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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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나 혼자 해결하라 이거야? 공동이라는 생각도 안 하는구나.’


혼자 침실로 들어가 버린 아내가 원망스러워 방문을 쏘아본다. 하지만 그런다고 아내가 나올 리 없다. 철저하게 고립된 느낌.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돈도 내가 벌어오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건지. 고작 집에서 애나 보는 거 아니야? 불만이 점점 커지며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갈 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래. 내가 못하는 걸 해주는 것만 해도 크긴 하지. 그래도 이런 식은 좀..’


이해도 가면서 한편으로는 서러웠다. 나뿐만 아니라 회사 동료 중에도 비슷한 처지는 많았다. 가끔 회식자리에서 대화 나눌 때면 비슷한 고민으로 하나가 되곤 했다. 그때뿐이긴 했지만 심심한 위로가 되었다.


‘이직을 하긴 해야겠지. 무슨 공부를 좀 해야 할까.’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도 분명 있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팀장급이라고 했으니 기본적인 기대치가 있겠지. 책임지기 싫어서 진급하는 건 관심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맡게 되면 잘할 수는 있을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점점 아파온다. 차라리 잠이나 잘까. 하지만 방금 전에 들어간 아내의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술을 더 마셔야겠다. 평소처럼 가벼운 예능이나 볼 생각이었는데 괜히 걱정이 생겨 보지도 않던 기술 관련 주제의 유튜브를 검색해 본다. 과연 팀장으로 입사하면 권한은 어디까지 줄까 싶어 팀빌딩에 관한 내용도 봤다. 하지만 내용에 집중이 잘 되진 않는다. 평소에 미리 관심도 가져볼걸이라며 괜히 아쉬워한다. 술을 마셔서인지 좋아하지 않는 내용이라 그런지 영상이 지겹다. 남은 소주의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고 자러 들어간다. 아내는 바닥에서 아이와 함께 누워서 자고 있었다. 문득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보는데 눈물이 난다.


‘내가 잘해야지. 잘해야 해.’


“왜.. 왜 그래?”

“어.. 아니야. 자야지.”

“뭐야. 울어?”

“아니야. 아까 미안해.”

“뭐가?”

“그냥 다..”

“잠이나 자. 내일 얘기하자.”

“응.”

“고생했어.”

“어?”


무미건조하지만 아내의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에 서러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알람이 울린다. 여느 날처럼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평소처럼 출근 후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 올라갔을 때 문이 닫혀 있었다.


“뭐야. 식당 운영안해?”


나처럼 아침을 챙겨 먹으러 먼저 온 동료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식당 앞에는 인쇄된 종이가 붙어 있다.


[오늘 아침 회의 준비로 인해 아침 식사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대회의실에 자리가 모자를 수 있어 식당까지 이용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미리 말해줬어야지. 괜히 일찍 왔어.’


배가 고프니까 괜히 신경질이 난다. 물론 식사가 아니어도 아침 출근은 막히는 게 싫어 같은 시간에 오긴 했을 거다.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를 켜고 이것저것 찾아본다.


‘이력서도 수정해야 하고. 공부도 하긴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하려나.’


“제프 하이요. 역시 일찍 왔네요.”


션이 인사를 건넨다. 고개로 인사를 대신한다.


“혹시 오늘 밤이나 내일 밤 중에 편한 날 있어요?”

“아.. 미팅 잡았어요?”

“네. 빠를수록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편하게 보면 될 거예요.”


‘대표와 만나는데 어떻게 편하게 본단 말이야.’


“이력서도 수정을 못했는데..”

“괜찮아요. 그런 거야 뭐 천천히.”

“근데 그 회사에서 제가 어떤 일 하는지는 알아요?”

“제가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 얘기해 놨어요. 작은 회사는 사람 구하기 힘들잖아요. 듣자마자 좋아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팀장 역할은 안 해봤는데 조금 무섭긴 하네요.”

“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도 이직하는 게 무섭긴 한데 아는 사람이랑 같이 일하면 마음도 편하고 힘든 것도 같이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겠죠? 음.. 사실 마음의 준비가 안되긴 했는데 그래도 빨리 보는 게 나을 거 같으니. 그럼 오늘 볼게요. 어차피 저녁때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 잘됐네요. 제가 그럼 얘기해 놓을게요. 시간이랑 장소는 잡히는 대로 알려줄게요. 잘 생각했어요.”


‘잘한 걸까? 뭐 만나봐야 알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10시가 되어간다. 하나둘씩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이동한다. 앞에 나서는 건 질색이라 식당으로 이동해 화면으로 보고 듣는 게 나을 거 같다.



인사팀장이 회의의 목적과 오늘 얘기할 주제에 대해 언급을 하고 나서 새로운 경영진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먼저 이번에 새로 부임하게 될 CEO 피터입니다. 글로벌 회사부터 작은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곳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회사를 키운 경력이 있는 분입니다.”


‘피터. 한국이름으로 인터넷에 검색부터 해봐야지.’


이름을 검색하자 인물사전에 바로 뜬다. 그만큼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겠지. 다녔던 회사 이름만으로도 괜히 위축된다. 피터는 30분 정도 연설을 시작했다. 차갑게 쳐다보는 눈빛에 위축되지 않고 차분하게 얘기하는 모습에서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슬슬 자기 자랑에 가까운 연설을 듣고 있자니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일단 이 얘기가 끝나야 본격적으로 Q&A를 가지며 회사의 방향에 대해 알게 될 텐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지겨운지 딴청을 피우고 있다.


“제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실 부분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제가 새로 부임해서 할 일은 당연하게도 구조 조정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회사의 현실이라 욕먹을 각오를 하고 얘기하겠습니다. 현재 회사의 상황을 어디까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투자금은 바닥나있고 이대로 문을 닫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입니다. 자 제가 준비한 자료를 한 번 봐주세요.”


6년 동안 회사가 커온 규모와 매출액 그리고 적자 현황에 대한 신랄한 내용이었다.


“간단하게 수치화하긴 했지만 사실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공개하기는 좀 그렇지만 세세하게 파악하다 보니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동안 회사는 규모의 성장을 추구하면서 무분별하게 인력을 뽑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인재도 많이 데려왔지만 그에 걸맞은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실 겁니다. 지금 당장 인력을 감축시키면 회사 운영이 되기는 하는 걸까라고. 물론 쉽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 남은 사람들도 떠난 자리에 대한 공백을 메우는 일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전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의 사태는 모두의 책임입니다. 누구 한 명의 잘잘못이 아닌 전체의 책임이고 오늘의 자리는 그런 첫 단추를 다 같이 잘 끼워보자는 의미에서 만든 자리임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터의 얘기는 조용하게 있는 나 같은 성향의 사람까지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모두의 책임이니 군말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 앉아서 듣고 있던 사람들도 눈에서 안광을 내뿜으며 화면을 노려보고 있다. 그 뒤로도 20분 정도를 더 떠들던 피터가 얘기를 끝마치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 되었다. 인사팀장이 다시 앞으로 나오고 피터는 뒤에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자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한정적인 관계로 오늘은 10가지 정도의 질문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남은 시간이 있으니 충분히 오늘 같은 자리를 마련해 지속적으로 입장을 조율해 보려고 합니다. 네 저쪽 손드신 분. 마이크 좀 가져다주시겠습니까?”

“안녕하세요. 운영팀에 있는 찰스라고 합니다. 오늘 피터의 얘기를 들어보니 여기 모여있는 모두를 질책하는 걸로 느껴졌습니다. 너희가 잘못해서 이런 결과가 생겼으니 회사에서 정하는 결정을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그리고 그런 의미가 맞다면 어떤 처우를 고려 중인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십시오.”


인사팀장이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얘기를 이어간다.


“이 문제는 피터가 아닌 제가 얘기드리겠습니다. 일단 오늘 자리는 결정이 끝났다에 대한 걸 공표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다만 새로 부임할 피터에 대한 소개 및 앞으로 회사 운영 방안에 있어 개선을 해야 할 큰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다 같이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인지를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어떻게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공동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 회사는 인력에 대한 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그 부분에서 협조를 구하고자 하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신 모든 건 다 같이 논의하고 협의된 내용에 따라 진행될 예정이라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정해지는 내용을 알려드릴 예정이니 이 점 양해부탁드리겠습니다.”


인사팀장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말이 터져 나왔다. 욕설에 가까운 말이 나오기도 하고 어수선해지기 시작하자 앉아 있는 피터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자자. 여러분. 저희가 오늘 싸우려고 모인 자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시간을 보내기엔 아까운데 제발 정숙하시고 취지에 맞는 질문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불만에 대해서는 당연히 들어야 되는 게 맞지만 오늘의 자리는 좀 더 깊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저 쪽 손드신 분 발언해 주십시오.”

“주문서비스 셀에서 일하는 재규어입니다. 오늘 피터가 얘기한 내용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당연히 많은 분들께서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회사의 무리한 요구를 처리하려고 많은 분들이 야근과 주말출근을 불사하며 해온 게 있는데 그런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비슷한 감정일 거 같습니다. 물론 회사의 경영악화라는 건 다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나 말을 함에 있어서는 조금 더 신중하게 해 주셨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얼마 전에 황당한 공지를 받았습니다. 지금 있는 인력의 50%가 구조조정대상이라는 내용이었죠. 그리고 하루 사이에 갑작스럽게 해당 공지내용은 지워졌습니다. 불안감을 만든 것도 회사고 숨기는 것도 회사인데 당연히 알 권리가 있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지워졌던 내용 중에 두 달 치 월급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갑자기 회사를 나가 이직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물론 능력이 뛰어나 바로 이직할 수 있는 분도 있겠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모든 걸 다 얘기하지 못할 거고 하지도 않겠지만 구조조정 보상안에 대해서는 좀 더 현실감과 책임감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얘기드립니다.”


할 말을 대신한 재규어의 발언에 속이 시원해졌다.


”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인사팀장은 잠시 피터에게 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황급히 마이크를 든다. 얘기를 나눈 피터의 표정에서 기분 나쁜 게 티가 날 정도였다.


“오늘은 예정됐던 시간을 많이 벗어난 관계로 여기까지만 질답을 나누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해하시는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숨김없이..”

“뭐야! 얘기를 하다가 그만두면 어떡해요.”


저마다 불만을 드러내며 웅성거리고 화난 듯이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당황한 듯 인사팀장은 마이크를 든 채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피터는 자리가 어수선해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대회의실을 벗어난다.


“와.. 도망간다.”

“이게 회사냐? TV에서 보던 정치인이나 재벌들 하던 대로 그대로네.”


다들 울분을 토해가며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내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자자. 진정하세요. 이렇게 하는 게 결코 도움 되는 게 없습니다. 다음번 회의는 좀 더 많은 내용을 준비해서 빠른 시일 내에 만들겠습니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강도 높은 질문이 계속되리라 생각했는지 새로 부임할 CEO는 책임감 없이 바로 도망쳐 버렸다. 분노가 휩쓸며 모두가 회사에 반기를 들 것 같던 기세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결국 힘없는 개인이 모여봤자 사측의 무시에 별다른 대응할 방법은 없었다.


“더러워서 이직하고 만다.”

“후.. 한 번에 이 많은 사람이 어디로 다 이직하냐고? 갈 데는 있어?”

“그냥 하는 말이지.. 갑갑해.”


하나둘씩 회의실과 식당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지쳐 보인다. 당장 오늘에라도 사표를 쓸 것처럼 화가 잔뜩 나 있는 사람도 보인다. 별 기대 없이 참석한 회의는 생각보다도 별 볼일 없이 끝났다.


‘과연 어떤 퇴사 조건을 가져오려나?’


구조 조정은 애써 무시한다고 생기지 않을 그런 환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이라는 걸 깨닫자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현실적인 제안에 관심이 쏠렸다.


‘퇴사는 해야겠어.’


오늘 만남에 좀 더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생겼다.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벌써부터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그 회사 대표가 맘에 안 들어해서 이직을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진다. 분명 선택권은 나한테 있다고 생각했건만 현실에서는 어딘가의 간택을 당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다. 션에게 눈짓을 하자 마음 편하게 만나고 오라며 응원을 한다.


‘션은 내 어떤 점이 괜찮아 보여서 추천한 걸까? 아니면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그냥 아는 사람 여러 사람 중에 찔러본 건 아니었을까?’


일단 그 모든 궁금증도 결국 오늘 만남을 가져보고 나면 해결이 되리라. 장소는 일단 회사 근처 스타벅스로 잡혀서 먼저 카페로 가기로 했다. 카페에 도착해 건네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자 구석에 있던 남자가 손을 번쩍 든다.


‘아. 저 사람이구나.’


긴장감이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몸이 약간 떨리기 시작한다. 애써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침착하게 행동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안녕하세요. 김선호 님. 션에게는 얘기 들었어요.”

“안녕하세요. 대표님.”

“하하. 그냥 편하게 지누라고 불러주세요. 혹시 선호님도 사용하시는 닉네임 갖고 있으신가요?”

“아. 네에. 전 제프라고 불러주세요.”

“반갑습니다 제프. 그러고 보니 저희 회사에도 제프가 이미 있는데 하하. 나중에 둘 중에 한 명이 바꿔야 할 수도 있겠네요.”


지누는 젊어 보였다. 나이를 가늠하긴 힘들지만 30대 초반 느낌에 깔끔하게 관리된 외모였다. 그에 반해 내 모습은 꽤나 신경 쓴다고 썼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식사를 먼저 갔어야 하는데 예약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나마 가장 빠른 예약이 1시간 30분 뒤라서 그러면 조금 대화를 먼저 나누면 좋겠다 싶어 카페로 먼저 왔는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긴장이 좀 되시겠지만 맘 편히 얘기나 나눈다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이직에 대한 고민은 오랜만에 하다 보니 많이 낯설긴 하네요.”

“그동안 이직을 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으셨나요?”


꽤나 단도직입적이다.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사람이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거 같습니다. 좀 더 사회화된 느낌으로 얘기를 먼저 드리면 전 가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간 많은 동료들이 꿈과 비전을 좇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생각보다 자리 잡고 살아가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지금 다니는 회사가 평생직장 개념은 당연히 아니지만 현재 다니기에 나쁜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어느 정도는 보장해 주다 보니 집중해서 일하기에 좋았습니다. 게다가 전 지금 회사의 초창기 시절부터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함께 있다 보니 저도 모르는 애정이 많이 남아 있었나 봅니다.”

“그러셨군요. 다른 이유는 어떤 거였을까요?”


잠깐의 망설임을 가진 후 다시 말을 이어간다.


“두 번째는 조금 고민이 되는데 솔직히 얘기를 드리겠습니다. 편안함에 취해 있었습니다. 편안함은 얼핏 보면 좋지만 독과 같은 중독성이 있어서 원래 꾸던 꿈이나 하고 싶던 일에 대해 망각을 하게 만드는 거 같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편안함에 길들여져서 제가 추구하는 바에 대한 생각보다는 회사의 방향대로만 움직이고 생각해 왔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자리에 나온 게 이해가 잘 안 가실 수는 있겠지만 제게도 잊고 있던 개발자로서의 욕심이란 게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회사에서 팀장 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도 책임지기 싫고 편하게 다니고 싶어 매번 고사만 했었는데 지금 와서 그런 제 모습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팀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그동안의 긴 커리어와 경험을 활용해 이제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알 수 없는 지누의 표정이었다. 그 모습 때문에 침을 꼴딱 삼키며 그를 쳐다봤다.


“음.. 저희는 솔직히 보장드릴 수 있는 게 많은 회사는 아닙니다. 다니시는 회사에 비해 규모도 작고 현재는 복지라는 것도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급여도 생각하시는 것과 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최대한 희망하시는 급여는 맞춰드릴 생각입니다. 돈부터 얘기를 꺼낸 점은 죄송하지만 그래도 일단 이직은 현실이다 보니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저 그런 영세업체는 아닙니다. 다소 제 자랑이긴 하지만 전 지금 회사를 3년 안에 키울 자신이 있습니다. 단순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최근 투자도 크게 받아 놓은 상태라 무리만 하지 않고 계획한 대로 움직인다면 충분히 성장곡선을 그릴 수 있을 거라 자신합니다. 회사에 대한 포부는 이 정도로 얘기드리고 저희가 제프를 원하는 이유는 회사에 좋은 인재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조직이라는 게 유기적인 생물체와도 같아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데 그중에서 중심을 잡아가며 보유한 기술과 경험을 나눠줄 시니어 엔지니어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잠시 본모습만으로 제프나 저나 서로가 100% 맞는다고 자신하기는 힘들겠지만 일단 얘기해 주시는 모습에서 두 가지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제가 너무 제 얘기만 하고 있네요. 하하.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는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 솔직하게 얘기해 주셔서 오히려 집중도 되고 더 좋습니다.”

“조금만 더 그럼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제프가 저희 회사로 오셔서 분명 좋은 성과를 낼 수도 혹은 반대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또한 뚜껑을 열어봐야지 아는 일이겠죠. 제가 처음에 앓는 소리로 시작했는데 제프가 성과를 내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지금 다니는 곳보다 훨씬 좋은 혜택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물론 많이 드리려는 만큼 일에 대한 강도는 높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3년 동안의 성장이 이뤄지려면 여러 구성원의 노력과 희생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인재를 만나러 다니는 것도 어쩌면 회사의 미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나는 동안 제프도 가감 없이 궁금하거나 어필해 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편히 얘기 주세요. 조직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수직구조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전 그래도 모든 구성원이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에 대해 귀담아듣지 못한다면 제 능력이 부족한 것이니 그런 부분은 어떻게든 저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겠죠.”


지누는 말하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40분이 넘도록 이야기가 멈추질 않는다. 물론 말주변이 그렇게 좋지 않은 난 주로 들었고 가끔 단답형의 대답을 할 뿐이다. 그래도 확실한 건 지누가 운영하는 회사에 자본금이 없는 편이 아니라는 것이고 부모님도 나름 잘 사는 측에 속한다는 것이다. 많이 만나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편한 타입의 대표라 일하기에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성과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따질 거 같다. 업무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초기 형태의 작은 회사로 간다면 당연히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직이 결정된다면 물리적인 나이는 내가 가장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성원들이 젊은 층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나이야 뭐..’ 그래도 나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많이 보내는 거 같다.


“하하. 시간이 어느새 예약 시간이 되었네요. 회 좋아하세요? 미리 잡기 전에 물어봤어야 했는데.”

“없어서 못 먹죠. 예약을 해야 할 정도면 유명한 곳인가 보네요.”

“엄청나게 유명하다고는 못하겠는데 예전에 몇 번 미팅 때문에 갔던 참치집이 있거든요. 그래도 가격대비해서 질이 괜찮고 따로 룸에서 먹을 수 있어서 조용하게 대화나누기도 좋을 거 같아서 선택했어요. 음식점에서는 제가 좀 조용히 있고 제프의 얘기를 들을게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전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더 많아서 얘기해 주시는 내용이 재밌고 신선하게 느껴져요. 궁금한 점이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시고 회사나 지누에 대한 이야기는 그냥 편하게 계속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가실까요?”

“네 좋습니다.”


도착한 참치집은 생각보다 럭셔리했다. 처음 들어가 보는 고급스러운 곳이라 당황하는데 최대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편하게 하세요.”




얼굴에 티가 났나? 지누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하하. 티가 났나 봐요. 이런데 올 일이 없대서.”


“한번 드셔 보시면 괜찮다고 느낄 거예요. 저도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만 지금처럼 오는 곳이에요. 그만큼 오늘이 중요한 자리라는 뜻인 거죠.”




‘말 참 잘하네.’




지누의 말에 기분이 좋아지며 정말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약하신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버건디 색상의 꽃무늬 패턴이 있는 원피스를 입은 종업원의 안내를 따라 이동한다. 이동하는 동안 가게의 인테리어를 살펴보니 최대한 고급스럽게 만드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런 대접을 받다니. 지누에게 꼭 눈도장을 찍어야겠어. 할 수 있다!’




이직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만나보고 나니 절실해지기 시작하며 대등한 관계에서 관계가 역전됨을 느낀다. 이제부터는 무조건 잘 보일 차례가 된 것이다.




“들어가 계시면 준비되는 대로 모시겠습니다.”


“앉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이제는 제프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제프는 일을 왜 하시나요?”


“음.. 솔직히 말하면 월급을 벌어야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발하는 일은 제가 어릴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고 하다 보니 재밌기도 했습니다.”


“전 부자되고 싶어서 일합니다. 제프는 월급만 받는 삶에 만족하시나요?”


“네? 아. 부자 되면 좋죠.”




‘갑자기 무슨 말이지?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거야.’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은 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은 다 같이 부자가 되는 거예요. 물론 가장 큰 부를 가지는 건 당연히 제가 되겠지만 저를 돕는 동료도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부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제프에게 제안하는 건 월급쟁이의 삶을 벗어나 부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드린 겁니다.”


“부자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진 못했습니다. 대표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신다면 저로서는 정말 다니고 싶은 꿈의 직장이 될 거 같습니다. 물론 합격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요.”


“제가 알기로는 아직 리드의 역할을 해본 적은 없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만약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 어떠실 거 같으세요?”


“네 맞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직 그렇게 큰 직책을 맡아 이끌어 본 경험이 없습니다. 물론 갑자기 대단히 뛰어난 리더십을 가지고 이끌어 갈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마음속에서 늘 새롭게 서비스를 처음부터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라면 전 분명 그렇게 만들어 낼 자신은 있습니다. 다만 업무적인 영역에서의 확답이고 리더십에 있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지금 같은 제안을 무조건 피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나이도 그렇고 경험을 한번 잘 살려서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회를 꼭 가져보고 싶습니다.”




지누는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혹시 말실수를 한 건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 문이 열리고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살았다.’




잠시였지만 시간이 너무나 더디게 흘러가며 어색함까지 느껴져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면접을 통과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져간다.




“드실까요.”


“네.”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도 불안함 마음 때문에 쉽게 젓가락질을 하기가 힘들다. 겨우 용기를 내 눈앞에 있는 죽부터 한입 맛본다. 분명 엄청난 맛인 거 같은데 이상하게 맛을 잘 못 느끼겠다. 아무래도 긴장 때문이겠지.




“받고 싶은 연봉이 있습니까? 편하게 얘기 주세요.”




순간 먹던 죽을 뱉을 뻔했다.




‘이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질문이냐고!’




“연봉. 중요하죠. 지금 받는 연봉보다 올려서 받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동결 정도로만 이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머지는 서로 간에 신뢰가 쌓여야 하니 그때 가서 분명 제 가치만큼 올려주시리라 믿습니다.”


“만약 제가 나중에 딴 소리를 할 수도 있을 텐데 저를 믿으시나요?”


“믿습니다. 오늘 만나보고 나서 느꼈는데 강한 신뢰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분명 회사에 도움을 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최선을 다해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최선보다는 잘하는 걸 원합니다. 혹시 저한테 궁금하신 거 있으신가요?”


“저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지누는 내 질문에 다시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 뛰어난 사람보다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인재는 한 트럭으로 갖다 줘도 뽑을 생각이 없어요. 특히 저와 생각을 공유하고 운영을 같이하는 사람은 결이 맞는지가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션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제프에게 관심이 갔습니다. 일단 만나봐야 제가 생각하는 결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오늘 만나보길 잘해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긍정의 신호인가?’




이후로도 30분 이상의 대화를 나눴다. 음식은 차려져 있었지만 사실 거의 즐기지는 못했다. 분명 비싼 코스요리였을 텐데 먹지도 못하고 버려질 걸 생각하니 아쉬웠지만 오늘은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으니까라며 애써 생각을 비우려고 했다.




“아이고. 이거 얘기가 길어지다 보니 음식이 다 식었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일과 관련되면 말이 많아져서. 이게 문제예요.”


“아니에요 대표님. 저도 오늘 이렇게 만나 뵙고 대화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실 뭐 먹으려고 만난 자리는 아니었으니까요.”


“이해해 주셔서 다행이네요. 그럼 아쉽지만 오늘 만남은 여기에서 끝내도록 할까요?”


“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오늘 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션을 통해 전달드릴게요. 조심히 가세요.”


“넵.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지누와 헤어져서 가게 밖으로 나오자 겨우 숨통이 트이며 살 것 같았다.




“후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정말 오랜만에 긴장 속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나니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났는지 겨드랑이와 함께 젖어 있어서 축축한 느낌이다. 뭔가 오늘 실수한 건 없었는지 지누와 만났던 상황에 대해 곱씹어 본다. 대답을 좀 더 잘하지 못한 거 같아 아쉬움이 남지만 어쩌겠나. 그래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본다. 션에게 만남이 끝났다는 알림 정도는 보내야 할 거 같다.




[오늘 자리 주선해 줘서 고마워요 션. 잘되면 제가 한턱 쏠게요 ㅎㅎ]




잠시 뒤 답변이 왔다.




[어땠어요? 합격할 거 같아요?]


[글쎄.. 잘 모르겠어요. 표정만 보고 알아채기가 힘들어서. 포커페이스 던데요.]


[잘 되실 거예요. 어디서 제프만 한 사람 뽑겠어요 ㅎㅎ 넘 걱정 마세요. 파이팅!]


[고마워요. 좋은 밤 보내요.]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몸에 진이 빠져 이런 날은 택시라도 타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거리가 먼 만큼 나올 금액 생각에 생각을 접는다. 대중교통에서 부딪힐 사람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그래도 오늘 뭐 그렇게 실수한 건 없지 않나? 근데 부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는 건 뭐지. 지분이라도 줄 생각인 건가?’




***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12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아내가 자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행여 아기가 깰지 모르니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집안에 들어간다.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아내는 거실에 간접등을 켜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늦게 오네.”


“응. 오늘 늦을 거라고 했잖아.”


“어땠어?”


“글쎄. 잘되면 좋겠는데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회사는 구조조정 하는 거야?”


“거의 확정이지 않을까 싶어. 오늘 전체 미팅을 하긴 했는데 새로 부임하는 CEO도 얘기하는 거 보니..”


“휴우.. 큰일이다. 자기가 회사 그만두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당장 돈이 안 들어오면 생활이 안될 텐데.”


“지은아. 오빠가 설마 놀겠어? 어떻게든 취직해 볼 테니 너무 걱정 마. 나도 경력이 꽤 있다고. 오늘도 봐봐. 면접 보자고 먼저 제안이 오잖아. 내가 그동안 이직을 하려고 안 해서 그렇지 가려면 갈 곳이 없진 않다고.”


“그래도.. 나 마음이 불안해. 지금 회사에 어떻게든 버티고 다니면 안 돼? 복지도 좋고 불만도 없잖아.”


“그게 내 맘대로 돼야 말이지.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어. 하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동안 다녔던 퇴직금도 적지는 않으니까 잠시 생활하는 건 괜찮을 거야.”


“까딱하면 금방 사라져 그런 돈은. 암튼 난 불안해. 물론 오빠가 힘들게 일하는 거 알아. 알지만 혹시라도 잘못되면.. 아니다 미안해. 나도 육아하다 보니 불안감이 너무 커졌어. 지치기도 하고. 나중에 복직하면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돼. 나도 요즘 너무 힘들어.”


“이해해. 조금만 힘내보자. 어떻게든 이 시기가 지나가겠지. 그때까지 힘내자. 내가 잘해볼게.”


“알겠어. 구조조정 때 별다른 조건은 없대?”


“아직 미정인가 봐. 처음엔 두 달 치 월급 얘기하긴 하던데..”


“뭐? 겨우 두 달? 와 장난하나.”


“내부 직원들 반발이 심했어. 아무리 우리 회사에 노조가 없다 쳐도 이건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고. 다들 길길이 날뛰고 그래서 그런지 처음 조건은 쏙 들어가 버렸어.”


“왠지 하는 꼬락서니가 별로 기대하면 안 될 거 같은데. 불길하다.”




‘사실 나도 그래.’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는 일.




“구체적인 조건을 발표하겠지. 그래도 오늘 만났던 다른 회사 대표는 생각보다 괜찮더라. 젊은 나이인데 제법 카리스마도 있고 직원들에게 베풀 생각도 있나 보더라고.”


“직원한테 베푼다는 게 무슨 말이야?”


“뭐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오늘 대화 나눌 때 갑자기 나보고 부자 되고 싶냐는 얘기를 하더라고. 벙쪄서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한참 들었는데 회사가 커지면 발생하는 이익을 혼자만 먹지 않고 성과만큼 배분해 주겠다는 의미였어. 아마 지분이나 스톡옵션 행사할 수 있게 주려는 게 아닐까?”


“모르지 뭐. 계약서에 쓰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잖아 그치? 그래도 오빠 맘에 들었다면 뭐 괜찮겠네. 연봉 얘기도 했어?”


“어.. 하긴 했는데.”


“하긴 했는데?”


“거기가 작은 회사잖아. 그래서 일단 동결만 돼도 이직한다고 했어.”


“이직하면서 올리지도 못해? 갑갑해.”




아내의 말에 갑자기 다시 또 화가 올라오려 한다. 하지만 좀 더 참고 버텨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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