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름
친구들이 “네 자식에게는 절대 물려주지 마라”라고 말한다. 술자리에서, 온라인에서 몇 번이고 쓴소릴 한다. 너만 힘들면 되지 왜 앞길 창창한 애의 미래까지 힘들게 하냐며.
야구 이야기다.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내가 응원하는 팀은 순위표의 맨 아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십몇 년간 비슷한 양상이었던지라 별로 놀랍지는 않다. 경기 결과를 확인할 때의 심정은 토요일 저녁 로또 결과를 맞춰보는 마음과 비슷하다.
“혹시...?” 이후엔 곧바로 “역시...”가 따라붙는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가기 전에는 그래도 에이스 보는 맛이라도 있었지. LA를 떠나 토론토에 정착한 류현진을 생각하면 그것 또한 꽤나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 족하니 다른 팀으로 전향하라고 권한다. 김광현은 떠났지만 SK와이번스는 좋은 팀이다. NC(North Carolina)에 살다 왔으니 NC다이노스는 어떤가? 요즘 구창모 끝내주지 않나.
나는, 그럴 수 없다. 야구를 아예 안 볼 망정, 팀을 바꿀 순 없다.
1987년,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 회원이 되었다. 내 유년기 기억의 대부분이 그렇듯, 그날 야구장에서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노랑 꼬까옷을 입은 동생이 졸졸 뒤를 따랐다. 회원가입을 야구장에서 받았던 건가. 지금은 영 어색한 영어식 이름으로 바뀐, 예전엔 공설운동장이라고 부르던 그곳에 들어선 아버지의 얼굴은 자못 결연했다.
“아들아, 너도 이제 대전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독수리가 새겨진 야구모자와 자줏빛 야구점퍼를 받아 들고 나는 멋모른 채 환하게 웃었다. 태어나서 처음 입어
보는 유니폼이 신기하고 마냥 좋았다.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동생은 샘이 났는지 자꾸 모자를 뺏어가려 했다. 서로 티격태격하고 있으니 아버진 두 아이들 손에 (해태!) 부라보콘을 한 개씩 쥐어줬다. 세상에, 슈퍼집 애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다니. 가게 보던 엄마가 알았으면 까무러칠 일이다.
운동장을 돌아 나오던 길에 아버지는 동상 하나를 가리켰다.
“저 사람 누군지 모르지?”
알 턱이 없었다.
“윤봉길 의사다. 도시락 폭탄을 든.”
자세히 보니 청동상은 왼쪽 손을 먼 곳을 향해 위로 쳐들고, 반대편 오른손에는 무얼 쥐고 있었다. 동상 옆을 걸으며 아버지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비장한 행진곡 스타일의 이 노래는 군가 ‘6.25의 노래’였다. 멜로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난 아버지와 함께 몇 번이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집에 왔다. 노래는 머리에 남았고, 그날 오후의 평화로운 정경도 가슴에 같이 남았다.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을 유난히 강조하던 그날 기억만 없었다면, 신문 스포츠면에서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란 말을 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아버지의 곡조와 함께 떠오르지 않았다면, 나는 과감히 다른 팀을 골라 마음껏 야구를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보살팬이 되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선 왠지 더 야구를 챙겨 보게 된다. 사실 그날 이후 아버지랑 같이 야구장에 간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처음 느낌이란 것이 그렇게 참 강렬하다.
아들은 야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혹시 축구는?’이라고 생각했으나 역시나 관심이 없다. 요즘 이 녀석의 관심은 온통 <신비아파트>와 <포켓몬>에 쏠려 있다. 젊디 젊은 나이에 아파트와 진화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이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 건가.
수현이를 한화 이글스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킨 해,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기적을 맛봤다. 수현이가 수리 유니폼을 입고 늠름하게 야구장 앞에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한다. 다시 가을 점퍼를 입고 야구장에 가게 되는 날이 온다면, 아들은 얼마만큼 자라 있을까. 그때도 수현이는 아빠를 따라 이글스를 응원하고 있을까, 아니면 쿨하게 다른 팀으로 떠나 있을까.
아들, 아빠는 계속 이글스에 남아 있겠지만, 앞으로 네가 정말 좋아하는 선수와 팀이 생긴다면 충분히 존중해줄게. 야구란 게 참 재미있는 스포츠야. 피카츄가 라이츄가 되고 파이리가 리자몽이 되는 것처럼, 앳된 신인 선수가 어느덧 리그를 씹어먹는 선수가 되고, 아주 가끔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가 되기도 해.
야구장을 오가며 쬐었던 햇살과, 어느 날 무심코 들은 노래가 사람의 미래를 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아빠는 그렇게 믿는단다.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활보할 날이 오면, 같이 한 번 야구장에 가지 않으련? 아빠는 윤봉길 청동상이 요즘도 제 자리에 잘 있는지 너무 궁금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