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한 편지]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비가 잦은 계절이기도 하지요.
젖은 나무도 타들어갈 만큼 뜨거운 폭염과 하늘이 구멍 난 듯 쏟아지는 장마가 반복해서 계속되니까요.
참, 잔혹한 여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을 향해 보란 듯이 피어나는 꽃이 바로 배롱나무꽃과 능소화입니다.
배롱나무는 꽃이 오랫동안 피어 백일홍 혹은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 해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대요.
저는요. 아주 오래전 여름 태풍과 함께 했던 나주의 전통마을인 도래마을의 배롱나무를 잊지 못한답니다.
고택의 담장너머로 보이는 분홍꽃, 고택의 기와와 흙 돌담과 어우러진 배롱나무꽃이 거센 빗줄기에도 얼마나 꼿꼿하게 자태를 뽐내던지.
능소화도 만만치 않지요. 능소화(凌霄花) 한자는 능가할 능(凌)에 하늘 소(霄), 꽃 화(花)여서 말하자면 ‘하늘 높이 오르며 피는 꽃’으로 해석할 수 있답니다.
덩굴이 10여 미터 이상 감고 올라가 하늘을 온통 덮은 것처럼 핀다고 이 같은 이름이 생겼다지요.
담장이나 벽을 타고 올라가는 능소화도 예쁘지만요, 고목을 타고 올라가는 능소화가 저는 더 능소화다운 것 같아요.
가장 뜨거운 8월, 장마와 태풍을 견뎌내고 버티며 피어있는 배롱나무와 능소화를 바라보면서 순간 부끄러워졌어요.
‘왜 나에게만 먹구름이 잔뜩 낀 삶인가' 하면서 참고 버티기보다는 겁을 먹거나 도망치거나 숨을 곳만 찾았거든요
귀농한 저희 농막 앞에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찾아오는 이를 반겨주고 있는데요. 내년에는 울타리를 만들어 능소화도 심고 싶어 집니다.
삶이 무거울 때, 삶이 영영 끝나지 않을 우기 같을 때 그럴 땐 배롱나무와 능소화를 보며 마음을 추슬러보려고요. 그렇게 버티며 저라는 한송이의 꽃을 피워내 보려고요.
잊지 말기로 해요 우리.
인생은 결국,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면서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기적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