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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May 22. 2023

민들레 - 너마저 김치

이제는 정했다. 내가 좋아하는 꽃은 민들레다.


꽃은 지긋지긋한 초록 속의 반짝이는 청량감이다. 겨울은 초록이 숨기고 있는 별의 온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초록이 그립다. 봄이 되면 초록빛 조우가 만발하지만, 꽃을 피우는 초록만이 봄의 영광을 나눠 갖는다. 며칠을 못 버티는 저 연약한 색깔이 초록의 이름까지 독점한다. 그 이름에 내 취향은 없었다. 초록이 아닌 색채는 그냥 예쁘다, 그뿐이었다. 먹지도 못한다.


실용성의 세계에서 봄은 아낀 가스비가 마스크를 써야 하는 수고로움으로 대체되는 따뜻한 꽃가루의 시간이었다.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4월 한 달은 비염약을 달고 살았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슬슬 발동이 걸려 아카시아꽃이 절정일 때 비염도 절정이었다. 달달한 향속에 집결한 20-40μm짜리들은 매서웠다. 눈물, 콧물을 무자비하게 쥐어짜냈다. 약을 먹으면 살 만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약발이 떨어졌다. 요즘은 자다가도 콧물 때문에 깼다. 수면제 처방 받는 입장에서 잠은 예민한 문제여서 꽃은 예쁜 악마였다. 그런데 민들레 김치라니.


“민들레, 저기 웅규 삼촌 밭에서 캔 거다.”

엄마 염색약 사러 마트에 나란히 걷던 월요일 오전이었다. 엄마는 산허리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래 봤자 나는 어딘지 몰랐다. 엄마 말에 따르면 민들레는 공해 물질을 잘 흡수한다고 했다. 그래서 민들레는 아무데서나 캔 것을 먹으면 안 된다. 웅규 아저씨 밭은 주변에 공장이나 도로가 없어 깨끗했다. 동네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쑥과 민들레를 캤다. 엄마는 왼손 깁스 중인데도 쑥을 제일 많이 캤다고 자랑도 덧붙였다.


이날 아침 민들레 김치를 먹었었다. ‘채소 이름+김치’로 검색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가 민들레 김치를 먹게 될지는 몰랐다. 너무 기름지지 않는 한 웬만한 음식은 가리지 않았고, 엄마가 해준 음식은 가타부타 말없이 잘 먹었기에 민들레 김치도 그냥 먹었다. 민들레 김치는 부추김치와 파김치가 7:3으로 조합된 맛이 났다. 양념장 끝에 매달린 쌉싸름한 맛은 파김치보다 끝이 둥글었고, 질감은 부추보다 부드러웠다.


“먹을 만하네.”


딱 그만큼의 맛이었다.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쌉싸름한 맛에 입맛이 돌았지만, 굳이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쓴맛의 근친성에서 오는 인력(引力)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이는 인생이 인력(人力)으로 소모되는 동안에 누적된 쓴맛 수치이기도 했다. 5년 후, 10년 후에는 민들레 김치가 조금 더 맛있어질 것을 예감했다.


염색약을 사와서 내가 엄마 머리를 염색했다. 엄마 머리카락은 뿌리에서 3cm 넘게 하얘져 있었다. 엄마의 머리통이 홀씨만 남은 민들레 같았다. 홀씨 몇 개가 날아가 듬성듬성 해진 민들레처럼 숱이 심심해 엄마는 더 초라해 보였다. 하필 염색할 때를 조금 넘긴 시점에 왼팔 수술하고 입원한 탓이었다. 평소에도 당신 머리는 당신께서 염색했지만, 병원비로 몇 백 만 원이 날아갔기에 30,000원짜리 미용실 염색이 망설여졌을 것이다. 망설이는 사이 우거지는 초라함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산수 염색체를 물려받은 아들이기에 모를 수 없었다.


나는 염색약 반쯤만 써도 될 거라고 했지만, 엄마는 다 써야 한다고 했다. 염색을 6,000원으로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엄마의 산수는 결과적으로 틀렸다. 3,000원에도 해결할 수 있었다. 남은 염색약은 내가 쓸까 하다가 그냥 엄마 머리에 치덕치덕 다 발랐다. 앞머리와 정수리는 물론, 귀밑머리에서 뒷머리 솜털까지 빈틈없이 염색되었다.


“이만 하면 10,000원은 줘야 되는 거 아니가?”

“니는 반찬 값 줬나?”

점심을 먹고 본가를 나섰다. 에코백에는 반찬 가게에서 산다면 50,000원어치는 족히 넘는 반찬이 들린 채였다. 민들레 김치도 그 중 하나였다.


민들레 김치를 먹기 시작하자 민들레가 더 잘 보였다. 아니, 이미 알고 있던 것들에 엄마 가중치가 붙었다. 민들레는 엄마처럼 억척스러웠다. 도심에 침투한 자연의 최전선은 뿌리 내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 햇볕이 잠깐 들어오는 골목, 보도블록과 보도블록 사이의 틈, 아스팔트와 인도의 경계에 흙이 조금 쌓인 곳에도 민들레는 뿌리를 내렸다. 민들레도 그곳이 쉽지 않았겠지만, 아무튼 꽃을 피워냈다. 제 몸에는 오염 물질이 축적되든 말든, 기어이 홀씨를 날려내며 사명을 수행해냈다. - 엄마, 그 홀씨도 꽤 나이 먹어버려서 제 손으로 꼬박꼬박 염색하고 있어요.


민들레 잎을 따볼까 싶었다. 김치 만들 정성과 손재주는 없지만 쌈 싸 먹으면 되었다. 깨끗한 곳이라면 우리 동네에도 꽤 있었다. 고분과 공원 근처, 산책 나온 개들의 똥이 숨겨져 있을지 몰라도 중금속 유인은 적었다. 어차피 출퇴근길에 공원을 관통하며 고분 옆을 지났기에 5분만 짬을 내도 한 끼 넉넉하게 채집할 수 있을 듯했다.


초록에 별처럼 박힌 노란 빛들은 여기저기서 하얗게 사위어 가고 있어 쉽게 표지되었다. 그러나 역시, 사실 예상한 대로, 귀찮았다. 민들레에서 식용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미식가의 상상력이 아니라 무엇이든 먹어야 했던 극빈자의 생명력이었을 것이다. 나는 미식가는 아니지만 극빈자는 더욱 아니었고, 엄마는 여전히 민들레였다. 나를 향한 일편단심에 줄 것은 당신의 손품밖에 남지 않아서 더 부지런하셨을 것이다. 또, 택배로 받았다.


엄마는 인생의 겨울로 접어들었고, 나는 여름이 끝나간다. 지금도 초록의 시간은 비가역적으로 우리와 멀어져 간다. 다시는 민들레의 시간은 없겠지만 홀씨가 가득한 시간은 포근하다. 민들레의 꽃말은 행복과 감사고, 김치는 필수 반찬이어서 매일 집밥이 행복과 감사로 염색된다. 자식은 ‘요청하는 것이 사랑’이 될 수 있는 권력자고, 나는 노란 폭군일 것이다. 흰색에 대해서라면 시치미를 뗄 것이다. 쌉싸름하게 염색하면 된다.


엄마가 없어질 어느 날, 내 생의 모든 4월이 흘릴 눈물과 콧물을 하루에 쥐어짜낼 날 언젠가, 민들레 김치가 겨울의 봄처럼 그리워질 것이다. 그래서 어디서 팔지도 않을 처방전을 성실히 먹고 있다. 그리움을 버틸 항체 하나쯤은 있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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