새로운 회사에 대해서도 상상을 해본다. 거기는 여기보다 규모가 작으니 더 힘들게 일해야 하겠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 낯섦에 잘 적응할 수는 있을까? 한 회사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니 모든 게 다 두렵다. 그동안 자기 계발이라도 좀 할걸이라는 생각도 든다. 맨날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공부 안 하고 손 놓은 지도 벌써 몇 년째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가게에 도착했다.


‘오늘은 최대한 기름진 거 먹어야지.’


패티도 추가하고 감자튀김에 치즈도 얹었다. 한입 베어 물자 입안 가득 육즙이 한가득 찼다 사라지며 짭짤한 뒷맛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후추의 알싸함이 느끼함을 잡아준다. 입안을 살짝 상쾌하게 만들고 싶어 콜라를 한 모금 마시자 탄산이 혀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기름기를 씻어내 주는 느낌이 좋다. 나도 모르게 ‘꺼억’하며 트림이 나온다. 막상 기름진 음식을 와구와구 먹으며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었는데 한입 먹자마자 입맛이 사라져 버렸다. 괜히 비싸게 시켰다 싶어 후회가 됐지만 그냥 잠자코 있기로 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먹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가방에 집어넣고 집에 도착했다. 집까지 오는 매일이 전쟁이다. 일찍 나오던 늦게 나오던 항상 대중교통엔 사람으로 넘쳐난다. 앉아서 오는 경우도 드물고 중간에 갈아타야 해서 오래 앉아 있기도 힘들다. 오늘따라 집에 들어가는 길이 힘겹다. 아내와 말싸움을 하게 될 것 같아 벌써부터 두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갈 곳이 없으니 집이나 가야지. 익숙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다.


신혼 초에 부동산 업자에게 혹해서 산 집이다. 오늘따라 집 담보로 받아져 있는 대출금이 더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당시에 신축 빌라에 전세로 살려했는데 아내가 보자마자 너무 이쁘다며 난리를 쳤고 그 와중에 중개인이 달콤한 말로 꼬드기는 바람에 집을 사게 됐다. 그때 매매와 전세금이 2천만 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계속 사라고 하는 바람에 결국 나도 넘어가고 말았었다. 그 뒤로 이 집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샀던 금액만큼 받기는커녕 지금 팔면 몇천만 원 이상 손해를 보고 팔아도 살 사람이 나타날지 모르겠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런 생각만 계속 드는 거 같다. 익숙하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어! 자기야 벌써 왔어?”

“응.”


시계를 보니 저녁 9시다.


‘저녁 9시가 이른 시간이 되다니.’


“잘됐다. 아이 기저귀가 떨어졌는데 가서 좀 사다 줄래?”

“아니. 진작에 문자나 전화로 얘기하지 그랬어! 집에 들어오면 꼭 그런 얘기하더라.”

“뭐? 지금 기저귀 하나 사다 달랬다고 화내는 거야? 나 하루종일 애 봤는데 당신이 뭐 도와주길 했어!”

“알았다고. 내가 지금 싸우자는 게 아니라. 미리 말 좀 해줄 수 없었냐 이거지.”

“정신이 없었단 말이야. 애 보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는데 짜증 나게.”

“하 알았어. 다른 거 필요한 건 없어?”

“없어!”


‘아 오늘은 싸우기 싫었는데 보자마자 바로 싸웠네.’


언제부터였을까.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을까? 우리 부부는 눈만 마주치면 어느 순간부터 고성으로 시작해 고성으로 끝나는 대화를 나눈다. 그렇다고 아내가 특별히 밉거나 그런 건 아니다. 이상하게 서로의 마음에 여유라고는 없어져 버렸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래도 오늘 아내와 중요한 얘기를 나눠야 하니 최대한 참아야 해.’


집에 들어온 지 5분도 안 돼서 기저귀를 사러 터덜터덜 바깥으로 나왔다. 편의점까지는 1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집에서 좀 쉬고 싶었는데 다시 바깥으로 나가려니 귀찮고 짜증이 생기긴 한다. 하루종일 회사일 때문에 시달린 내 마음도 모르는 아내가 조금은 원망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내도 불쌍하다. 집에 갇혀서 하루종일 아이랑 있어야 하니. 출산 휴가도 세 달 뒤면 끝이라 회사 복귀하는 것도 예민해져 있다. 아이 양육을 도와줄 부모님이라도 근처에 살았으면 좋겠는데 양가 부모님 모두 다른 이유로 멀리 계신다. 막상 아내가 회사에 복직하고 나면 육아는 어떻게 되는 건지도 고민인데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아직은 애써 무시하는 중이다. 이 와중에 다니던 회사도 못 다니게 된다고 하면 아내의 반응이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한데. 답답한 마음이 어떻게 해도 나아지질 않는다. 문득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다시는 피지 않기로 한 약속이 있으니 지켜야 한다.


편의점에 들어가 기저귀를 골랐는데 볼 때마다 가격 때문에 깜짝 놀란다. 요즘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별개로 아이 키우는데 들어가는 돈은 지원도 해주질 않는다. 그나마 생색내기 식으로 조금 지원해 주지만 이 돈 가지고는 택도 없는데. 기사에서는 세금 퍼주기 정책이라며 악성 댓글 다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글 보면서도 늘 마음이 갑갑하다. 역시 사람은 본인이 겪는 상황을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존재인가 보다. 그나저나 오늘은 도저히 맨 정신에 아내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자신이 없다. 소주 한 병과 맥주 페트 한 병을 추가로 구매한다. 오늘 아이가 잠들면 아내와 술이라도 마시면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다. 다행인 건 모유 수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아내도 술은 대환영한다는 거. 밤에 나와서 걷는 게 귀찮긴 했지만 막상 나오니 기분이 상쾌했다. 그냥 이렇게 혼자 몇 달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 전화가 울린다.


“왜 안 와?”

“가고 있어.”

“빨리 와. 혼자 여유롭게 있지 좀 말고. 나도 혼자 있는 시간 좀 가지고 싶다.”

“간다니까.”


대답도 하지 않고 아내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갑자기 짜증이 다시 생겨나려는 걸 억지로 누른다.


‘휴.. 참자.’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날 한 번 째려보고 나서 기저귀를 낚아채듯 가져간다. 고생했다느니 수고했다는 얘기를 듣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대놓고 면박주는 모습은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야! 왜 그래?”

“뭐? 야?”

“어. 내가 놀다 온 것도 아니고 나도 오늘 회사에서 엄청 시달리다 온 건데. 오자마자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조용히 말해라. 아기 재우고 나서 얘기 나눠. 지금 겨우 잠들락 말락 하니까 괜히 깨우지 말고.”


아내의 행동 하나하나가 밉게 보인다. 그래도 아이가 깨면 대화 나눌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을 거 같아 지켜보기로 한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아내가 피곤한 표정으로 거실에 나왔다.


“뭐야. 혼자 술이나 마시고. 팔자 좋네.”

“기다리고 있기 심심해서 조금 먼저 마셨어.”

“그게 팔자 좋은 거야.”

“휴. 지은아. 나 싸우고 싶지 않아.”

“하는 행동을 봐. 안 싸우고 싶게 만드나.”

“알겠어. 알겠으니까 오늘 얘기 좀 하자.”

“무슨 얘기?”

“그냥 좀.. 잠자코 들어주면 안 될까?”


평소와는 조금 달라 보였는지 아내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며 소파에 앉는다.


“맥주 사 왔어?”

“응 기다려봐.”


냉장고에 넣어놨던 페트병을 꺼내 맥주 한 컵을 따라 아내에게 준다.


“냉동실에 좀 넣어놓지 그랬어. 덜 시원하네.”

“언제 나올지 몰라서.”

“근데 왜? 불안하게 왜 그래.”


바로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아 소주를 한잔 마신다. 그리고 안주랍시고 준비해 놓은 새우맛 과자를 하나 입에 넣는다. 그래도 소주의 쓴맛이 남아 있다. 뜸 들이는 날 보며 아내도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 후 날 쳐다본다.


“우리 회사가 매각 됐대.”

“매각?”

“응. 다른 회사에 팔아넘겼대.”

“그래서?”

“그래서는 뭐. 나도 아는 건 여기까지야. 근데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하네.”

“안돼!”

“하아. 알았어. 근데 내 얘기부터 좀 들어줘.”


아내에게 회사에서 일어났던 일을 최대한 상세히 얘기해 줬다. 아내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며 페트병의 맥주를 비워간다.


“휴.. 그래서 대책은 있어?”

“말했잖아. 일단 회사 동료가 제안한 회사 면접이나 한 번 보려고.”

“앞으로 돈 들어갈 데가 많은데 우리 대출금도 많이 남아있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안정적인 데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내는 모른다. 안정적인 데로 가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게다가 솔직히 난 자신이 없다.


“당장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 일단 희망퇴직하면 퇴직금이랑 추가 급여가 지급될 테니 그걸로 일단 생활비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머리 아프다. 나 먼저 잘게.”

“지은아. 오빠 지금 심각하게 얘기하는 거야.”

“알아. 근데 나 지금은 아무 말도 못 하겠어. 내일 얘기 다시 하자. 미안.”


힘들어하는 날 두고 아내는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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