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추운 겨울에 아빠를 보냈다.
아니, 아빠가 내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애도 일지를 쓰기로 마음먹고, 썼다.
멈추고 싶을 때까지, 아빠를 떠올릴 때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날 때까지 쓰고 싶었다.
그렇게 아빠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간직하고 싶었다.
멈췄다.
멈춰진 걸까.
내가 멈춘 걸까.
잘 모르겠다.
애도 일지 쓰기는 2020년에 멈췄고 내 일상은 계속되었다.
아빠가 없는 내 일상.
아빠가 없어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내 일상이.
아빠가 없어도 괜찮은 내 일상, 정말 괜찮을까. 그래도 될까.
아빠가 세상에 존재할 때도 아빠가 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도 아빠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고 가끔이지만 만날 수도 없는데
내 일상을 계속,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나는 너무 괜찮은,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너무 빨리 아빠의 죽음을, 아빠의 영원한 부재를, 그 텅 빈 자리를
받아들인 나를 의심하고 미워하고 원망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딸이라면 아빠의 죽음을 더 깊이, 더 오래 슬퍼하고 기억하고 애도해야 하는 거 아냐?
나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그 질문이 마음과 머리에서 둥둥 떠다녔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았다. 그럭저럭.
아빠가 돌아가신 게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조금 더 잘 챙겼으면,
내가 더 관심 가지고 자주 찾아뵀더라면,
지금도 살아계시지 않을까.
내가 아빠를 지켜 주지 못했다는 생각과
나는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나의 애도를, 애도 일지 쓰기를 방해했다.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를 남겨 두고 떠난 울아빠.
아빠.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아빠. 내가 너무 늦었지? 너무 너무 무심했지?
아빠도 나름 최선을 다했을 텐데,
아빠도 나한테 서운한 게 참 많았을 텐데,
아빠도 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말이 산더미였을 텐데,
이제 우리는 손을 잡을 수도, 눈을 맞출 수도,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원망할 수도, 싸우고 욕할 수도 없네. 다 할 수가 없네. 그 어떤 것도.
그래도 내가 하나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아빠를 기억하는 일이겠지.
아빠. 아빠. 아빠.
나는 엄마~하고 부를 때 종종 아빠 생각이 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엄마를 부르는데, 아빠는 정작 많이 못 불렀던 것 같아.
이제는 불러도 대답해 줄 수 없는 아빠. 그래도 나는 부를래. 아빠! 우리 아빠!
아빠한테 잘못한 일, 미안했던 일만 자꾸 떠올라.
아빠가 가끔 꿈에 나올 때도 꿈 속에서도 나는 아빠한테 미안한 마음뿐이야.
아빠하고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런가.
아빠하고 나하고 즐겁고, 좋은 기억도 많을 텐데...
하나하나 떠올려 볼게. 천천히. 그리고 기억할게. 아빠를.
성급하게 애도를 마무리하려는 마음,
아빠의 이른 죽음이 내 탓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
그런 마음 그냥 다 받아들이고 그대로 두면서
내 일상을 살아가면서 아빠를 기억할게. 아빠랑 함께 할게.
다시 만나서 반가워, 아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