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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Jul 24. 2022

엄마의 복직에 대처하는 아이들의 자세

엄마, 우리가 연습 한 번 해볼게요.







3년 만에 복직한다고 난리도 아니다. 휴지, 치약, 상비 식품 등 온 집안에 재고 파악과 추가 구매는 물론이고,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단장하는 것, 몸에는 아픈 곳이 없게끔 병원이나 운동을 하러 가는 것, 다시 사무실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게 될 생활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까지. 그 많은 복직 준비 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로 인해 상처받지 않고 이 시간을 독립적으로 굳세게 살아나가는 데에 꼭 필요한 개념으로 이해하길 바라는 것이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이틀 후면 엄마 회사 다닌다고 이야기했다. 그동안 쉬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수도 없이 해온 이야기이다. 얼마 후면 엄마가 회사에 가야 하니, 너희가 엄마 많이 도와줘야해 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차곡차곡 듣고 있다가 오늘은 이렇게 대답한다.



"엄마,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시간을  써주세요.

우리가 학교 갔다 와서 엄마 오기 전까지  하면 되는지.

그리고 엄마 내일 운동하러 가거나 집에 오지 말고 밖에 있어요.

우리가   엄마 없이 해볼게요."



아이도 다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복직한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며 온 집안을 들었다 놨다 할 때마다, 아이도 마음의 준비를 해온 듯하다. 내일은 복직 하기 하루 전날이다. 엄마는 마치 회사에서 늦게 퇴근해서 돌아오는 것처럼 집에 있지 말란다. 자기들끼리 학교 갔다 와서는 씻고, 시간을 보내며 엄마를 기다려보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유 시간을 갖기 힘들었다. 남편과 극적으로 합의가 되어 주말에 단 몇 시간이라도 나갈라치면 신발장에서는 눈물의 이별의식을 치러야 했다. 엄마 빨리 들어오라고, 우리는 엄마 없으면 안 된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가 한 살씩 들수록 차츰 엄마의 부재에도 타격을 받지 않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엄마의 복직 이후 생활에 적응해볼 테니 예행연습을 하기 위해 일부러 자리를 비워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그만큼 엄마가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자기들끼리도 연습해서 확인하고 싶고, 나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 장소에 있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었다. 주눅 들어서 눈치 보고 당최 성장과 성숙은커녕 영혼을 버리고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해야 무탈한 그 자리가 싫었다. 신념을 가지거나 영혼을 가지면 오히려 불편해지는, 꿈을 가졌다가는 현실이 더 괴롭게만 느껴지던 그 자리를 정말이지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 먹이고, 좋은 곳에 데리고 다니고 싶다. 그러려면 안정적인 직업과 매달 꾸준히 들어오는 그 월급이 필요하다.



눈물이 핑 도는 그 이유 말고 사실 내 가슴속에 꼭꼭 숨겨둔, 회사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것은 진실이다. 나는 늘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업무도, 인간관계도, 그 공간과 시간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지내는 것도. 늘 능력 있는 사람, 당당하고 목소리 큰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내가 불쌍했고 싫었다. 그런데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꼭 극복해보고 싶어졌다. 그 공간에서 지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으로, 불편하지도 않고 어색하거나 쑥스럽지도 않은 상태를 거쳐서, 어느 정도는 제 목소리도 낼 줄 알고 소신과 심지를 갖고 업무도 한 번 당차게 해내 보고 싶어졌다.



이젠 그럴만한 배포와 희망을 나도 모르게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앞세워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삶에 바빠서 남을 그렇게 오랫동안 흉보거나 관심 가질 만한 틈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더구나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이제는 어느덧 후배 직원들이 너무 많이 생겨버려서 흔들리는 자아를 붙잡는 시간보다는 어쩌면 새로 들어오는 능력 있는 직원들이 우리 조직에 잘 적응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할 입장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모양새를 이번에 복직하고 나서 한 번 잘 만들어보고 싶다. 이제는 아이 둘의 지지를 받으며 마치 세 사람분의 에너지를 내면에 가진 듯하게 이틀 후에 3년 1개월 만의 복직 길에 나설 참이다. 오늘은 난생처음 내 손으로 내외부 세차도 하고, 사무실 슬리퍼도 새로 구매했으며, 아이들 도시락 반찬으로 해줄 식재료도 주문해두었다. 이젠 에어프라이어 사용법에도 능숙해졌고, 복직할 팀의 동료들도 먼저 연락을 취해오고 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환영하고 반갑다는 메시지를 받으며, 어떤 마음으로 사무실로 복귀해야 할지 더욱 선명해졌다.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어떤 젊은이는 그토록 입사하고 싶어서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그 회사를, 어떤 아이 둘 엄마는 그토록 적응하지 못하고 자그마치 17년을 '진로 고민'을 하면서 보냈다. 이제 17년간 하던 바로 그 고민, '내가 이 조직에 적합한 사람인가?'는 아름답게 보내주고, '나는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하며 내 삶의 가치를 찾고, 내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하면서, 내 주위를 잔잔히 밝힐 수 있을지'를 시작 지점부터 긍정 코드로 한 번 짜 보아야겠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는 근거 있는 잔잔한 자신감이 피어오른다. 아이들이 예행연습을 하는 그 시간에, 나도 회사에서 밝게 웃으며 자신감 있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내 모습을 미리 새겨보아야겠다.



아들과 딸 덕분에 나는 또 새로운 도전을 기분 좋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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