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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아침 식사를 먹기 위해 오늘도 일찍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서 집까지는 평균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라 일찍 나오면 교통지옥을 조금 피할 수 있는 것도 나름 편하다. 아무것도 한 거 없이 지하철만 두 번 갈아탔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다. 우연히 앉을자리가 생겨 잽싸게 앉으러 갔는데 어떤 여자가 잽싸게 뛰어 와서 간발의 차로 자리에 먼저 앉아 버렸다. 어이가 없어서 잠시 쳐다봤는데 하필이면 내 다리가 그 여자의 다리에 좀 닿았었나 보다.
”이 새끼가! 어디서 몸을 함부로 더듬어!”
”어? 아니에요. 아닙니다!”
’뭐라는 거야. 제발 입 좀 닥쳐.’
속마음과 달리 입에서는 계속 사과의 말을 쏟아냈다. 한참 동안 굽신거리자 겨우 화가 풀렸다는 듯 여자의 표정이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흠흠. 앞으로도 조심하세요. 제가 좀 예민했었네요.”
”감사합니다.”
새빨개진 얼굴을 땅에 처박듯이 한채 다음 칸으로 이동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싶어 다소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가만 생각해 보니 열받는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래? 지가 뛰어와서 부딪쳐 놓고 후.’
아무튼 기분 나쁜 일이기도 하면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어서일까 오늘따라 더 허기지는 느낌이다.
’오늘은 가자마자 라면부터 하나 때리고 밥을 먹어야겠어.’
지금의 회사로 이직한 지는 어느새 6년이 지났다. 처음엔 작은 회사여서 사람도 많지 않았는데 어느샌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법 그럴싸한 사옥도 생기고 복지도 꽤나 좋아졌다. 아침 식사도 3가지 종류 중에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데 3개를 몽땅 먹어도 상관이 없어서 더 좋았다. 직원 사이에서는 불만도 조금 있었는데 아침을 먹으려면 출근 전에 나와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일찍 나오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복지였다. 다른 직원의 불만이 나올 때마다 아침 식사 제공이 사라질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그렇게 먹고 싶으면 좀 일찍 나오면 될 텐데. 게을러 빠져서 쯧.’
일단 라면을 먹고 나니 입맛이 다시 돌기 시작한다. 역시 라면부터 먹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이제 밥을 좀 먹어봐야겠는데 어디 메뉴가. 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찬이네. 아쉽다. 아쉬운 대로 오늘은 과일이랑 요구르트 소스를 듬뿍 올린 샐러드라도 먹어야겠다. 샐러드를 먹으면 이상한 게 먹으면서도 배가 고프다. 벌써부터 점심 먹을 생각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좋은 아침이에요.”
샐러드를 입에 쑤셔 넣던 중 팀 동료가 다가왔다. 민망한 모습을 감추려고 황급히 입을 가리고 우걱우걱 샐러드를 빨리 삼킨다.
”네. 일찍 오셨네요.”
”원래는 잠을 택하는데 오늘은 좀 일찍 깨서요. 제프 님은 언제나 부지런하시네요. 볼 때마다 아침 항상 먹고 있던데.”
”집이 멀다 보니 일찍 나오고 있거든요. 겸사겸사 아침도 먹고 그런 거죠.”
동료는 유심히 내가 먹은 라면 그릇도 한 번 살펴본다.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이 먹어 돼지처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부끄러워진다.
”아.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어요. 어제 술을 좀 마셨더니 하하.”
”아 네네.”
묻지도 않은 말을 괜히 먼저 꺼냈다.
”전 먼저 일어날게요.”
”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이 있는 층까지 올라가려고 눌러놨는데 출근 시간이 겹쳐서 도저히 탈 수가 없는 상황이다. 식당에서 사무실 까지는 12층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벌서 짜증이 난다. 그래도 걸어 올라가는 게 훨씬 빠를 거라 생각하니 방법이 없다.
”헥헥. 와.. 겁나 힘들다.”
여름이라 덥기도 하고 12층이나 되는 계단을 올라왔더니 죽을 맛이다. 자주 걸어 올라오는 데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겨우겨우 자리로 돌아와 가방을 벗고 자리에 앉아 미니 선풍기를 튼다. 선풍기 1대로는 어림도 없어 2대를 트니 겨우 살 거 같다.
’선풍기를 한 대 더 갖다 놔 야하나. 에어컨 바람이 오지를 않네.’
파티션 건너 앞 팀에 여자가 다수 있는데 에어컨만 틀면 그렇게 춥다고 춥다고 노래를 부른다. 매일같이 에어컨 전쟁이다. 춥다고 하는 사람과 더워죽겠다고 하는 나 같은 사람. 하지만 회사는 결국 여자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하나둘씩 출근해서 자리에 앉기 시작한다. 지긋지긋한 회사. 이제 좀 있으면 스크럼 회의라는 걸 해야 하는데 이게 또 죽을 맛이다.
솔직히 말하면 스크럼이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아침마다 다 같이 일어나서 15분 동안 어제 한일, 오늘 할 일, 미비했던 점에 대한 해결책 등을 공유하는 자리다. 표면상으로는 좋은 걸 알겠는데 할 말도 없는데 억지로 쥐어 짜내느라 맨날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들이 억지로 발표시키려고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대기하면서 심장이 터질 거 같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근데 이제는 회사에서도 이러고 있다.
나만 고역은 아닌 거 같은 게 다른 사람들 표정도 똥 씹은 표정이다. 오로지 팀장 놈 하나만 이죽거리면서 어떻게든 꼬투리 잡을 거 없나 찾아보며 즐거워하는 자리다. 말이 나왔으니 해보자면 팀장이라는 인간도 사실 얼마 전까진 나랑 같은 사원이었는데 운 좋게 팀장이 됐다. 최근 들어 퇴사자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회사 일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갈 사람이 부족하던 차에 어떻게든 본인을 어필하며 겨우 팀장을 따냈다. 저렇게 까지 해서 팀장 따내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나? 어이가 없었지만 뭐 본인이 원한다는데. 암튼 저 새끼 아니 팀장이 하는 꼬락서니가 맘에 안 들긴 한다. 팀장이 되더니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뭐 잘 보이고 싶겠지.’
근데 방법이 글러먹었다. 지 잘못은 감추고 자꾸 팀원 잘못만 들춰내려고 한다. 도무지 팀장으로서의 자격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런 놈도 팀장이라고 또 그 틈을 비집고 잘 보이려고 하는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팀장이 눈짓하면 팀에 이것저것 전달하는 스피커 역할을 자청한다. 마치 이걸 안 하면 무능력한 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기도 하고 선동도 하고. 저렇게 하면 무슨 콩고물이 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살기도 바쁘니 알아서들 하겠지.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오늘은 평소의 회의 분위기랑 좀 많이 달랐다. 팀장이 먼저 나서서 얘기를 꺼낸다.
”저 여러분. 오늘은 스크럼 회의 대신 제가 전달을 좀 하려고 합니다.”
’무슨 얘기를 또 지껄이려고 무게 잡는 거야.’
뭘 해도 이뻐 보이지 않는 팀장을 나를 비롯해 모든 팀원이 지켜본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요즘 회사가 많이 어렵습니다. 저도 자세한 건 다른 전달사항을 들어야 되겠지만 회사 매각설에 대해 얘기를 꺼내려고 합니다.”
’본론만 말해. 뜸 들이지 말고.’
하지만 팀장은 최대한 무게를 잡으며 별거 아닌 얘기를 하는데만 벌써 10분 이상을 허비하는 중이다.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한다. 차라리 앉아서 들으라고 할 것이지.
”회사 매각설은 사실입니다. 정확한 건 인사팀에서 곧 공지가 올라온다고 하는데 아무튼 그래도 저희는 동요하지 않고 각자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사항이 전달되면 그때 얘기드릴 테니 오늘도 파이팅 합시다!”
’그게 다야?’
나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의 표정도 아리송해 보였다.
”저기. 팀장님. 그럼 저희는 어떻게 되나요?”
다행히 궁금증을 나서서 물어봐 주는 사람이 있었다. 팀장은 다소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가며 억지로 말을 한다.
”나도 몰라요. 일단 일이나 합시다. 전달 사항이 나오면 숨기지 않고 말할게요. 제가 숨기는 게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아.. 그런 건 아닌데.”
”휴. 그럼 일합시다.”
용기 내서 물어본 동료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팀 말고 다른 팀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 아마도 같은 전달 사항을 듣고 있는 거겠지. 회사의 매각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나 같이 직책도 없는 직원은 보통 잘 안 잘리지 않나?’
태풍의 눈 안으로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기도 했고 관심도 없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서도 안전할 거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참에 능력 없는 팀장 같은 인간이나 정리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며 괜히 웃음이 지어졌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고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와.. 진짜 씨.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건데요?”
”아니 진정 좀 하세요. 나도 모른다니까요!”
”잘 알지도 못하는 걸 왜 얘기해서 예민해지게 만드는데요?”
”회사에서도 소문이 이상하게 퍼질 거 방지차원에서 전달해 달라고 한 얘기인데 아직 정해진 게 없는데 왜 이렇게 흥분했어요? 우리 지성인답게 진정 좀 합시다.”
”톡 까놓고 말해서 이거 이러다가 그냥 회사 주인 바뀌면서 쫓겨나는 그런 거 아니냔 말이에요. 쫓아낼 거면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고 언제까지 시간 줄 수 있으니 면접을 보던 뭐 하던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회사가 뭘 책임져 줄 수 있는데요?”
”하아. 그만합시다. 나도 미치겠어요. 아는 게 이거밖에 없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그만 소리 지르고 일단 기다려 봅시다.”
순식간에 사무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저마다 웅성거리며 동요하기 시작한다.
”우리 해고되는 거래?”
”이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어딘가에 황급히 전화하기 시작하는 사람도 보이고 도저히 일할 분위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자기 자리에 앉아서 전혀 상관없다는 듯 자기 일만 하는 사람도 보인다. 이 와중에도 저럴 수 있다니 대단하다.
”자자! 조용! 다들 왜 이래요. 우리 돈 받고 일하는 프로 아닙니까! 뭐 하나 꼬투리 잡아서 놀고 싶어서 그래요? 그렇게 놀고 싶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사직서 내고 나가면 될 거 아닙니까.”
부서장이 큰 소리로 사무실 분위기를 잠재운다. 잠시동안 정적이 흐른다. 다소 분위기가 가라앉자 다시 말을 이어간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지금 하는 비즈니스 돌아가려면 지금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에요. 회사가 매각되더라도 사업을 접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인력은 유지됩니다. 그때 가서 깽판 치고 부끄러운 짓 해놓으면 어디 얼굴 들고 회사 다닐 수나 있겠습니까? 그냥 평정심 유지하면서 하던 일 하면 됩니다. 혹시라도 회사에 불만 있거나 이상한 소문 퍼뜨리고 싶은 사람은 당장에라도 나가세요. 말리는 사람 없으니. 그리고 매각하려는 회사는 세계적인 회사라 자금도 많은 곳이니 오히려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질 게 없습니다. 잘들 생각하고 일에 집중하세요 제발!”
부서장의 외침은 나름 효과가 있었다.
‘그래. 주인이 바뀌어도 지는 괜찮다 이거겠지.’
열은 받았지만 서슬 시퍼렇게 지켜보는 부서장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동요하던 사람들도 전부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결국 몇몇은 담배를 핑계 삼아 일어나기 시작했고 뒤이어 하나 둘 밖으로 나간다. 더 이상 분위기를 좋게 바꾸는 건 어렵다 생각했는지 부서장도 고개를 절레절레하고 모니터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팀 단톡방에 갑작스럽게 심상찮은 메시지가 올라왔다.
[설마 구조조정은 없겠죠?]
[모르지. 가뜩이나 회사 투자금도 없어서 여기저기 돈 빌리러 다닌다고 했었는데. 투자된다는 루머만 있고 맨날 경쟁사 쪽으로만 투자가 진행됐잖아. 점점 복지도 줄어들고 있는 게 불안하더라니.]
[하아. 이력서라도 준비해야 할까요. 불안해서 원. 좀 솔직히 얘기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솔직히 얘기하겠냐고. 말하는 순간 끝장난다는 거 알 텐데. 여러분 회사가 어려우니 알아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얘기 꺼내는 회사 봤어?]
[그러네요. 휴. 갑갑한데 담배나 피워야겠어요.]
[같이 가요.]
아직 회사의 공식적인 그 어떤 얘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많은 직원이 동요하고 있다. 하지만 난 별로 걱정이 되진 않는다. 지난 6년 동안 이 작은 회사가 어떻게 커왔는지를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도 크게 걱정할 것 없이 지나갈 텐데 다들 왜 이렇게 호들갑인지. 아주 틈만 나면 회사부터 버릴 생각 하는구나. 솔직히 복지만 놓고 봐도 지금 회사보다 좋은 데 별로 없는데. 그리고 막상 떠나봤자 회사가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동안 월급 인상은 지지부진했지만 다니는 동안 알게 모르게 누려온 복지라는 형태의 것들에 절여져 있다 보니 이직에 대한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곳에 새로 도전한다는 그 자체가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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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시계를 쳐다보고 있다. 아침도 든든하게 먹었는데 왜 이렇게 또 배가 고픈지. 오늘 점심 메뉴에는 좋아하는 돈가스와 파스타가 나오기로 되어 있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제프. 바빠요?”
“어? 아니요. 왜요?”
“혹시 점심 따로 먹을래요?”
“네? 션 무슨 일 있어요?”
“다른 사람한테 말하기는 좀 그렇고.. 아니면 밥 먹고 커피 마실까요?”
‘아.. 하필이면. 그래 뭐 가끔 나가서 먹는 것도 괜찮지.’
“아니에요. 점심 먹으러 나가요. 지금 갈까요?”
“네 대신 점심 제가 맛있는 거 살게요.”
회사에 친한 사람이 별로 없긴 한데 그나마 션하고는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팀은 다르지만 성향도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해서 나름 친해진 게 아닌가 싶다.
“뭐 먹을까요?”
“전 뭐 아무거나 다 좋아요.”
“그럼. 중국집이나 갈까요?”
“네 좋죠!”
회사 건너편에 있는 단골 중국집으로 향한다. 벌써부터 주변 회사 사람들이 줄 서고 있어 조금만 늦으면 먹는 건 포기해야 한다.
“조금 빨리 갈까요. 벌써 사람 몰리는 거 같은데.”
“아 네네.”
뛰듯이 걸어서 겨우 커트라인을 통과한다. 생각할 틈 없이 세트메뉴를 주문한다.
“휴.. 점심때마다 참 힘들어요. 조금 더 일찍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게요. 그나저나 제프는 어때요?”
“뭐가요?”
“회사.. 옮길 생각 있어요?”
“갑자기요?”
“음.. 사실 제가 제안을 받았는데.”
침을 꼴깍 삼키며 션이 하려는 말을 기다린다.
“아시겠지만 저보다 제프가 경력도 많고 솔직히 맘만 먹으면 팀장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팀장이요?”
“조건은 맞춰준다더라고요. 혹시 팀 단위로 이직할 생각 있냐고. 신생 스타트업인데 믿을만한 개발자 구하고 싶은 거 같더라고요. 원래부터 좀 알고 지내던 대표님이라 정확하게는 예전 직장 선배였어요.”
“네네. 그리고요?”
내가 집중해서 듣기 시작하자 션도 얼굴이 살짝 상기된 채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회사에 일단 신입 개발자 두 명이 있는 상태긴 한데 아직 많이 부족한가 보더라고요. 근데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친구들은 아니고 나름 좋은 학교 졸업하고 외국에서 인턴 생활도 좀 했나 봐요. 그리고 다른 회사 다니는 제 친구가 있는데 원래 모험심이 강한 편이라 제안 내용 듣고는 이직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전 이직하려는 마음이 있던 건 아니었는데 오늘 회사 상황에 대해 조금 듣게 되자마자 불안해졌어요. 그래서 갑작스럽긴 하지만 이직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거죠. 근데 문제가 저도 그렇고 제 친구도 아직 팀장을 하기엔 좀 부족해요. 특히 신생 업체의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품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제프가 잘 맞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 그러니까.”
말을 이어가려던 차에 음식이 나왔다. 적당한 타이밍에 음식이 나와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밥 먹고 카페 가서 얘기 더할까요?”
“네네. 제가 너무 갑작스럽게 얘기했죠? 일단 밥부터 먹어요.”
‘이직제안이라.’
살면서 두 번째 받아 본 제안이다. 2년 전이던가 같은 팀 동료로 있던 스티브가 괜찮은 곳이라며 같이 가자고 꼬드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불만이 별로 없던 난 그때 제안을 거절했다. 일단 이직하려는 곳이 너무 규모가 작았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그저 그런 안목과 별개로 그 회사는 지금 유니콘에 가까울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스티브는 초기 멤버였어서 지분도 어느 정도 가지게 되었고 연봉도 2배 이상 올라 있는 상태였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제안을 수락했을 텐데라는 의미 없는 후회를 가끔씩 하고 있었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집어넣다 보니 어느새 그릇이 비워져 있다. 맛도 제대로 못 느껴 아쉬움이 살짝 느껴진다.
“아 배부르다. 잘 먹었어요.”
“휴 아니에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계산을 끝마치고 가게를 빠져나와 한적한 곳에 위치한 카페로 이동한다. 회사 근처 가까이 있는 카페엔 아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니 최대한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뭐 마실래요?”
“당연히 아아죠.”
“다른 거 마셔도 되는데.”
키오스크에 아아 두 잔을 찍고 카드를 넣어 계산을 끝마친다.
“오늘 싱숭생숭해 보이는 사람 많아 보이더라고요.”
“그럴만하죠. 다들 별 뾰족한 수가 없잖아요.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게 우리 신세잖아요.”
“에휴 더러워서 직장 때려치우고 장사나 하던가 해야지.”
“장사하고 싶은 아이템 있어요?”
“아니 뭐. 치킨이라거나.. 치킨 같은 거. 치킨? 하하.”
장사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떠오르는 거라곤 치킨 밖에 없다. 그냥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다. 션도 더 이상 길게 물어보진 않는다.
“아까 식사 전에 얘기했던 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션은 마음 굳힌 거예요?”
“사실 갈등이죠 뭐. 솔직히 말하면 규모는 지금 회사가 훨씬 크니까요. 여기서 잘못되더라도 이직할 곳이 없진 않을 거 같고.”
‘뭐야. 본인도 결정 내리지 못한 걸 같이 가자고 얘기나 꺼내고.’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다.
“결정은 급하게 내려야 하는 문제예요?”
“아무래도 그 회사도 계속 기다려 줄 수는 없겠죠.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서 론칭하는 게 중요할 테니. 2주 정도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는 했어요. 근데 제프 그 회사로 이직하면 연봉은 지금보다 1.5배 이상 올릴 수 있어요. 1차 투자를 받긴 한 상태라 자금이 아예 없진 않은 거 같더라고요.”
“벌써 투자를 받았다고요? 만든 것도 없다면서요.”
“인맥이죠 뭐.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제가 바라는 건 하고 싶은 일 방해받지 않고 오래오래 하는 거라서.”
“나도 똑같아요. 제발 일만 할 수 있게 가만 놔두는 곳이면 좋겠는데.”
전에 스티브의 제안이 떠올라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 생겼다.
“만약 이직한다면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내 말에 션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아직 팀 구성이 다 끝난 게 아니다 보니 기술면접 같은 부분은 따로 체크할 사람이 없고요. 대신 대표님하고 식사 겸 면접자리를 한 번 가져야 해요. 좀 깐깐한 편이라 질문을 많이 하긴 하는데 이상한 사람은 아니에요. 오히려 주변에 괜찮은 인력 많더라고요. 그만큼 능력은 확실한 거 같아요.”
‘말만 듣고 능력이 좋은지 나쁜지를 어떻게 아나 이 사람아.’
“그러면 이직에 대한 건 일단 저도 한 번 만나봐야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괜찮으면 다리 놔 줄래요?”
“좋아요. 아마 제프도 만나보면 분명 마음에 들 거예요.”
“자. 그럼 이제 점심시간도 얼추 끝나가니까 슬슬 갈까요?”
“네.”
그래도 그동안 회사를 헛 다닌 건 아니었던 거 같다. 내 능력을 이렇게 좋게 봐주는 동료도 있고 말이지.
‘그나저나 지금 회사도 맘에 드는데.’
아직 면접을 본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구 들이키고 있다. 마치 내가 선택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처럼.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보다 분위기가 훨씬 안 좋아져 있는 상태였다. 다들 일어나서 웅성거리거나 불안한 듯 서성이면서 머리를 쥐어뜯는 사람도 있었다.
‘왜들 저래?’
휴대폰에 메시지 알림도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다. 뭔가가 안 좋게 흘러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공지 올라온 거 봤어?”
“어.. 아주 씨발. 직원을 개돼지로 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게 아니라고 우기더니 휴.”
“당장 이력서 돌린다 진짜.”
개발팀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반대쪽에 앉아 있는 마케팅 부서 사람들은 망연자실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직군의 차이에 따라 이직을 쉽게 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서일 거 같다. 대체 어떤 공지가 올라왔길래 이러는 건지. 일단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공지의 내용은 짧았지만 전하려는 메시지만큼은 확실했다.
“이런 썅..”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한 달안에 직원의 50%를 자른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두 달 뒤엔 더 자를 수도 있다고 한다.
‘대체 회사를 어떻게 돌리려는 거지?’
결국 회사 매각이 결정나버렸다. 공지 사항에는 빠른 희망퇴작자에 한해 두 달 치 월급을 특별히 지급하겠다는 내용도 쓰여 있었다. 겨우 두 달.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그 와중에도 기분 나쁠 정도로 머릿속에서는 빠른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무리 계산을 거듭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6년의 세월을 일한 만큼 들어올 퇴직금이 있다는 게 약간의 위안은 된다.
‘잠깐만. 50% 정리된다고 해도 내가 포함이 안될 수도 있는 거잖아?’
6년이나 몸담았던 회사에서 그리 쉽게 내칠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