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이 사라진 이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때가 있다

by 하루오

우리 동네에도 목욕탕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사라진 것들에 관심 없다. 살아지기도 버겁다. 살아간다기보다는 살아낸다는 감각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발동되는 ‘출근하기 싫다’로 표상된다. 살아지기 위해 애쓰는 모양새를 삶이라 부르는 아이러니를 모른 척한다. 해야 하는 것들이 나를 꾸역꾸역 관통한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도 해야 할 것들로 마음이 바쁘다. 근면성실도 아니고 일중독도 아니다. 휴식을 허락하지 못하는 나의 오작동이다. 있다, 있다, 있다, 있다만 거듭되는 이진수는 ‘없다’를 모른다. ‘있다’로만 등장되는 속도감은 퇴장된 것들에 주의를 줄 여력이 없다. 내가 나를 협박 중이다. - 쉬면 죽는다.


코로나 팬데믹 때, 삶과 죽음으로 된 이진수가 뉴스 속에서 매일 갱신되었다. 삶 이전에 생존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디어 요구되었다. - 방구석에서, 쉬어라. - ‘있다’를 위해 ‘없다’가 필수불가결해졌다. 해야 할 것들에 쫓기던 소진감을 정당하게 멈췄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된 불안감 때문에 소진감에서 해방된 순간은 극히 짧았지만, 나도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팬데믹 시대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나는 마스크에 김 서리는 것 빼고는 나쁘지 않았다. 살아 남은 자의 치사한 과거 미화다. 그립기까지 하다. 지금 너무 바쁘다. 있고, 있으며, 있지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있어야 해서 있는 주체과밀로 나는 시간이 비좁다.


목욕탕에 가고 싶다. 목욕탕은 ‘쉬어라’에 충실할 수 있는 숨구멍이다. 목욕탕에서는 스마트폰과 단절될 수밖에 없어 몸은 드디어 현재의 단독자로 등장한다. 자아는 무엇이기 위한 강박을 포기한다. 벌거벗은 몸은 내가 보잘 것 없다는 적나라한 증거다. 순순히 닥쳐오는 냉온감각에 복종한다. 주체가 냉온 뒤로 물러서진다. 냉탕과 온탕을 왕복하는 온도의 격차만큼 몸은 오래된 주권을 회복한다. 나는 내가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몸이다. 게다가 안경을 빼면 1미터 앞 사람 얼굴도 구분 못해서 사람들은 타자 가능성이 거세된 배경이다. 몸을 데치고 식히기를 반복하다가 온돌에 누워 있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허락이 완성된다. 온돌 위에서는 수면과 각성 사이의 느리고 노곤노곤한 감각이 평안했다. 몸은 태초에 그렇게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 동네 목욕탕은 없어졌다. 사라지고 나서야 의미가 명확해졌다. 목욕은 때를 미는 곳이 아니라, 성과주체에 브레이크를 거는 성과사회의 정비소였다. 눈을 뜨고 있으면 자아니, 주체니, 실존이 쉬지 않고 시끄럽다.


내 ‘우리 동네’는 도보 거리와 방향이 복합된 감각이었다. 걸어 다니면 동네 범주였지만, 대구 방향은 일하러 가는 길이므로 ‘동네감’이 약했다. 용암 온천은 집에서 대구 반대 방향 2.5km 떨어진 우리 동네였다. 도보 30분 거리였고, 자전거를 타면 오목천 강둑을 타고 10분 안팎이면 거뜬했다. 당시 449, 649를 비롯한 버스 종점 바로 옆이어서 버스를 타도 되었지만, 나는 대체로 걸어갔다. 자주 가진 못했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의 1,000원이 도보 2.5km보다 먼 시절이었다.


용암 온천은 목욕탕을 때 미는 곳으로 등식화 한 시절, 저렴한 사치재였다. 온천은 동래, 청도, 온양에만 있는 휴양지로 생각해서 우리 동네 온천을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욕 직후 피부가 뽀드득해지는 걸 보면 물이 좋긴 한 모양이었다. 카운터에 제복 입은 여직원이 안내하고, 여름에는 야외 물놀이장을 개장할 정도의 규모를 갖춘 제법 큰 사업체였다. 물 색이 다른 온열탕 세 개, 건/습식 사우나, 냉탕과 폭포수, 수압 마사지 장치를 오가며 몸을 풀기 좋았다. 작정하고 느긋해도 때 미는 시간 포함, 한 시간 안팎이었다.


평일 오전 10시 전후를 선호했다. 밤을 지나온 사람들과 출근 전 부지런한 사람들이 퇴장했지만, 아직 오늘이 시작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적었다. 도서관이든, 지하철이든, 식당이든, 사람은 없을수록 좋았다. 추운날이면 좀 더 이 악물고 갔다. 추워서 내가 나가기 귀찮은 만큼 남도 나가기 귀찮아, 가면 사람이 적었다. 목욕탕은 사람이 많아진다고 해서 특별히 시끄러워지는 곳은 아니었지만, 사람이 적어야 욕탕이 깨끗했다. 주로 어떤 사람이 이 시간에 있었는지는 기억나진 않았다. 안경을 벗으면 타인은 그냥 덩어리 1이었다. 나는 타인만큼의 덩어리로 이곳에서 내 일을 했다.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은 것이 내 일이었다.


잔뜩 아무것도 아닌 채 그저 뽀송뽀송한 피부의 아저씨로 현시되고 나면, 세상이 순해져 있었다. 간혹, 출근 시간에 맞춰 목욕하기도 했다. 평일 12시도 애매한 점심 시간이라 사람이 많진 않았다. 이 신선하고 탱글탱글한 몸을 출근에게 내주긴 아까웠지만, 내가 손해봐도 괜찮은 관용이 생겼다. 목욕은 때를 벗겨내고 여유를 채우는 일이었다. 대신 평소보다 점심에 1,000원쯤은 더 썼다. 단지 바나나 우유를 사지는 않았다. 아직 스타벅스를 우러러 볼 때였다. 마실 것에 쓰는 돈은 가성비가 가장 나빴다.


마스크 의무화 폐지로 팬데믹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될 무렵, 용암 온천은 골프 연습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골프 연습장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마시지 못한 단지 바나나 우유를 생각했다. 몇 년 만에 간 것이기도 했고, 밥벌이가 안정화 되기도 해서 이번에야말로 사치를 부려볼 작정까지 했었지만, 기회는 청춘처럼 지나가 있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마주한 중년은 ‘사라진 것’으로 채워질 것을 예감했다. 내가 골프 연습장에 갈 일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동네에 공실보다 쓸모 없는 것이 늘어났다.


내가 아직 싱싱한 청년일 때, 오렌지로드 근처에도 목욕탕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닐 수도 있다. 한 번도 가보기 전에 폐업했다.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때를 밀며 목욕비를 굳힐 때였다. 탕에서 몸을 풀어야 할 만큼 몸이 뻑뻑하지도 않고, 원장의 자장 아래 있을 때는 휴일에 휴대폰을 끄고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을 때이기도 했다. 밥벌이로 바빠진 건 몸을 갉아 먹는 복이다. 다만 목욕탕이 사라졌을 뿐이다.


검색해 보면 해답은 정평동 쪽에 많았다. 팬데믹 이전 걸었던 만큼만 걸으면 되었다. 수면제 타러 가는 신경과에서 멀지 않은 귀빈 목욕탕은 폐업했지만, 더 찾아보니 목욕탕은 흔했다. 심지어 용암 온천보다 더 가까운 데도 있었다. 내 목욕탕은 복원될 수 있었다. 단, 바뀐 우리 동네 풍경은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정평의 아파트에는 한국인이 밀집했다. 우리 동네 외국인이 굳이 거기까지 가는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농장과 자인 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들도 나처럼 성과주체로 스스로를 협박 중일 것이고, 정평은 이국 바깥의 이국일 것이다.


우리 동네에도 목욕탕이 다시 생겼으면 좋겠다. 사업성이 없다면 다문화정책으로도 괜찮다. 다양한 국적의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목욕탕을 이식시키고 싶다. 폭력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물소리뿐인 곳에서 언어 차이는 덮인다. 우리는 골프 연습장엔 갈 수 없는 벌거벗은 덩어리1로 각자의 일에 충실하며 한 공간을 생생하게 공유한다. 물을 매개로 섞인다. 서로의 알몸을 보이며 무방비할 수 있을 때, ‘없다’로 표상되는 서로가 ‘있다’. 다문화의 이진수가 깜빡깜빡,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일 것이다. 서로 등이라도 밀어주면, 메리 대한민국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목욕탕에서 외국인을 본 적 없다. 지금보다 외국인이 적을 때이기도 했고, ‘K-’가 지금만큼의 힘을 가질 때도 아니었다. 그러나 ‘K-’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가파르게 소비되는 문화라면, 한국 목욕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은 외국인들도 재밌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 동네엔 당신들이 많고, 당신들은 무리지어 다니니, 벗은 몸이 구경 거리가 되는 건 내 쪽일 것이다. 나는 당신과 민망함을 공유할 준비가 되었다. 안경을 빼면 아무 것도 안 보이니 내 손해지만, 목욕탕에선 괜찮다.


목욕탕만 없다. 목욕을 안 한다고 죽지는 않는다. 우린 계속 다르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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