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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Apr 07. 2024

의료보험도 북한과 상관이 있다고?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70년대의 남북 체제경쟁

의료대란 때문에 시끌시끌한 시국입니다. 그런데, 북한과의 체제 경쟁 속에서 제도화된 또하나의 한국 사회의 중요한 시스템 중 하나가 ‘의료보험’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신가요? 한국에서 의료보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500인 이상 사업장 대상으로 강제 의료보험이 시행된 1977년으로 볼 수 있는데, 70년대 북한과의 체제경쟁은 이 의료보험의 성립 과정에서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체제경쟁 시기에 만든 토대 ②: 의료보험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세운 북한은 1946년, 정부수립 이전에 이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상치료제’를 주요 정책으로 제시합니다. 북한은 이후 관련 제도를 지속적으로 정비해 나가며 1952년 경에는 전 국민에 대해 국가가 무상으로 의료비를 부담한다는 취지의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합니다.     


북한은 왜 정부수립 전후 곧바로 무상의료정책을 추진했을까요?     


대한민국 헌법 제23조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대한민국은 개인의 재산(사유재산)을 보장합니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죠. 하지만, 개인이 재산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사회도 있습니다. 정확히는 토지나 기업 같은 '생산수단'에 대한 개인의 소유를 금지하는 사회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원칙적으로 생산수단을 공동체가 소유하며,
개인의 소유를 금지합니다.    

 

사회주의의 기본 속성 중 하나가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무상의료는 사실 당연한 논리적 귀결입니다. 가정을 꾸리는 데 가장 목돈이 많이 들어가는 영역이 어디일까요? 바로 교육과 의료입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갖기로 합의한 정치체제에서는, 교육이나 의료처럼 큰돈이 들어가는 영역에 대해서는 국가가 이 비용을 보장해 줘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한편, 한국의 의료보험은 북한보다 늦은 1963년에 비로소 제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 의료보험법을 제정, 시행합니다. 그러나 1963년의 의료보험법은 사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임의가입’이라는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에 명목상의 제도화에 불과했습니다. 다수 국민들 입장에서는 굳이 보험을 들어야 할 동기가 크지 않았던 거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남북간 경제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4.19 혁명이 일어나고 뒤이어 박정희 정부가 5.16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았던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남한은 북한에 비해 경제력 면에서 다소 뒤처진 상태였습니다. 초기 조건의 차이가 영향을 미쳤는데요, 북한 지역은 광물 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해방 전 일본이 대륙 진출을 위해 중공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구축해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남한은 농업과 경공업 위주였죠.     


이는 의료보험체계 구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금융상품으로서의 보험은 최소비용 지출을 통해 미래에 다가올 수 있는 큰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상품입니다. 그런데 1963년 당시 한국의 상황은 개인이 적극적으로 의료보험을 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GDP는 146 달러로 시에라리온(144달러)이나 수단(139달러)와 비슷한 수준이었어요. 전세계 평균인 524 달러의 1/3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당장 먹고살기도 어려운 판국에, ‘옵션’인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숫자가 많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한국은 경제개발계획의 성공을 통해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북한의 경제력을 차차 따라잡게 됩니다. 반면 북한은 초기 노동력 투입 위주의 경제성장 정책 효과가 퇴색되고, 남북 대치 상태에서의 군사력 지출이 늘어나게 되면서 점차 경제성장 동력을 상실하고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초 남북간 대화채널이 구축되면서 북한이 무상의료를 체제선전의 도구로서 활용하게 되자, 박정희 정부는 당시의 남한 경제력으로는 무리라는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6년 의료보험법 개정을 강행합니다.     


1977년 7월,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확대를 골자로 한 '의료보험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었습니다. 정부가 대기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직장의료보험을 가입하도록 강제하면서 보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기본적인 가입자 풀이 확보됩니다. (그럼에도 1977년 시점 한국의 의료보험 가입자는 당시 인구 3,600만 명의 10%에 미치지 못하는 320만 명 수준이었습니다.)     


한국의 의료보험은 이후 농어촌 지역에 이어 도시지역으로까지 지속적인 적용 대상을 확대, 1989년 무렵이 되면 사실상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이 됩니다. 1977년 당시의 의료보험 도입이 북한의 무상의료정책에 수사적으로, 즉 의미 차원에서 대응하는 성격이었다면,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실질적으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건의료체계를 갖출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의료보험은 2000년 건강보험으로의 재편을 거쳐 2022년 현재까지 많은 국민들에게 만족도가 높은 사회보장제도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죠.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사회 제도에 북한과의 체제 경쟁이라는 맥락이 숨어 있었던 겁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 계기, 7.4 공동성명     


40여년 간 이어진 남북 체제 경쟁이 한국 사회 형성기 제도들에 미친 영향들과 함께 역사적 이정표 하나를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1972년에 있었던 '7.4 남북공동성명' 입니다. 1987년 헌법은 물론, 이후의 남북관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이니까요.     


7.4 남북공동성명을 소개하고 있는 KBS 다큐멘터리 (2013년 방송)

1972년 남북은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에 대한 기본 원칙에 합의합니다.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말이죠. 그러나 곧이어 박정희 정부는 10월, 체제안정을 구실로 비상계엄령을 선언하고 제7차 개헌을 시도합니다. 이것이 역사책에서 한 번은 봤을 법한 '10월 유신'이며, 그 결과물로 '유신헌법'이 등장합니다.     


유신헌법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국회 외에 별도의 입법기관으로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설치합니다. 이름에서 알수 있듯 '통일'을 전면에 내세운 이 기관은 대통령 선출권과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선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기관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북한 역시 1972년 12월 27일, 유신헌법이 공포된 날과 같은 날에 헌법 전부개정안을 채택함으로써 지배체제의 변화를 꾀했다는 것입니다. 즉 남과 북 모두 1970년대 각자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통일’을 활용했던 셈입니다. (북한의 경우 개정 헌법 제 9조를 통해 7.4 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하였던 바와 같이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 투쟁한다.’라는 조항이 추가되었지만, 헌법 개정의 근본 목적은 주석제를 새로 만들고 주체사상을 명기하는 등 김일성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의 의미는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겁니다. 1970년대 초는 남북한의 국력이 균형점에 있던 시기입니다. 남한의 경제력이 신장되면서 북한을 근소하게나마 앞서기 시작했고, 국제적으로는 냉전기 미-소 대립이 완화되는 데탕트(긴장 완화) 국면이 형성되던 때였죠. 비록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기는 했으나, 20여년 간의 대립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불완전하게나마 인정했다는 점은 이후의 남북관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1972년 2월, 닉슨과 마오쩌둥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데탕트의 상징적 장면이며, 7.4 남북공동성명 다섯 달 전이기도 하다. 미국국립문서관리청 NLRN-WHPO-8649-01


헌법에 통일을 추구하는 제 4조가 새로이 추가되었던 1987년은 이러한 과거 40여년 간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남북은 각자의 정부를 수립한 후 대내외적으로 체제 경쟁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첫 40여 년을 지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1919년 임시 헌법은 물론 1948년 제헌 헌법 수립 당시에도 명문화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통일’에 대한 관념을 점차 구체화시켰던 거죠.     


하지만, 1987년까지도 사실 2022년 현재처럼 모든 면에서 남한이 북한을 완전히 압도하는 형국은 아니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여전히 얼마 전까지도 남한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앞섰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냉전이 이어지고 있었던 시절이었으므로 구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우방으로부터의 지원도 있던 시기였어요. 단적으로 1984년 북한에 홍수가 났을 때, 북한은 남한 측의 수재의연금 지원 제의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1987년은 아직 국제사회에서도 남북한 체제경쟁이 이어지고 있었던 때입니다. (남북한은 1991년에 UN 동시가입을 이룹니다. 당시 벌어졌던 남북간 경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2021년 개봉한 ‘모가디슈’가 있습니다.)     


모가디슈(2021)는 1990년대 초반의 남북간 체제경쟁 시기에 일어난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다.


2022년 한국에 살며 북한을 읽는다는 것     


영화 ‘해리포터’를 보면 호그와트의 마법사와 학생들은 누구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해리포터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악의 마법사 ‘볼드모트’죠. 1987년 헌법 개정 당시의 ‘북한’은 한국 사회에 있어 아마도 그러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원래는 같은 뿌리였고, 40여년 간의 분단을 거치는 동안 체제 경쟁에서 근소하게나마 우위를 점한 것 같기는 하지만, 군사/경제/외교 등 모든 면에서 제대로 붙는다면(?) 과연 이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던 시대였을 거예요.     


그런데, 1987년으로부터도 벌써 30여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짜여진 코드가 2022년 한국인들의 전반적인 생활 양식을 규정하고 있어요. 몸은 자랐는데 옷이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요?     


북한법 연구자인 권은민 변호사는 저서 <북한을 보는 새로운 시선>에서 1987년이 갖는 역사적 의미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시점에는 더 과감한 상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북한을 한반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하고,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더이상 인정하지 말자는 견해입니다. (북한이 대한민국의 일부가 아니라고 법적인 해석을 내놓는다면, 당연히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게 되겠죠.)     


물론, 이와 같은 입장이 현실 속에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헌법이 개정되어야 하는데, 국회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헌법 개정은 비단 남북문제 뿐만 아니라 그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다양한 변화들을 동시에 담아내야 하는 고난도의 사회적 합의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현재의 룰, 그러니까 1987년 헌법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현재의 법률 및 사회구조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봅니다. 헌법 제 1조와 2조는 100년 전에 쓰여졌어도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다시 왕정으로 돌아갈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제 3조와 4조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죠.      


논의를 시작하려면, 남북분단을 전제로 짜여져 있는 현재의 한국 사회가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어떠한 곳에서 계속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로 인한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화에서 그런 문제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출처:

미국국립문서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https://catalog.archives.gov/id/194759


UnsplashHush Naidoo Jade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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