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2

5

by 고성프리맨

“알아서 잘해볼게. 피곤해서 먼저 잔다.”

“뭐야. 얘기 이게 다야?”

“나도 아직 100% 아는 게 아니니까.. 일단 정해지면 다시 얘기하자. 이제부터는 다른 회사에도 지원해 봐야지.”

“알았어.”


아내의 한숨을 뒤로 한채 방으로 들어간다. 방 안에서 자고 있는 희수가 보인다. 자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천사 같다. 다가가서 얼굴을 한 번 만져보고 부드러운 살결을 느껴본다.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와 잘 있어 주지 못한 게 마음 아파진다.


‘그래. 우리 희수를 위해서라도 잘해야지. 잘될 거야. 꼭.’


문득 이렇게 일만 하다 아이가 크는 모습도 제대로 못 보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겠어. 다른 아빠도 비슷할 거야. 돈은 벌어야지.’


갑갑해진 마음을 뒤로하고 자리에 누웠다.



며칠이 지나고 회사에서 구조 조정 대상자에게 메일이 왔다.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임이 멈춰졌다.


‘아니 조정 과정을 거치겠다고 다 같이 논의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뒤통수를..’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간다.



안녕하세요 김선호 님.


저희 회사에서 현재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로 인해 구조 조정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부서에서는 인력 조정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번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귀하께서도 대상자로 지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구체적인 협의사항 및 조건에 대해 안내드리겠습니다.

급여 및 복리후생 조건:



1. 두 달 동안의 월급은 이전과 동일하게 지급됩니다.


2. 기존의 복리후생 혜택은 구조 조정 이후에도 유지됩니다.





퇴직일 및 구직활동 허용:



1. 귀하의 퇴사 일자는 현재일로부터 두 달 뒤까지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2. 회사를 나가기 전까지 구직활동을 원활히 진행하실 수 있도록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근무 시간 외에도 구직활동에 투자하실 수 있도록 허용해 드립니다.




불편함을 끼쳐드리는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는 귀하의 기여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의 모든 계획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지원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향후에 대한 더 많은 정보 및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제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함께 고민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들이!”

“애초에 정해진 대로 그냥 밀어붙이는 거네. 이래 놓고선 무슨 조정을 한다고 하..”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사람 비율은 기존 50%에서 60%로 10%나 올라가 있었다. 꽤나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직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각자의 가정과 사정이 있을 텐데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인가. 현실은 상상보다도 더 냉혹하다. 이 상황 속에 나 또한 자유롭지 않다. 이 와중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봐봐. 미리 나처럼 코딩테스트 준비도 하고 했어야지. 미련 없이 그지 같은 회사 떠날 수 있게 돼서 속이 후련하네요.”


‘재수 없게 본인 잘났다는 걸 저렇게 티 내다니.’


하지만 갈 곳이 정해져 있는 저 인간이 지금 가장 부러울 지경이다. 문득 어제 만났던 지누가 생각난다. 며칠이 지날 동안 언급이 없는 게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션에게 넌지시 물어볼까.. 후.’


괜한 자존심 때문에 물어볼까 망설이는 사이 션이 다가왔다.


“제프.. 메일 받았어요?”

“네.. 그렇게 몸 바쳐 일했는데 결국 나가라면 나가야 되는 신세네요. 휴.”

“저도 받았어요. 혹시 잠깐 나갈래요?”

“그래요.”


늘 걷던 대로 회사 주변을 정처 없이 걷는다. 언제나처럼 편의점에 들어가 마실 음료수를 구매했다. 그리고 벤치가 있는 공원으로 말없이 걸어간다.


“제프. 근데 생각보다 충격적이네요. 저 이런 메일은 처음 받아 보거든요. 하하.”

“나도 마찬가지예요. 전 충격적인 것보다 기분이 좀 나쁘네요. 그래도 오래 일했는데 특별한 것도 없고.”

“어쩌겠어요. 회사 입장에서는 우리는 한낱 부속품에 지나지 않나 봐요. 걸리적거리면 갈아 끼거나 버려야 하는 폐품.”

“휴.. 그 말이 맞네요. 그래도 션은 지누 회사로 가기로 했잖아요.”


넌지시 션을 떠본다.


“아.. 그거.”


‘뭐지 불안하게..’


잠시 쉼을 가진 후 션이 말을 꺼낸다.


“지누가 마음이 바뀌었나 봐요. 그래서 저도 못 가게 되었어요. 아마 제프도..”

“아? 왜요?”


눈에서 갑자기 불이 번쩍 튀는 느낌이다.


“투자가 잘 돼있고 아무 문제없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나 봐요. 직원 뽑을 때 투자자하고 상의를 해봤는데 요즘 경기가 어려우니 기존 인력 가지고 사업을 하라고 했다나. 우리 같은 시니어는 한 마디로 가성비가 안 맞는다 이거죠 뭐.”

“충격이네요..”


분명 합격해서 이직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솔직히 뭐 합격했다고 얘기를 한 건 아니었으니 그냥 김칫국을 거하게 마신 거라 생각해야 하나? 단순하게만 생각하기엔 기대했던 마음이 있어서 모든 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제프. 괜히 저 때문에..”

“아... 같이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도요. 휴.. 그래도 회사에서 구직활동 해도 된다고 했으니 이력서 돌려야죠.”


‘이력서.. 맞아 이력서를 써야겠지. 오랫동안 수정조차 해본 적이 없던 이력서.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 거지. 그나저나 요즘은 코딩 테스트도 어렵게 본다던데. 풀 수는 있을까?’


“션은 혹시 코딩테스트도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은 안 하면 이직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려면 커트라인이 높아서. 저희처럼 경력직은 100점 받아야 한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어이없네요. 그깟 코딩 테스트가 실무랑 뭔 상관이라고. 그런 거 안 해도 일 잘할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죠. 맞추라면 맞추는 수밖에. 오늘부터 계속 공부하려고요. 갈까요?”

“네 가죠.”


사무실에 돌아와 의자에 앉자 많은 생각이 어지럽게 들기 시작한다. 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회사는 반 태업 분위기였다. 그나마 이 난리통에 자리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도 보이는데 아마도 구조 조정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그중에 재수 없는 팀장과 부서장이 보인다. 그들은 더 이상 일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다만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본인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남은 자와 떠날 자 사이에는 어느새 선이 생겼다. 어떤 사람은 대놓고 인수인계 따위는 할 생각이 없으니 알아서 분석하고 익히라고 말도 한다.


‘다른 사람 걱정할 때가 아니야. 난 어떡해야 하지.’


동아줄 하나가 사라진 기분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겨우 며칠 전 한 번 본 사이일 뿐인데 이 정도로 마음을 줬었다니. 혹시 모르니까 연락을 해볼까.


‘션하고는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지누에게 받았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를 받는다.


“누구신가요.”


‘저장도 하지 않았나 보네.’


“안녕하세요 대표님. 저 며칠 전에 참치집에서 뵀던 제프라고 합니다.”

“아! 제프. 웬일이에요?”


‘뭐?’


“아.. 그게 혹시 면접에 떨어졌는지 합격했는지 궁금해서 바쁘실 거 알지만.”

“아. 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안해요 제프. 정말 함께 일하고 싶은 분이셨는데 사정이 생겨서 함께 못할 거 같아요. 자세히 얘기드리고 싶지만 제가 또 일이 있어서. 미안해요. 이만 끊을게요.”

“어. 네네.”


끊어진 전화기를 한참 바라봤다. 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다. 난 회사에서 잘렸고 회사를 구해야 한다. 지금 회사에 있는 다른 동료들도 전부 경쟁자다. 이미 나보다 발 빠르게 본인을 어필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해 보니 어지럽다. 저들보다 나은 점이 있기는 할까? 자신 없는 마음만 든다. 그래도 구인하는 회사에 대한 정보라도 알기 위해 구직 사이트에 접속해 본다. 첫 페이지에는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본 그럴싸한 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하는 업무와 겹쳐 보이는 포지션이 보이면 클릭을 한다. 업무 요구 사항에 정의되어 있는 기술을 살펴보는데 처음 들어보거나 사용해 보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게 보인다.


‘요즘은 이런 걸 쓰나 보구나.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동안 스터디하는 동료들을 보며 일이나 잘하지라며 혀를 찼던 과거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진다. 이런 회사에서 나 같은 퇴물을 받아줄까? 자신감이 하락하기 시작하자 자존감까지 떨어지며 퇴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난 퇴물인가? 열심히 살았는데. 돈도 벌고 가족도 부양하고. 그냥 열심히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인데.’


눈물이 차기 시작하더니 살짝 넘치며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내와 아이 생각도 나며 미안한 마음은 더 커져간다. 그래도 두 달이라는 시간이 있는데 이대로 슬퍼하며 흘려보낼 수는 없지 않겠나. 이것도 어쩌면 좋은 기회일 수 있을 텐데. 회사의 규모를 떠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눈높이대로 좋은 곳만 바라보다간 분명 어디로도 이직은 하지 못할 거 같다. 주제 파악을 하고 나자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안 쓰던 기술을 갑자기 익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공부나 학습은 습관인데 거진 10년에 가깝도록 손 놓고 있었던 사람이 갑자기 바뀔리는 없다.


‘일단 이력서부터 정리를 시작해야겠어.’


그동안 했던 일을 떠올리며 이력서에 내용을 적어야겠다 싶은데 무슨 일을 했던 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묻고 따지지 않고 해왔었는데. 그걸 쓰려니 자질구레하고 전문성도 없어 보인다. 차라리 한 팀에서 꾸준히 일해 왔었으면 심플하게 쓰기 좋았을 거 같은데. 잡부라고 써야 하나. 쓴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오늘은 좀 쉬자. 내일부터 다른 동료들에게 좀 물어가며 조언도 듣고 참고해 볼 만한 이력서도 얻어야지.’


더 이상 회사에서 할 일도 없는 상태로 시간만 보내야 하는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남은 월급과 퇴직금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버텨내야겠지. 많이 흘렀을 거라 생각해 시계를 봤지만 고작 2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 퇴근까지는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우울해진 감정과 손에 잡히지 않는 회사 일 때문에 이리저리 방황을 했다. 시간이 지나며 다른 사람들도 점차 체념하는 분위기로 변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아무도 구조 조정의 불합리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본인의 안녕을 위해 노력한다. 당연한 일이다. 회사를 나가는 순간 돈은 들어오지 않는다. 급여는 다니는 동안 계속해서 올랐지만 결국 손에 쥐어진 돈은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지금의 일자리가 유지될 거라고 믿었던 게 문제다. 그런 마음 때문에 받는 월급은 쓰기 바빴다.


‘하하. 일을 하지 않으니 별 생각이 다드네. 이러다 철학자라도 되는 거 아니야.’


회사에서 구직 활동을 보장해 줬지만 시간은 참 더디게 흘러갔다. 물론 주어진 구직 활동의 시간도 결국 지나갈 것이다. 지나고 나면 또 왜 이리 빨리 지나갔는지 후회하겠지. 마음이 떠나고 나니 회사에 있는 시간이 괴롭기만 하다. 망상을 거듭하다 보니 겨우 오늘도 시간을 죽일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인데 갑시다!”


그때 부서장이 화난 듯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난다.


“가려면 조용히 가세요. 이 바닥 좁은 거 몰라요? 지금 회사가 아니더라도 돌고 돌아 어디서 만날지도 모르는데 꼭 그렇게 선동해야 해요?”

“아.. 구조 조정 대상자가 아니시죠. 네. 제가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데 방해해서 아주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혼자 조용히 정시되면 알아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저.. 저.”


비아냥대듯 말하는 목소리에 부서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자리에 앉는다. 남는 자와 떠나는 자 사이에 벽이 생겨 있었다. 자리에 있는 짐을 미리미리 챙겨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난 김에 서랍 속에 있던 물품 몇 개를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내에겐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릿속이 복잡하다.


집 근처에 도착하자 도저히 맨 정신에 얘기할 자신이 없어 소주 두 병을 샀다. 술의 힘을 빌어 얘기하는 게 아니면 얘기를 꺼내지도 못할 거 같다. 문득 예전에 명퇴했던 아빠 생각이 났다. 지금의 내 모습이 꼭 그때의 아빠와 닮아 보였다. 집에 들어가자 아내가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어. 일찍 왔네?”

“응 정시 퇴근했어.”


내 손에 들린 비닐봉지 그리고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아내가 말을 꺼낸다.


“할 말 있구나?”

“밥은 먹었어?”

“아니 좀 이따 먹으려고 했지. 뭐 시켜 먹을까?”

“그래.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럼 오랜만에 치킨 먹을까?”



배달 온 치킨을 받아 들고 상을 차렸다. 조촐하게 술잔을 준비하고 잔을 채운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치킨을 먹다가 소주를 비워냈다. 소주를 한 병쯤 먹었을 때 잔을 내려놨다.


“구조 조정 대상자가 되었어.”

“그래. 어쩔 수 없잖아. 예상 못한 것도 아니었고. 조건은 뭐래?”

“저번이랑 똑같아.”

“겨우 두 달 치?”

“응.”

“너무한다 진짜. 다닌 세월이 있는데. 푸대접이 심하다.”

“내가 다 잘못해서 그렇지 뭐.”

“당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래. 할 만큼 했어.”


할 만큼 했다는 아내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도 눈물을 훔친다.


“그래도 새로 면접 본 데가 있잖아. 거긴 거의 합격 아니야? 차라리 잘됐어. 이참에 능력 알아주는 곳으로 다녀.”

“저기.. 그게 말이지.”


뜸 들이는 내 모습에 아내는 설마 하는 표정이다.


“잘 안 됐어.”

“뭐야! 거의 합격인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 우리 어떡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 같더니 다시 또 언성을 높인다.


“하아. 지은아. 이게 전부 내 탓은 아니잖아. 나도 열심히 해보려고 했다고. 근데 안 뽑힌 걸 어떡해. 다른 데 찾아볼게.”

“그러다 못 구하면 어떡할 건데? 나라도 빨리 복직해야 하는 거 아냐?”

“넌 내가 돈으로 보여?”

“그럼 당장 돈 없으면 우리 뭐 먹고살 건데? 대책은 있어야 하잖아. 싸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그렇지. 오빠는 왜 맨날 내가 말만 하면 다 내 탓인 거 마냥.”

“걱정 마! 취업하면 되잖아. 나도 우리 가족 굶기지 않아.”

“어떡할 건데?”

“이력서부터 써야지.”

“그다음엔?”

“찾아봐야지. 너 근데 지금 뭐 하냐?”

“미리 좀 해놓지 게을러 빠져서 진짜.”

“야! 그만해라?”

“뭐? 야? 지금 저번처럼 폭언하려고?” “


지난번 다툼에서 살짝 언성을 높였더니 그 뒤로는 폭언한다고 자꾸 얘기한다.


“그래 나도 얘기 좀 할게. 맨날 집에 와서 힘들다고 먹고 자기 바빴지 뭐 열심히 하기를 했어? 아기를 제대로 본 적도 없잖아. 맨날 내가 다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주말에도 동호회 가야 한다며 나간다고 할 때 언제 내가 말린 적 있어? 육아하면서 내가 한 번도 자유시간 가져본 적이 없다고. 오빠가 그런 내 삶을 알아? 아냐고!”

“하.. 그 얘기를 왜 지금 해. 나도 미안하다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앞으로 잘할게.”

“맨날 앞으로 잘한다고 하고 하는 게 없잖아. 일도 똑같아. 말만 하는 거야 오빠는. 나 복직 앞당겨야 하면 말해줘. 미리 준비해야 한단 말이야.”

“후우.. 진정하고 나도 좀 시도해 보고 얘기할게.”



구직 활동을 한지도 어느새 3주가 지나간다. 이력서를 다시 쓰고 바꾸기를 몇 번을 한 건지. 그동안 면접은 2군데 정도 진행했다. 그중 한 곳은 기술면접까지 갔지만 결국 물어보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조차 못하고 탈락했다. 위기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벌써 동료 중에서는 이직 결정이 난 사람이 꽤나 있는 편이다. 그중에는 션도 있었다. 한 명 한 명 각자의 살길을 찾아가는데 나만 남을 거 같은 두려움과 불안감이 목을 조여 오는 느낌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불안감이 느껴졌는지 다음 달부터 복직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어린 아기일 뿐인데 벌써부터 남의 손에서 길러질 희수 생각에 마음이 아파온다.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김선호 님 되시나요?”

“네 맞습니다 실례지만 어디신가요.”


지원했던 회사 중 한 곳의 전화였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여러 군데 이력서 보내던 회사 중의 하나인 거 같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면접을 보기로 하고 일정을 잡았다. 전화를 끊고 회사 이름으로 조사를 해본다. 직원 수 6명의 작은 회사였다. 월급은 줄 수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검색해 보는데 딱히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몰라. 일단 면접 보러 가보면 알게 되겠지.’



면접은 회사가 입점해 있는 공유 오피스의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면접에는 회사의 전 직원 여섯 명이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나이차이가 꽤나 날 거 같은 구성원이었다.


“선호님. 오늘 면접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회사는 구성원과의 결이 중요해 만장일치로 통과해야 채용을 진행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생소하시겠지만 저희의 문화인만큼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에 괜찮습니다.”


면접은 나쁘지 않았다. 다 같이 만장일치로 사람을 뽑는다고 한 것 치고는 모든 질문은 대표의 입에서 나오는 게 조금 걸리는 정도랄까? 다른 직원들의 표정을 살펴보는데 다들 피곤해 보였다. 아마 내 얼굴도 저렇게 피곤하게 보일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씁쓸해진다.


“면접은 여기까지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호님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네? 아.. 네네.”

“잠시 로비에서 10분 정도만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회의실 바깥으로 나오자 대표가 일어나 직원들에게 얘기를 꺼내는 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다른 직원들은 그다지 의욕은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기분이 이상해 잠시 로비를 돌며 이것저것 꾸며져 있는 걸 살펴봤다.


“선호님.”


5분도 채 되지 않은 거 같은데 대표가 내게로 다가온다.


“잠깐 얘기 좀 나누실까요.”

“네에.”

“오늘 저희 회사는 만장일치로 선호님을 모시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뭐 이렇게 급하게 결정을..’


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뒤로 하고 대화를 지속해서 나눈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

“아.. 제가 다음 달 까지는 회사에서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데 좀 더 앞당기면 3주 뒤부터는 가능할 거 같습니다.”

“조금 더 앞당기시긴 어려우실까요? 저희가 할 일이 많다 보니..”

“음. 일단 저도 빨리 출근하고 싶지만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보니.”

“알겠습니다. 구체적인 오퍼레터는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혹시 희망하는 연봉에 대한 선이 있으신가요? 양보할 수 없는 선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받던 금액만큼은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시겠지만 저희가 좀 작은 회사라서.. 혹시 필요하다면 지분 비율을 조절해서 연봉을 조절할 의향도 있으신가요?”

“연봉을 많이 줄여야 하는 상황일까요?”

“아무래도 저희 직원 분 중에서는 가장 높은 연봉을 받게 되실 거라. 최대한 맞출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궁금하신 내용은 언제든 편하게 얘기 주세요.”

“네.”


면접을 보자마자 합격했다. 얼떨떨하긴 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있다는 생각에 살짝 잃어버렸던 자신감도 생겨났다. 그래도 왠지 섣부르게 이직을 결정해서는 안될 것 같아 고민이 된다. 워낙 작은 회사기도 하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걱정이 된다. 사업 아이템은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는다.


[지은아. 회사 하나 합격했어.]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구조 조정되는 날 까지는 눈치 보지 않고 면접을 보러 다닐 생각이다. 회사에서도 마지막으로 제공해 주는 복지이니 만큼 최대한 활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상의 후 일단 보험 삼아 합격한 회사에 출근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물론 연봉에 대해서는 한 차례 더 조정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줄어들게 되고 대신 지분에 대한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면접을 진행했지만 1달 반이 지나도록 불합격 통보만 받았다. 이대로면 결국 갈 곳은 강제로 정해지는 게 아닌가. 최대한 출근하는 날을 뒤로 미뤘지만 이제는 결정을 할 때가 된 거 같다.


“안녕하세요 선호님. 정리는 잘 돼 가고 있으신가요?”

“네 대표님 덕분에 인수인계도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해도 괜찮은데 어떠신가요?”

“기다리던 답입니다! 마지막으로 최종 연봉을 정해야 하니 한 번 더 자리를 가질 수 있으신가요? 저희가 해야 하는 업무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드리고 앞으로 맡으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것도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시는지 짧게나마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언제가 괜찮으신가요?”

“선호님 괜찮으신 날 연락 주시고 방문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내일 오후 4시 정도에 찾아봬도 괜찮을까요?”

“네 그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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