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연재
존재조차 모르던 먼 친척에게 큰 유산을 상속받고 나는 갑자기 말도 안 되는 부자가 되었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몇 달을 보내니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부자가 되기 전에 썼다 지웠다 넣었다 뺐다 했던 위시리스트마저도 의미가 없어졌다. 원하는 걸 이제 가질 수 있었지만 굳이 가지고 싶지 않아 진 것이다.
그렇게 잠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상태의 나'를 신기해하며 그 시간을 즐겼다.
완벽한 충만함 속에 밀려오는 완벽한 공허함.
그러다 하고 싶은 일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가장 초라했던 시절, 자신의 빛을 나눠서 나를 비춰줬던 아이. 그 아이를 찾아서 내 방식으로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인연이었지만 마음먹으니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작고 초라하고 외로운 아이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어 주었던 아이는 여전히 주위를 환하게 비추는 빛나는 미소를 가진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저렇게 빛나는 사람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그저 돌아서기에는 나에게도 몇 달 동안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이었기에 그냥 그만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명색이 '은혜 갚기'인데 단순히 집, 차, 명품 같은 걸 건네주고 끝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 사람에게 뭔가가 필요하다면 내 시간과 돈과 노력을 다 투자해서 완벽하게 도와주고 싶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돈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라도. 그만큼 어린 날의 나에게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은 내 보이지 않는 호의조차 정중히 거절하듯 완벽해 보였다.
직장과 집, 연애까지 딱히 내가 끼어들 틈이 없어서 돌아서려던 순간, 완벽했던 그 사람의 삶에 균열이 일어났다.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였다.
세상을 비추듯 빛나는 그 미소를 잠시라도 잃고 싶지 않아서 나는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
첫 번째 내 계획은 그렇게도 완벽한 그 사람을 떠나버린 그의 여자친구를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게 해주는 거 것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전 여자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과 결혼해 버렸다.
"이런 미친!"
제삼자인 내 입에서 이런 욕이 나올 정도라면 당사자는 어떤 심정일까.
나의 은혜 갚기 계획은 '복수해 주기'로 바뀌었다. 그는 전 여자 친구를 용서하고 혼자 슬퍼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두고만 보지 않겠다 다짐했다.
이제부터 나는 남아도는 내 시간과 돈으로 최고의 복수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리고 동시에 진행될 또 다른 계획. 그건 바로 그의 빛나는 미소를 지켜주는 것이다. 조금도 침울해질 수 없도록, 모든 상처를 잊어버리도록 그렇게 만들 것이다.
어느새 은혜 갚기의 스케일이 너무 커져 버려 스스로도 흠칫 놀랐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멈출 수는 없다.
'이걸 나 혼자 할 수 있을까? 비밀리에 팀을 꾸려야 하나?'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달릴 생각을 하니 의욕이 불타올랐다. 일단 새벽 러닝을 시작했다.
이 모든 게 그 옛날 나를 향해지어 주던, 빛나는 미소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