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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Apr 11. 2023

시골살이 매뉴얼

시골살이가 더 힘듭니다.  




너무 오랜만에 다시 글을 씁니다. 지난 3개월 동안 귀농한 남편을 따라 저도 전북 고창에 내려갔답니다. 아직 집이 없어서 6평짜리 농막에서 살았지요. 세탁기도 없어서 그 춥고 험한 겨울 내내 손으로 빨래를 했지요. 진돗개 산이, 달이도 훌쩍 커서 남편이 산책할 때마다 쩔쩔맵니다. 3월 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정말 바빴답니다. 저희 농막 앞 뜰과 뒤뜰에 동백나무, 체리나무, 홍매화나무, 감나무를 심었어요. 작약과 수국 모종도 심고요. 메리골드, 로즈마리, 라벤더 등 씨앗도 뿌렸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시간이 다르고, 꽃도 제각기 피는 때가 달라서 오랫동안 꽃들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참, 유튜브도 시작했어요. 구독자나 조회수는 얼마 안 되지만 영상촬영 방법을 배워가면서 귀농한 아내의 시골살이를 담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motoongii)



연우의 뜰 다육하우스입니다.




시골에서 살려면 제일 먼저 인사를 잘해야 합니다. 마을 걸어 다닐 때 인사하는 것뿐 아니라 차로 이동할 때도 마을 어르신을 만나면 창문을 내려 "안녕하세요~어디 가세요? " 여쭙고 같은 방향이면 함께 태워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시어머님이 욕먹지 않으세요. 시골 어르신들 수다의 대부분은 남의 자식들 이야기랍니다. 오일장날 읍내에 나가면 마을회관에 드릴 간식거리를 사 오면 좋아요. 잡채처럼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하면 이웃에 나눠드리면 오히려 고구마나 나물들을 되돌려 받아요. 마을회관 어르신들이  '며느리 내려와서 너무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니 시어머님께 효도가 따로 없지요.


몸이 편찮으신 분이 있으면 먼저 찾아가 봬야 해요. 명색이 서울 큰 병원 다닌 간호사인데 모른 체 하면 안 되니까요. 얼마나 아프신지 직접 확인해 보고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 정도라면 자식들에게 연락을 드립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저희 차로 읍내 다니시는 병원으로 모십니다. 마을의 행사가 있을 땐 먼저 가서 준비하고 마지막 정리와 청소도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회사처럼 출퇴근이나 휴일이 있는 게 아닙니다. 평균  하루 근로시간이 12시간이 넘을 때도 있어요. 새벽에 일어나 잠자리 들 때까지 주말도 없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지켜야 해요.  게다가 집 앞에 약국도 없고 병원도 없는 촌구석에서는 진통제, 소화제, 감기약,  화상연고, 상처연고, 파스, 박카스, 쌍화탕등 비상약도 종류별로 다 챙겨야 합니다.


밥상은 소박하고 단순하게 차려야 해요. 아침은 우유와 콘프레이크로, 남편이 일하다 보면 식사 때를 놓치기 때문에 점심식사만큼은 제대로 밥상을 차려주려고 노력했어요. 대부분 밭에서 나고 자란 냉이, 달래, 상추, 파, 양파 등을 밑천으로 반찬을 만들고요, 계란은 이웃 마을 양계장 사장님께 주문하면 마트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딸기는 우리 마을 딸기 하우스 농장에서 직거래로 사면 덤으로 더 받을 수 있어 좋답니다.


서울에서 왔다고 잘난 척하면 왕따 당합니다. 항상 겸손해야 해요.  90세 넘는 어르신들이 가만 놔두지 않거든요. 인생자체가 평생 농부였던 그분들에게는 저희 부부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보이실 테니까요. 그렇더라도 공부하는 자세는 잊으면 안 되겠지요.  


밥벌이의 수단이 아닌 귀농! 수입이 없는 시골살이는 정말 가난하고 불편합니다.  당장 지난겨울 난방비와 전기세 폭등, 말도 안 되게 비싼 의료보험료를 내야 하는데 정말 난감했답니다.  통장에 돈은 점점 줄어드는데요 농사도 지어야 하고 생활비도 충당해야 하니까요. 얼마 전에는 시어머님이 넘어지셔서 척추 골절이 되셨는데요. 지금까지 살면서 남편의 그런 막막한 표정은 살면서 처음 본 것 같아요.


귀농은 밥벌이의 수단이 아니랍니다. 부자가 되기에는 어림도 없지요. 도시의 삶에서 시골 삶으로 패러다임이 모두 바뀌는 일이에요. 낭만적인 풍경과 한가로움, 전원생활의 로망을 꿈꾸던 저에게는 3개월 간 시골살이가 뒤통수 맞은 기분 같았습니다.  

맑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뜨고, 눈부신 아침햇살을 바라보며 모닝커피를 마시며, 주홍빛 노을과 길게 늘어선 그림자로 하루일기를 쓰는 내 모습. 그건 정말 꿈이었더라고요. 빛바랜 소망 같은.


고창 용두마을 해지는 풍경입니다. 더 멋진 풍경이 많은데요 안타깝게도 사진을 못 찍었어요


앞에 있는 진돗개가 '산', 뒤에 있는 진돗개가 '달'이에요. 정말 잘생겼지요^^  


농부 남편이 일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요 저 다시 취직했어요. 오십이 넘어 새로운 직장에 취직했다는 건 하늘이 주신 선물이겠지요. 하지만 직장생활은 정말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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