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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Aug 28. 2023

살아 낸 것들이 너무  짠해요. 누구라도 다 짠해요

[안온한 편지]


저는 '연우의 뜰'에서 주말을 보냈어요.

('연우의 뜰'은요, 작년에 남편과 제가 귀농한 전북 고창에 있는 다육식물 스마트팜 하우스에요.

저는 사정상 다시 서울로 복귀해서 직장을 다니고요, 남편과 진돗개 달이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곳이에요)   


올여름은 태양을 독점한 듯 뜨거웠고, 비가 와도 너무 지겹도록 내렸지요.

텃밭에 심은 옥수수, 토마토, 가지, 호박들이 다 시들었어요.

길가에 심은 해바라기는 씨만 남기고 새까맣게 탔고요.

기특하게 살아남은 메리골드가 앞마당을 주황빛으로 수놓아주었어요



모질게 버텨낸 것들이 다  짠해요.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누구라도 다 짠해요.

매일 밭에 나와 하루 종일 땀 흘리며 고추 하나하나 따시는 시어머님의 굽은 등이,

농사일과 다육식물을 돌보느라 '훅' 늙어버린 남편의 검은 손이,

치매와 맞서보겠다고 애면글면 쓰고, 읽고, 걷는 아버지의 결심이,

새벽마다 식탁에서 홀로 흐느끼던 엄마의 일기장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가정과 직장,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용케 버텨낸 모두가 다 짠해요.



어제는 시간의 힘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귀뚜라미가 요란한 울음소리로 밤을 흔들었어요.

새벽에는 하얀 안개가 자욱했고요. 

그렇게 우리를 괴롭힌 여름이 지나가려나 봐요.


무릎이 꺾일 것 같은 힘겨운 일도, 끝날 것 같지 않은 깊은 슬픔도 다 가겠지요.

시간의 힘이 우리를 지켜줄 거라는 말, 믿기로 해요.

다 지나갈 거에요. 어떻게든 해결될 거에요

 

올 여름, 잘 견디셨어요.

정말 잘하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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