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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낫배드파더 Apr 13. 2022

'나 아니면 없다'… 좋은 아빠의 길이란

새벽녘에 아이 열이 37.7도까지 올랐다. 아침까지 열은 그대로였다. 병원에서 입을 벌리고 찍은 목 사진을 보니 편도가 붉게 부어 올라 있었다. 의사는 "코도 꽉 막혀 있네요"라고 말했다. 지난겨울 내내 시달렸던 증상 그대로였다. 콧속이 붓고 비염과 축농증이 심해지면서 고열로 이어지는 악순환. 결국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항생제 내성이 생기지는 않을까, 부작용이 있지는 않을까 하며 또 속앓이를 했다.


아내와 의사 사이 오가는 짧은 대화에서 나는 겉돌았다. 의사는 약에 든 해열제의 종류, 대체 해열제의 이름과 투약 간격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아내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는지 의사와 능숙하게 대화했다.


두 사람은 배드민턴 동호회 선수처럼 사이좋게  말을 주고받았다. 마치 "퐁- 퐁-"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따라가기 힘들었다. 아세트 어쩌고(아세트아미노펜), 빨간약, 2시간, 교차 복용 등의 암호 같은 말이 들렸다. 두 사람 사이에 힘차게 오간 말은 내 귓가에서는 힘을 잃고 희미하게 흩어졌다. 사전 취재를 충분히 하지 않은 채 급히 전문가 멘트를 따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내는 예전에 아이에게 어떤 해열제가 잘 듣는지, 어떻게 복용시키면 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준 적이 있었다. 기억은 가물가물했다. 실제로 해열제를 먹여보라고 하면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황당한 일이었다. 만약 아내 없이 혼자 병원에 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의사가 "빨간약 집에 있어요?"라고 물었다면 아마 "아, 상처에 바르면 거품 나는 그 약이요?"라고 되물었을지도 모른다. 식은땀이 흐른다.


'해열제 투약 프로세스'는 풋내기 아빠 버전에서 막 업데이트를 시작한 내게 아직 탑재돼 있지 않았다. 홀로 아이를 볼 때 고열이 나거나 아픈 경우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간 적이 많고 아내에게서 해열제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정작 내가 할 일이라고 여긴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열 때문에 지친 모양이었다. 평소 낮잠은 2시간 정도 자는데, 이날은 3시간 넘게 깨지 않았다. 그러고도 점심밥을 먹은 이후 감기약을 먹고 또 잠들었다. 양해를 구해 오전 재택근무했던 아내는 점심 무렵 직장으로 출근했다.


아내는 집을 비웠고 아이는 잠든 매우 바람직한 상황. 여유롭게 소설을 읽고 있는데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아내에게 아이가 깊이 잠들었다며 신나게 얘기하는데, "열이 몇 도예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아차' 싶었다. 아이를 재우기 전 무릎에 앉혀 동화책을 읽어줄 때 몸이 따끈따끈했던 감촉이 기억났다.


부랴부랴 온도를 쟀다. 38.2도였다. 새벽보다 열이 더 올라 있었다. 해열제가 포함된 약을 먹인 지 1시간 30분이 지났는데 열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또 속으로 자책했다. '아이는 열이 펄펄 나는데, 아빠란 사람이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구나.'


곧 아내의 지도편달을 받았다. 아내는 해열제를 보관한 위치와 다음에 먹일 시간을 알려줬다. 그리고 ‘열나요’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설치하라고 알려줬다. 경계근무에 실패한 군인 같은 마음으로 해열제를 꺼낸 뒤 앱에 아이의 온도와 측정 시간을 기록했다.


아내는 답답했을 법한데도 단 한마디의 책망도 하지 않았다. 눈치 보게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눈치가 보였다. 속이 타들어갔지만 티 내지 않았다. 당황했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아마 CCTV로 보듯 허둥대는 내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 아니면 아무도 없다.’


‘좋은 아빠’의 길은 이 같은 인식에 도달한 뒤에 비로소 시작된다고 감히 적는다. 그동안 아내의 행동을 보면서도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 있었다. ‘여기까지 하면 되겠지’ ‘이건 아내가 하겠지’라는 속마음을 스스로에게 들켰다. 기본 마음가짐이 공격형이 아니라 수비형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낮 시간만큼은 아이를 오롯이 혼자 돌보는 요즘, 비로소 양육자의 의미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내몰리자 놓친 것들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아이의 웃는 모습, 예쁜 모습을 보는 데서만 육아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행복감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서 가끔씩 찾아오는 선물 같은 것이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인데 말이다.


이튿날 아내는 재택근무를 했다. 아이가 아픈데 회사에 있으려니 아무래도 불안했던 모양이다. 아내는 지친 표정으로 "아이가 아프니 회사에 있어도 괴롭고, 집에 있어도 괴롭네요. 괴로운 건 똑같아요. 조금 종류가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기자답게 "그래도 하나를 고르라면?"이라고 추가 취재를 시도했다. 그러자 아내는 "그래도 굳이 뽑자면 회사에서 일하는 게 조금 더 힘들다"라고 했다. 아이의 상태를 카카오톡 메시지로 전해 들으며 답답해하는 것보다는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게 낫다는 이유였다. 이 마음이 내게도 동기화되는 날이 언젠가 오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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