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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무대

1. 여름

by 자민


<우정의 무대>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송되던 시절이 있었다. 보통 일요일 오후나 저녁때 방송됐는데, 아버지는 그 시간만 되면 ‘뽀빠이 나올 시간’이라며 헐렁한 차림으로 거실에 앉아 TV를 뚫어지게 보았다. 요샛말로 최애 프로그램이라, 본방사수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우정의 무대>의 핵심은 지금도 가끔 <진짜 사나이> 같은 군인 예능에서 패러디하는 '그리운 어머니' 코너. 서로 자기 어머니가 면회 온 게 확실하다고 외치는 병사들이 나와 사연을 말하고 나면, 이 부대에 자식을 보낸 어머니 중 한 사람이 나중에 등장해 서로 상봉하는 코너였다.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놓고~” 이렇게 시작하는 주제가에 맞춰 장병들이 “어머니!”하고 목청껏 부르면 무대 뒤에서 어머니가 등장한다. 당시 십 대 초중반이었으니 아직 군대라는 집단 생활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엔 꽤 거리가 있던 나이였다. 하지만 ‘그리운 어머니’는 그런 내게도 뭔가 찡한 느낌을 갖게 하는 코너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똑같은 형식의 프로그램을 매주 보면 물리는 법이다. <복면가왕> 뒤편에 있는 가수가 더 이상 예전만큼 궁금하지 않듯, 사람은 지속적인 자극에는 무뎌진다.


그런데 ‘그리운 어머니’의 클라이맥스인 “엄마가~” 멜로디가 나오기만 하면 아버지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그렁그렁 눈물 콧물을 짰다. 어떻게 매번 저러실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사춘기 시절의 작은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그땐 그저 ‘우리 아빠 참 주책이다··· 아무리 군대 시절이 떠오른 대도 남자가 눈물이 저리 많아서야’하고 지나갔다. 그땐 감성 충만한 그분의 다른 모습을 겪기 전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세상을 뜬 이후, 어머니를 비롯해 친척들로부터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어린시절 이야기를 더 많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본인 입으로는 절대 아들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내가 태어나기 이전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 그때 비로소, 십 대 때 가졌던 아주 사소한 미스터리 하나가 스르륵 풀렸다.




아버지의 고향은 작은 읍이었다. 아버지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 진학을 위해 엄마 품을 떠나 대전 외삼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고모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그때부터 숫기 없고 내성적인 편이었다. 열서너 살 어린아이가 엄마 품을 떠나 더부살이를 하며 도보로 편도 두 시간 걸리는 통학길을 어떤 생각으로 다녔을지, 서른 살이 훌쩍 넘은 나로서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스무 살 갓 넘어 군대에 간 아버지는 36개월 가까이 군생활을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장남 면회를 한 번도 가지 않으셨단다. 할머니 성격과 당시 가족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면 할아버지만 두어 번 면회 가셨다는 것이 납득이 아주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긴 군생활 동안 아버지가 느꼈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이미 내가 공감할 수 있는 한계치를 벗어난 곳에 뚝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겠지.


<우정의 무대>를 보던 당시, 아버지는 '그리운 어머니'에서 “어머니~!”를 같이 외치며 그시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소환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을 매주 반복하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기억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다보면 어느덧

나보다 젊거나 같은 또래의 한 남자와 만나게 된다.


한때는 부대 내 밴드에서 리드보컬을 하고, 틈만 나면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사람. 좀 더 나이 들고서는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주말까지 일하는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내며 분투했던 사람.


그동안 단편적으로 머릿속에 입력해뒀던 과거의 광경들을 꺼내다보면 아들이 아닌 조금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그시절 아버지 마음을 추체험하게 된다.


완벽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사춘기때는 아버지가 영 마뜩잖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되어 보니 이제 비로소 아버지라는 입장의 무게를 느끼고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말과 글로는 도저히 습득할 수 없는, 체험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이해의 영역이다.


1980년대에 아빠 타이틀을 얻게 된 아버지는 시대의 한계 속에서 본인의 최선을 다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불만스러웠던 점만 보였던 것은, '아버지도 처음부터 아빠였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땐 (당연히)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아빠는 태어날 때부터 아빠였다. 아빠니까 뭐든 할 수 있는 맥가이버고 슈퍼맨이고,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주는 배추도사 무도사 머털도사여야 하는데,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아빠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저 그땐 미처 몰랐다.


그래서 옛 기억을 더듬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여러 실수와 사건사고들이 더욱 도드라지게 튀어오른다. <우정의 무대>를 보며 눈물 콧물 짜던 모습, 아들딸 몰래 로또 사서 맞춰보던 모습은 한때 품었던 멋진 아버지상과는 한참 떨어져 있지만, 지금 내겐 그 자체로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꿈에서나마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기억이다.


그 시절 아버지도 지금의 나만큼이나 부족함 많은 아빠였구나, 하고 아버지에 대한 이해를 한뼘씩 넓혀간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지금 내 나이와 같거나 더 어린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 이를테면 아버지가 서른 살 때, 마흔 살 때 겪은 일들을 복기해보는 식이다. 소소한 것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해 있던 몇 가지 중요한 이벤트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시대가 많이 변한 만큼, 난 그 시절 내 아버지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괜찮은 아빠로 아이들에게 기억되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도 있다. 혼자만의 야심(?)으로 그치지 않길 바라며 퇴근길에 아이들과 다시 눈을 맞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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