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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19. 2018

항해를 시작하는 맛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렇게까지 예쁠 줄 몰랐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바르셀로나에 가기 전, 숱하게 그런 말을 들었다. 가우디 Antoni Gaudi와 축구밖에 볼 게 없는 도시 아니냐고. 그곳에 왜 열흘씩이나 머무르려 하느냐고 말이다. 그 말을 듣다 보니 약간 반발심이 생겼다. 가우디뿐이라니. 달리 Salvador Dalí 도 있고 호안 미로 Joan Miro 도 있는데! 나는 결코 가우디에 사로잡히지 않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흠뻑 즐기고 오리라 결심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둘째 날, 가우디 투어를 했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Sagrada Familia를 마지막으로 하루 동안 가우디의 대표 건축물 네 곳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셋째 날, 나는 다시 까사 바뜨요 Casa Batlló 를 찾아갔다. 그다음 날에는 사그리다 파밀리아에 다시 갔다. 

  그러니깐 나는 결국, 가우디에 붙잡힌 거였다.

  바르셀로나에 가우디만 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가우디만 보기에도 열흘이 짧다는 말에는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다. 누군가 사그리다 파밀리아에 반해, 하루 종일 그 안에서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었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거다. 그래, 그럴만한 곳이지.

  까사 바뜨요를 다시 찾아갔던 날이었다.

  표를 끊으려 줄 끝에 서 있는데 앞에 선 일본인들의 대화가 들렸다. 까사 바뜨요의 옆 건물, 까사 아마뜨예르 Casa Amatller 의 일층에 카페가 있다는 거였다. 몰랐던 사실이었다. 슬그머니 줄을 벗어나 옆 건물로 향했다. 

  까사 아마뜨예르. 조셉 푸이그 이 카다팔츠크 Josep Puig i Cadafalch 가 설계한 집이다. 까사 바뜨요를 보기 위해 그라시아 거리 Passeig de Gràcia를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보게 되는 집이기도 하다. 초콜릿 성을 연상케 하는 외관에, 앞을 지나면서 내심 안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던 곳이었다. 

  구경하기 전에는 배가 든든해야 하는 법. 카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여기 왠지, 알폰소 무하 Alfons Mucha 그림 걸려있으면 어울릴 것 같아.”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중얼거렸다. 알폰소 무하를 좋아하는 그녀의 예감은 과연 놀라웠다. 까사 아미뜨예르를 디자인한 조셉 푸이그는 카탈루냐 Catalonia 의 제 1세대 모더니즘 건축가였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풍 Art Nouveau을 카탈루냐 식으로 재해석하려 했다. 내 예감도 어떤 의미에서는 맞았다. 초콜릿 성 말이다. 까사 아미뜨예르의 디자인을 의뢰한 집주인은 초콜릿 공장 사장이었다고 한다. 

  고소하고 든든한 파니니 panini와 샐러드. 과일 주스가 앞에 놓였다. 긴 탁자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시간에 몰두하고 있었다. 바깥 테라스와 이어진 넓은 유리창에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순간, 긴 탁자는 빛의 바닷속에 고요히 떠 있는 하얀 배가 되었다. 

  내게 까사 바뜨요는 바다였다.

  까사 바뜨요의 모티브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몬세라트 Montserrat 의 바위가 영감을 줬다는 것, 카탈루냐 지방의 전통 동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 등등이다. 그 해석들과는 무관한, 온전한 나의 감상만을 말하라면 그랬다. 특히 까사 바뜨요의 창문을 보고 있노라면, 청색 바다에 까마득히 잠겨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까사 아마뜨예르에서의 식사가 기억에 남았던 건 그 때문이었을 거다. 까사 바뜨요라는 바다를 항해하기 전, 친절한 이웃집에 잠시 머물러 식사를 대접받은 기분.

  그 식사가 있었기에, 그날의 항해는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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