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필라테스>
노자가 말했다.
“우리가 근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의 근심은 아주 '경미한 각도'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5~10도.
우리 골반에게 필요한 각도.
척추가 S 라인을 유지하고, 몸 전체의 무게중심을 잘 잡을 수 있는 최적의 각도.
하지만 내겐 이 각도가 실종됐다.
골반의 5~10도가 사라지니, 척추 사이사이의 모든 각도도 실종되고 있다.
이른바 내 육체의 ‘각도 실종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골반은 전방경사, 후방경사 불균형이 존재한다.
모두 골반의 경사, 즉 각도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이다.
나의 경우는 골반 후방경사 심각...
엉덩이가 말려있는 자세로 허리와 요추의 근육이 짧아진 거다.
후방경사는 척추의 라인이 없어지고 일자 허리가 된다.
반대로 전방경사는 오리엉덩이를 생각하면 된다. 엉덩이가 뒤로 빠져 배가 앞으로 나오는 임신부 같은 몸의 자세다.
둘 다 허리와 고관절에 과도한 긴장과 통증을 유발한다.
우리 몸은 참 신기한 게 몸의 근육의 70% 이상이 모두 후방에 모여 있다.
그러니 마사지를 받으러 가도 모두 뒤를 푸는 거다.
목 뒤, 어깨 뒤, 등 뒤, 엉덩이 뒤 등.
특히 후방경사는 ‘후방’의 긴장도가 강하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목뒤, 엉덩이 뒤, 종아리 뒤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왜 이렇게 됐냐 하면 이미 다 아는 이야기.
골반을 뒤로 말고 앉는 잘못된 자세, 엉덩이 근육이 일을 안 하면서 둔근이 약화되며 골반을 지탱하지 못함, 허벅지 뒤쪽 근육이 짧아지며 골반을 아래로 끌어당김, 복부만 강화되고 척추기립근 등 후면근육이 약해짐.
해부학적으로 보면 ‘대둔근’이라는 엉덩이의 가장 큰 근육이 약해 골반과 척추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
그리고 ‘척추기립근’이라는 척추를 곧게 세우는 근육근이 등과 허리를 제대로 지지하지 못한다.
또 ‘장요근’이라는 고관절의 굴곡근 일부가 짧아지며 기능이 떨어진 것이다.
더 아래로는 ‘햄스트링’이라는 허벅지 뒤쪽 근육이 짧아지면서 골반을 자연스레 아래로 끌어당겨 후방경사를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희한하게도 복부 앞쪽 근육인 '복직근'도 과도하게 긴장돼 골반이 앞으로 말린다.
(복직근이 왜 긴장하는지 모르겠다.. 복부운동? 엄청나게 한건 아닌데.. 혹시 아시는 분?)
몸 자체가 무의식이며, 습관이며,
내 과거의 총체이자 현재이며, 미래의 원인이다 (주 1)
나의 무의식이 나의 모든 근육들을 단축시켜 온 것이다.
골반의 본래 각도를 잃어버리게 할 정도로 내 근육을 단축시킨 내 무의식이 무엇일까?
‘빨리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는 나의 무의식적 성향이 아닐까?
나는 언제나 ‘쇼트커트(shortcut)'을 추구해 오지 않았던가?
지름길은 짧다.
본래의 길보다 목표에 빨리 도달해야 하므로.
그 무의식이 내 몸의 각도마저 단축시켰다.
굴곡을 없애고 골반과 척추를 평평하게 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그 모두를 지탱하기 위해 견뎌내는 근육들이 과도한 긴장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내 과거의 총체가 현재의 내 몸인데, 이는 곧 미래 내 모든 통증의 원인이 된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몸의 지름길은 없다.
본래 근육의 힘과 관절의 각도를 유지하는 게
몸의 정도(正道).
앞만 보고 가는 내 무의식이 내 뒤를 책임져주지 못한다.
내 몸 뒤에서는 빨간불이 들어와서 난리인데 나는 앞만 보느라 의식조차 못했다.
근육정상장력의 법칙: 근육이 정상 길이일 때 100% 힘을 발휘한다.
우리 마음도 힘이 빠졌을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주 2)
나는 내 몸을 정상 길이로 만들기 위해 정상 각도를 회복해야 한다.
그를 위해선 내 무의식의 긴장도를 빼고 내 몸의 힘을 빼야 한다.
그래야 본래 타고난 내 몸과 마음의 힘을 되찾을 수 있다.
인대를 다치고 필라테스를 일주일 쉬었다.
그 인대도 결국 발목과 발을 이어주는 이음새의 문제였다.
골반도 마찬가지다.
상체와 하체를 이어주는 이음새다.
나는 내 몸의 ‘이음새’ 문제를 지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지금 내겐 이음새를 회복하는 과제가 생겼다.
나는 인지했고, 의식과 무의식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내 의식과 무의식의 이음새, 그건 내 몸이었다.
주 1, 주 2 : 올어바웃바디, 이낙림, 2019, 치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