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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Apr 24. 2023

엄마의 밥 짓는 소리가 듣고 싶었었구나

내가 앞으로 몇 번이나 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듣고 나서야 듣고 싶었다는 것을 알았다. 알아버려서 그리움이 구체적으로 예비되었다. 내 생에 몇 십 번 안 남은 소리일 듯했다. 다음에는 녹음이라도 해둬야겠다. 나는 방에 누워 있었고, 엄마는 부엌에서 식사 준비 중이었다.


평소에 수면제를 먹고도 다섯 시간 안팎 아슬아슬하게 수면을 잇대 오다가, 그날은 세 시간쯤 자다 깨자 누적되었던 불면 피로가 일시불로 상환을 요청해 왔다. 잠이 왔지만 잠이 오지 않았고, 잠이 오지 않았지만 잠이 왔다. 수면으로 향하되 각성의 자기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머릿속에 ‘자고 싶다’로 응축된 두통만 고속으로 자전했다. 제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 두통은 어지러움인지 열감인지 모를 불쾌감으로 자폭했다. 수면의 살점들이 각성과 엉겨 붙었다. 내가 아닌 것에 내가 침식되어 나는 내가 아닌 채로 지저분하고 무거웠다. 몸이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나는 어찌할 줄 몰랐지만, 엄마가 만든 소리가 나를 건져 올렸다. 한 손으로만.


설이 아닌데도 본가에 내려 간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였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네 시간쯤 걸렸다. 이동 시간 낭비도 싫었고, 일상 루틴이 깨지는 것은 더 싫었다. 다녀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는 죄책감과 사람과 부대낀 피로도 씻어내야 했다. 엄마는 내 성향을 아시기에 오지 말라 했지만, 나는 엄마 자아의 최대주주가 나임을 안다. 그러니까 왜 병원에 입원씩이나 하시냐는 말이다.


엄마가 계단에서 넘어졌다. 왼손 뼈가 부러져 철심을 박았고, 열흘 가까이 입원했다. 당장은 동생 내외가 엄마 집 다섯 층 아래 살아서 내가 없어도 괜찮았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제한되어 미루다가 엄마가 퇴원하고 한 주가 지나서야 내려갔다. 엄마는 왼팔에 깁스한 채로, 요즘은 석고가 아니라 천으로 칭칭 감아도 단단하게 굳는다며 천진하게 웃었다.


아들이 벼슬이었다. 본가에 갈 때마다 나는 개선장군쯤 되었다. 내 전리품은 빈 반찬통이었다. 그동안 택배로 받았던 밑반찬 껍데기들이었다. 설에도 선물세트 대신 빈 반찬통을 마트료시카처럼 겹겹이 포개갔다. 에코백 한 가득도 모자라 배낭에도 넣어야 했다. 순욱은 조조의 빈 찬합을 받고 자신을 종결했지만, 엄마는 내 빈 반찬통을 받고 당신을 가결했다. 내가 비워내야 당신이 채워지는 당신의 고결하지만 미련한 존재론이 내 것이어서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수업 직후 급하게 움직이느라 전날 챙겨둔 반찬통을 깜빡했다. 수면제도 그렇게 잊었던 것이다. 엄마도 수면제 복용 중이었으니 엄마 약을 먹어도 되었지만 최근 입면장애 약은 끊었고, 수면유지장애 약까지 끊으려고 노력 중이어서 객기 한 번 부려봤다. 약 없이 잠들었다가 어김없이 깼다. 2시였다. 어둠 속에 그득한 엄마의 낮은 코고는 소리가 빈 반찬 통에 꾹꾹 눌러 담은 나물처럼 알차고 삼삼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다가 선잠을 모스 부호처럼 찍어대다가 아침이었다. 피곤했지만 멀쩡한 척했다.


본가 아침은 늘 엄마의 식사 준비로 시작되었다. 동생이 자기 집 두고 엄마 집에서 삐대는 바람에 평소에는 tv를 켜둔 채 어슬렁거려서 어수선했다. 그러나 그날 점심때는 세상 조용한 가운데 밥 짓는 소리만 온순했다. 밥솥이 칙칙 거리고 가스 불이 타오르는 기본음 위에 엄마의 움직임이 화음을 쌓였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놓이는 고기는 온몸으로 묵직한 테너였고, 싱크대 바닥을 때리는 물소리는 날카로운 소프라노였다. 도마 위에서 무언가 뚝딱뚝딱 썰리는 정박 사이에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가 엇박자로 끼어들었다. 조리의 질서가 만들어 내는 개별 소리는 조리 상황을 알 수 없어 무질서했지만, 엄마가 만들어 내는 소리였기에 질서보다 내 귀에 가지런했다. 소리는 짭조름하고,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를 뒤죽박죽 껴입어 입 안에서 세상 요란해졌으나 결국은 다 ‘밥 짓는 소리’로 귀결되었다.


이런 밥 같은 평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먹거리도 밥 앞에서 반찬이었다. 반찬이 반찬으로 기술되는 단순함은 공정했으므로 엄마의 손끝으로 조리해내는 평화는 정의로웠다. 무엇이 악의 무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악의 무리와 그들이 알게 모르게 내게 새겨 넣은 패배감까지 뿌리 뽑히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한 마디 기다렸다. 내 일상에 없는 말이었다.


내가 부엌에서 소리를 만드는 일은 드물었다. 요리는 귀찮았다. 가스레인지나 전자레인지가 간혹 돌발할 뿐, 하루 한 번 정도 밥솥만 성실했다. 열심히 ‘칙칙’대는 소리는 무언가가 나를 위해 애 쓰는 같아서 기특하기도 했지만 섞일 소리가 없어 혼자 고고한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는 공허했다. ‘그래, 수고했다.’라고 한 마디 보태주고 나면 더 허전해질 것 같아서 무시했다. 냉장고 한 번 여닫는 여음이 가시기도 전에 밥상이 완성되었다. 내가 오롯한 질서에는 무언가가 무질서하게 흩어지는 기분으로 그득했다. 밥이라는 거, 힘내려고 먹는 거 아니었던가?


은색 압력솥이 힘차게 김 빼는 소리가 알람인 시절이 있었다. 일찍 눈이 떠져도 압력솥이 내뿜는 ‘취이이-’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안심하고 비몽사몽해도 괜찮았다. 당시는 엄마의 아침을 알지 못했다. 국과 반찬에 변화를 줘야 하는 성가심과 도시락 두 개를 싸야 하는 번거로움은 자취하고 나서야 알았다. 알아도 뭐 어쩌라고, 귀찮은데. 내가 귀찮다고 생략한 것들이 내게 필요한 윤기를 입히는 힘이었음이, 비몽사몽간에 20여 년을 건너 와 들렸다.


밥 먹어라.


나는 엄마의 부엌 소리에 허기져 있었다. 털어 내지지 않는 잠을 이끌고 식탁으로 갔다. 밥 정도는 내가 푸려 했는데 밥까지 다 차려져 있었다. 밥상에는 당신의 왼손 공백이 티 나지 않았다. 쑥국에 삼겹살을 중심으로, 배추김치, 민들레김치, 봄동 동치미, 미나리나물, 시금치나물, 깻잎나물, 두릅나물로 식탁이 꽉 찼다. 중고생 시절 아침을 먹으며 잠을 깼듯, 밥을 먹으니 잠이 깨졌다. 엄마는 쑥과 민들레와 두릅의 출처를 세세히 밝혔다. 당신이 해주신 거니 어련히 잘하셨겠지. 아무래도 상관없는 수다를 나물에 비볐다.


내 방 냉장고에 민들레김치, 두릅나물, 장조림이 채워졌다. 민들레김치는 처음이었으나 먹을 만했고, 두릅나물은 일주일을 넘기자 쉴 듯해서 라면에 넣어 마무리했다. 그리고 아침,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부엌을 바라보다가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가 듣기 지겨워 엄마에게 전화했다.


밥 먹었나?


역시,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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