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걸음
'캠핑.. 도대체 캠핑의 매력이 뭐지?'
허구한 날 캠핑 가서 잠 한번 자보는 게 소원이라는 아내의 말을 곱씹어 봤다. 하지만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사상에 절여진 사고를 하는 나로선 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질 않는달까?
'왜.. 굳이? 돈을 내고 밖에서 노숙을 한단 말인가? 집이 얼마나 좋은데.'
이런 말을 꺼내는 순간 아내의 눈빛은 변화한다.
"이러니까 말이 안 통하지. 감성이 없어 사람이. 감성이 없다고‼️"
'그렇구나. 캠핑을 좋아하지.. 다시 콕 집어서 캠핑을 싫어하는 사람은 감성종결자가 되어버리는 거구나.'
"난 언제 소원 이룰 수 있을까? 이뤄볼 수는 있을까?"
모노드라마를 찍는 아내를 측은히 바라봤다.
'하필이면 왜 더 좋은 소원 놔두고..'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는 일. 그토록 가고 싶다는 캠핑 한번 까짓 거 가주자! 고통은 잠시일 뿐이다. 견뎌내면 평화가 따라온다. 고심 끝에 타결안을 제시했다.
"대신 잠은 안 잘래."
"콜!"
막상 캠핑을 떠나긴 떠나는데 아무 용품도 가진 게 없었다. 언제 샀는지 모를 곰팡이와 한 몸이 된 텐트가 있다곤 하는데 건강을 생각하면 절대로 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딱히 챙길 게 없다 보니 불멍이 가능한 낡아빠진 화로 하나와 장작 20kg을 준비했다. 집 역할을 해주는 텐트는 없을지언정 불멍과 음식은 포기 못하는 까닭에서다.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게 벌써 막 떠오르네?"
같이 가는 아이보다 더 신이 나 보인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가줄 걸 그랬다. 물론 형식적으로 해보는 말이다.
"고기도 굽고, 소시지도 굽고, 생선도 굽고, 고구마도 굽고."
'캠핑요리? 별로 어렵진 않네. 전부 까맣게 태우듯 구우면 되잖아? 좋은 자연환경을 눈앞에 두고 탄 음식을 먹어야 하는 캠핑의 아이러니함이란 쯧. 내가 이래서 캠핑을 별로 안 좋아한다구우!'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굳이 티를 내가며 기분을 상하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예의가 아니다.
"뭐야 그 표정? 지금 가기 싫다고 티 내는 거지?"
"어떻게 알았어?!"
"대놓고 싫어하는 중이잖아 지금! 뭐 가기 싫어?"
"아니야. 가서 구워 먹으면 나도 좋아 하하."
"입은 닫고 손은 열심히 굽도록."
아내 앞에서 만큼은 나만의 페르소나를 입히기가 정말로 어렵다. 가면을 쓰려고 하면 "쓴 거 티 나!"라며 어떻게든 벗겨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냥 숨기기보다 솔직해지는 게 차라리 낫다.
미칠듯한 토치질을 시작으로 숯과 나무를 태우기 시작했다.
"우하핫!"
"형! 일로와 봐!"
아이들은 제법 컸다고 알아서 잘 놀고 있다. 생각보다 편하네. 그나저나 점심도 건너뛴 탓에 배가 슬슬 고파지네.
"고기부터 구울까?"
"인간아. 상 좀 차리고 먹자. 무슨 경주마야? 눈앞에 주어진 것만 득달같이 하려고만 하고. 한상을 먹더라도 제대로 좀 먹으면 안 될까?"
"배가 고파서.."
"아휴 알았어. 최대한 치우고 굽게 해 줄게."
식사량은 줄었는데 갈수록 허기짐을 잘 못 참겠다. 배가 고프면 괜히 예민해지고 흉폭해지기까지 한다. 그럴 때마다 숙달된 조련사인 아내는 나를 꽤나 잘 다룬다.
첫 시작은 소시지로 시작했다. 빨리 익는 데다 호불호 없이 우리 가족이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몸에는 별로 좋지 않겠지만 지금 그게 중요하겠나? 시험 삼아 구워봤다.
"어? 왜 이렇게 석탄처럼 변해가지?"
기대한 노릇노릇한 소시지 대신 석탄 덩어리 한 개가 탄생했다.
"아빠.. 왜 사탄의 음식을 만들었어?"
졸지에 사탄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형편없는 굽기 솜씨에 아이들이 실망하기 시작했다.
재도전! 아까는 너무 직화로 해서 잘못 구워진 게 분명하다. 다행히 두 번째는 성공적이었다.
"올해 먹어본 음식 중 가장 최고의 맛이에요."
북미스타일스러운 칭찬이 흘러나온 걸 보니 드디어 민심을 회복했구나.
다음으로는 고기를 구웠다. 돼지를 기점으로 소, 양으로 이어지는 오마카세. 시즈닝은 내 맘대로, 굽기 정도도 내 맘대로 모든 게 굽는 사람 마음대로니 오마카세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냥 내가 해주는 대로 먹을지어다.'
열심히 구웠다. 먹다가 뛰다가 아이들은 자유로웠고, 아내는 맥주 한잔의 여유를 즐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열심히 굽고 또 구웠다.
분명 굽기 전에는 엄청 배고파서 당장에라도 먹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는데, 막상 굽기 시작하자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식욕이 충당됐다. (아예 안 먹은 건 아니고 중간중간 집어 먹음)
문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직접 먹는 것보다 다른 이가 먹고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별 거 아닌 음식이라도 내가 만들어 준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쉬지 않고 여러 음식을 계속 해먹이다 보니 어느덧 어두컴컴해져 가기 시작했다.
"오빠 오늘 좋았지?"
"응."
"빈말로 하지 말고 진짜로 어땠어? 우리 또 올래?"
"..."
"쳇. 그렇게 싫어? 날 추워지면 이제 오고 싶어도 못 올 텐데."
"한번 더 오자 그럼."
"텐트 치고 잠도 잘까?"
"..."
"흥. 내 로망인데 그거 하나 못해주냐."
"조금만 더 시간을 줘. 마음의 준비.."
"알았어. 아 진짜 한 번은 꼭 해보고 싶단 말이야."
[캠핑=노숙]이라는 생각을 하는 나로선 다소 절망적인 요구사항이다. 하지만 소원이라는데 어떻게 무시하겠는가? 들어주긴 들어줘야지. 단지 그 시간이 지금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나중에 하자."
"또또! 정확히 딱 말해. 언제 하겠다 못을 박으란 말이야."
"알았어. 담에 그렇게 해."
"약속한 거다? 나 진짜로 해보고 싶단 말이야."
"응."
별 수 있나. 해야지. 그리고 오늘 투덜대며 나온 캠핑이긴 했지만 좋긴 좋았어. 그렇다고 내 생각이 180도 변해서 캠핑을 찬양할 정도로 변하진 않았지만 말이야.
돌아오는 길의 밤하늘엔 별이 반짝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