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한 편지]
바람이 바뀌었어요. 조금은 뾰족해지고 차갑고 빨라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올 한 해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처럼 순식간에 지나왔네요.
조만간 배추, 무 등 수확을 하고 나면 텅 빈 밭들이 우리를 맞이하겠지요.
지난 추석 명절에 저는 처음으로 땅콩을 수확을 해봤어요.
귀농한 남편과 시어머님 두 분이서 작업하시기엔 어마어마하거든요.
한 손이라고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휴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땅콩작업을 했지요.
고창 땅콩은 알이 통통하고 맛이 고소하기로 유명하답니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이라는 詩에서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라고 했는데요, 땅콩도 그래요.
지난여름 맹렬하게 타오르는 태양과 무더위, 몇 번의 태풍과 비바람을 견뎌낸 노란 땅콩꽃.
꽃이 지고 나면 꼬투리가 땅 속을 파고 들어가 땅 속에서 열매를 맺어요. 참 특이하지요.
그래서 더더욱 땅의 환경이 가장 중요한데요. 여기에 땅콩이 맛있는 이유가 있어요.
전라북도 고창은 서해안의 해풍과 비옥한 붉은 황토, 배수력도 좋고 환경오염이 없는 청정지역이라는 거죠. 그러니 고창땅콩은 한 번만 먹어보면 그 맛에 중독되어 헤어 나올 수 없답니다.
껍질째 수확한 햇땅콩은 볶아 먹어도 맛있지만, 삶아 먹어도 맛있어요.
수확할 시기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먹거리랍니다.
저는 늘 껍질을 벗긴 땅콩을 프라이팬에 뭉근하게 볶아서만 먹어봤는데요.
시어머님께서 알려주신 비법을 소개해 드릴게요. 압력밥솥에 물을 잠길 정도로 붓고 소금을 살짝 넣고 삶는 거예요. 5분 정도만 삶으면 오독오독하고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답니다.
원래 농사의 農(농) 자는 노래 曲(곡) 자 밑에 별 辰(진) 자가 붙어 만들어진 글자라고 하네요.
辰자는 ‘별’이나 ‘새벽’, ‘아침’이라는 뜻을 가졌는데요. 辰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부에서는 조개를 본뜬 것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농기구의 일종을 그린 것이라며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별의 노래’라는 뜻이라고 하니... 얼마나 낭만적인지요.
하지만 실제 농부(農夫) 일이란 글자처럼 아름답기는커녕 고되고 험난합니다.
게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마음을 주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요.
심지 않은 것을 거두려는 허황된 기대를 버려야 해요.
하늘의 태양과 별과 바람과 비에 순종하는 마음을 키워야 하고요.
오랜 기다림에 절망하지 않아야 해요.
추운 겨울에도 봄이 오면 또다시 씨를 뿌리겠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반드시 되새겨야 하는 마음은 폭풍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에요.
왜냐하면 낙심할 때가 오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귀농의 희망과 기쁨은 잠시뿐이고요.
고난과 절망에 맞서 치열하게 견뎌야 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죽을 것 같은 고통과 고비를 넘기지 않고서는 풍성한 추수를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저도 하루하루 배우고 있답니다.
우리의 마음도 밭과 같아서요.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괴롭고 악한 마음을 심으면 삶이 무너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니 스스로를 격려하고 가꾸는 마음을 심었으면 좋겠어요.
가꾼다는 것은 돌보는 거예요.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지요
그대와 내가 땅을 사랑하고 정성껏 가꾸는 농부의 마음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인생의 추수철에는 아름다운 별의 노래들로 풍성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