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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Oct 09. 2022

호야 꽃을 보며 나에게 묻는다

[잘 견뎌온 시간 ]


3년 전 봄이었다.

키우기 쉽고 오래 기다리면 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화훼농원 사장님의 권유로 호야 화분 하나를 들여놓았다.


물을 자주 주지 말고 바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남편의 말에 나도 따라 그렇게 했다.

만져보고 흙이 아주 말랐을 때 물을 주었고,

한여름에도 선풍기 바람은 언제나 식물에게 양보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록 꽃은커녕 어쩌다 바라보면 잎과 가지도 크는 것 같지 않았다. 늘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식물 하곤 안 맞는구나' 하며

언젠가부터 베란다 한편에서 두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 지난주에 화분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했. 가만히 다정하게 나를 바라보는 호야 꽃을.


오월에 핀다는 꽂이 어쩌다 시월에 나에게 왔을까.

무심한 주인 탓에 서럽고 원망도 많았을 텐데

내색 하나 없이 꽃송이들 곱고 단아하게 피었다.

햇빛을 가득 품어서 연분홍 색이 더  은은하게 반짝거렸다. 

기특했다. 고맙고 대견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어제 고창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인디언 카이오와족은 시월을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는 달"이라 부른다고 한다.

어쩌면 호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나에게 진정한 인내와 기다림을 보여주기 위해 온 게 아닐까.


가만히 나에게 물어본다.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켜온 호야처럼

나를 꽃피우기 위해 끝까지 참고 기다려며 우직하게 써 왔는가.

온유와 겸손으로 품격 있게 내려놓았는가.

잘 견뎌온 삶이었던가.

27년 동안 간호사로써 최선을 다했었던가.

오히려 노력한 만큼 꽃 한번 못 피웠다며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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